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만(南九萬)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칠 아이는 여태 아니 일었느냐.
재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하느니.
이 시는 전원의 아름다운 목가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시인이 처한 상황과 배경을 생각하면 숨겨진 수수께끼 같은 사연을 담고 있으니, 우리가 애둘러 표현하는 말 속에 또 다른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이중적 의미라고 한다. 겉보기에는 누구나 친근하고 일상적인 일 같은 이야기로 깊은 뜻을 전하는 방법이다.
아마도 이 시가 숙종의 귀에 들어갔다면 뛰어난 군주였던 그는 남구만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1. 저자 : '동창(東窓)이 밝았느냐'는 조선 숙종 때 우의정, 좌의정과 영의정을 두루 지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이 지은 시라고 정설로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 작품 세계로 볼 때 맞지 않는다고도 한다. 사실 남구만이 지은 시인지 아니면, 당시 그 지역에 떠돌던 시가 그가 지은 시로 탈바꿈했는지는 알 수 없다.
비록 남구만의 문학작품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몇몇 시들은 그가 지은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뒷받침해 준다.
2. 저자의 정치세계 : 그는 1711년(숙종 37, 83세) 나이로 별세했는데, 숙종 때의 소론의 거두로 정치인이면서 282수의 시를 남긴 문인이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윤휴와 허적의 서자 허견의 비리 등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오히려 거제도와 남해로 유배되었다.
소론이던 그는 노론에 맞서 장희빈을 두둔하였고, 장희재가 연루된 사건에서 그의 목숨을 살리는데 일조하여 서인 강경파인 노론과 유생들의 공격을 받아 결국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파직, 낙향하여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2. 작품세계 : "동창이 밝았느냐"는 남구만이 동해시 약천마을에 약 1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당시에 지은 것으러 알려져 있다.
세 번째 유배지(61세)인 강릉에서의 작품일 것으로 보는데, 그의 작품 유형과 다르게 일반백성들의 진솔한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그가 경남 남해군에 6개월 간 유배되었을 때에 지은 시로 <제영등망운산(題詠登望雲山)>과 <제영등금산(題詠登錦山)> 등 두 편이 있다.
<약천집(藥泉集)> 제25권에 실린 ‘절순헌기(折筍軒記)’은 그의 나이 71세 때(1700년, 숙종 29) 지었다.
새로운 해석
"동창이 ᄇᆞᆰ앗ᄂᆞ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동창이 밝았느냐'는 얼핏 보면, 전원생활을 노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유배생활과 당시 당파싸움과 간신들로 인한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동창은 '해가 뜨는 창(문)'을 의미하지만,
이는 '임금의 안목과 총기가 밝아졌느냐'를 묻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노고지리 우지진다'는 당시 당파정쟁의 상황에서 볼 때 간신들이 왕에게 상소를 고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 노고지리는 경상·충북·전남·강원 방언으로 다른 말로 '종다리'라 부르고, 순화어는 '종달새'를 일컫는다.
'소칠 아이는 여태 아니 일었느냐'
소치는 아이는 노비나 일꾼을 빗대는 말로 당시 왕을 대신하여 파견 받은 관리들, 목민으로 임금에게 올바른 간언을 하지 않고 자기들 이익에만대변하고 몰두하는 모습을 말한다. 간언해야할 것들에는 침묵하고 있음을 말한다.
재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하느니.
재너머는 앞으로 국사에 수많은 일들이 쌓여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는지 국가의 안위에 대한 염려하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