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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우리는 신앙을 통하여 율법 에의 순종으로 성화된다.

가치, 그것이 가지는 의미

이 세상을 살 때 돈이라는 화폐는 매우 유용한 《가치》가 있습니다. 화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약속 증서입니다. 거기에 인쇄된 대로 그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그 지폐를 소유한 사람이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화폐에 기록된 금액은 《구원》입니다.
그 구원은 가치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십자가에 어린양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의 값을 내어주고,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산물로 주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손을 내밀어 받게 됩니다.

믿음, 구원을 선물로 받는 손

앞에서 15번째로 믿음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구원》을 주신다는 약속이 있었기에 어떻게 받느냐?는 것입니다. 값을 치루지 않고 값없이 거져 얻는다고 하니 믿겨지지 않습니다.
"공짜냐?" 묻습니다.
"그렇다." 고 말씀합니다.
"그런게 어딨냐?"
"값을 내라하면 어짜피 너무 비싸서 값을 낼 수 없다" 하십니다.
그래서 공짜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형편을 어시는 하나님이 한 가지로 요구하셨습니다.
"나를 믿으라. 내가 한 일을 믿으라. 내 약속을 믿으라."
그리고 믿음의 손을 내밀어 내가 주는 선물인 《구원》을 받으면 된다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믿음은 내 믿음이냐? 하나님의 은혜이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다는 약속도 없었다면 아예 믿음도 없었다. 믿음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안에 구원얻는 믿음을 갖도록 종교의 씨앗을 심어주셨습니다.
또 우라에게 생겨난 그 믿음을 보존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받은 우리들의 믿음의 반응은 시작은 수동적이었지만, 은혜에 사로잡힌 이후로 능동적 협력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와같이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는 구원 곧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그 은혜로 주신 구원을 믿음으로 얻습니다.

믿음은 구원(하나님의 약속)을 수납하는 손입니다.

칭의가 수동적이라면 성화는 능동적입니다.
칭의가 100%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매여 기뻐하며 순종하여 나아갑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하나님 자녀 다워가는 것입니다.
칭의와 성화는 동전(화폐)의 양면과 같습니다.
칭의없는 성화는 없고, 성화없는 칭의도 있을 수 없습니다.


17. 우리는 신앙을 통하여 율법에의 순종으로 성화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그는 구원의 보증인이시다) 그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화목시키신다.
그리고 이와 아울러 그는 우리를 그의 성령에 참여케 하심으로 전적인 순결과 무죄에로 성화
시키신다. 그도 그럴 것이 주님의 영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으로부터 은혜를 받게 되며 이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은혜
를 통해서 은혜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주님의 영이란 지혜의 영, 지식의 영, 분별의 영, 능력의 영, 주를 경외하는 영을 의미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만약 누가 그리스도
에 대한 신앙을 자랑하면서 그리스도의 영에 의한 성화를 전적으로 결핍하고 있다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의하면 그리
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의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성화가 되셨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칭의를 받을 때 성화도 수용한다. 그 이유인즉 주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화해하시면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자비로우시고, 또한 우리의 마음 속에 그의 율법을 기록하실 것을 약속하시기 때문이다(렘 31:33; 히 8:10:10:16).
그러므로 율법의 준행은 우리의 능력이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은 부패로부터 깨끗하여지고, 의에 순종하도록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율법의 기능이 기독교인들의 경우에 있어서와 비기독교인들의 경우에 있어서 전혀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주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그의 의에 대한 사랑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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