다윗이 이 시를 썼을 때는 언제였을까?
표제어로 [다윗의 시]라고만 되어 있다.
이 시를 언제 썼는지 그 시기는 시에서 표현하는 언어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소생[슈브] : 죄악과 곤경으로부터 제자리로 되돌아 오다.
그는 매우 심각한 <영적 침체>와 <고난>를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원수의 목전에서"
1절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오직 여호와는 미쁘신 하나님, 목자같은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경험적 신앙)으로 알게 되었다.
목자와 양, 관계의 중요성
이 구절에서 <"나의">라는 짧은 표현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가나안의 편만한 우상들이 있었지만, 여호와만 유일하게 나의 목자되신다고 고백한다.
이 시를 노래로 부르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머뭇거리지 않고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만 목자이시기에 기꺼이 그를 따르도록 초청하고 있다.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던 하나님, "여호와만 사랑하라, 그가 너의 하나님이다"라는 사실을 광야에서 보여주던 모세의 신앙과 "오직 나와 나 집은 여호와만 섬기리라"던 여호수아의 신앙을 생각나게 한다.
"나의"라는 표현에서 <여호와 그분과 다윗> 사이에 가깝고 친밀함을 보여준다. 그가 목자이신 여호와와 얼마나 편안한 관계인가.
그냥 편안하다. 그의 영혼은 마치 고향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이 평안하다.
고즈넉한 시골 신선하고 상큼한 아침 느낌이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단순히 말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찾는다.
다른 사람에게 목자와 어떤 관계인지 몰라도, 그분은 나에게는 유일한 목자이시다.
그가 나를 그의 이름을 위해 의의 길로 당신의 모든 것을 다해 돌볼 양으로 선택하신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은혜이다. 전능하신 분, 영원하신 분, 무한한 은혜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로 자처하셨다.
그분은 나의 목자이시니 그가 나를 돌보신다.
나를 지키신다.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이 얼마나 넘치는 확신인가.
이 얼마나 놀라운 감격인가.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의 시제는 현재이다.
그러나 히브리어로는 시제가 없다.
과거이라면 나의 목자이셨고,
현재라면 지금 나의 목자이시고,
미래 시제로는 나의 목자가 되길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우리에게는 언제나 <현재> 밖에 없다. 모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지 현재 여호와의 돌보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왜 다윗은 자신이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가?
왜 다윗은 "나는 충분하다. 만족한다. 넉넉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바로 앞에서 말한 대로 관계성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이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셔서 돌보시고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에" 그는 안심하고 만족하고, 기뻐하고 감사한다.
그분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왜냐하면 그분은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니시다.
내 손을 꽉 잡고 놓으실 수 없는 분이다.
이 말은 그는 나를 떠나실 수 없으시다 말이다.
나를 버리고는 행복하실 수 없으시다.
나는 마치 그분의 조강지처가 된 것이다.
"주님과 함께라면 고난의 길을 가도 좋고, 시련도 역경도 괜찮습니다."는 표현이다.
목자가 양을 책임지고 보호하듯,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의 보호를 받는 동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 33:25)
가진 것이 없어도 만족할 수 있다.
행복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를 가지면 행복하겠는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바울처럼 우리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이 충분하다.
https://youtu.be/IhNQNkzhizE
이 장면을 보고도 감사가 없다면 뇌를 검사해 보아야 한다. 그래도 감사가 없다면 가슴을 검사해 보아야 한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10).
다윗은 왜 "내가 부족함이 없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을까?
이 말은 건강에 문제가 와도, 이 생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상황이 닥쳐온다 해도... 감사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합 3: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내가 닥쳐올 재난, 어려움, 시련 때문에...
창자가 흔들리는가?
입술이 떨리는가?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가?
내 몸이 나의 처소에서 떨고 있는가?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비록 사업이 망한다 해도. 또 망하고, 또 망할 일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선전할 수 있는가?
내가 늙어 몸이 허약해진다 해도, 죽음이 내 앞에 엄습하여도 나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모든 것 되시는 <주님>을 소유했기에 넉넉하다.
은행에 계좌에 많이 돈을 쌓아 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일용할 양식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은 내 사전에 <절망>이라는 단어는 없다는 말과 같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함>을 누릴 자격이 있다. 여호와가 그의 목자가 되어 주시는 자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넉넉하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어디를 가든지 따라다닐 것을 믿기 때문이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까지도...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에,
그리고 내 아버지 집에 영원히 거할 그때까지.
💜 사랑합니다 나의 주님, 사랑합니다 💕
https://youtu.be/fnOh9k42qx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