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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들과 교리문답서

신앙교육서를 만든 이유와 배경

종교개혁자들과 그들의 뒤를 이은 종교개혁자들은 신앙교육서(Catechism : 교리문답서)를 남기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겼다.
이러한 교육서를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당시 로마카톨릭의 미신적이고 비성경적인 교리들로 인하여 성경에서 이탈하였기 때문이었다.
신앙교육서를 만들면서
첫째는 정확한 신학적 교리를 담아야 할 것이며,
둘째는 문체가 간결하고 명료하여 교육하기에 유익해야 할 것이며,
셋째는 무엇보다도 고백적이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과 그 후예들이 남긴 신앙교육서는 우리들이 반드시 교육해야 할 내용이다.

종교개혁자 칼빈

칼빈은 제1차 신앙교육서를 기독교강요 초판을 출판한 다음 해인 1537년 제네바 교회에 헌정한다.
그는 불과 28세였다. 그는 라틴어와 히브리어, 헬라어와 고대 문헌들에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인물로 이러한 기독교교육의 헌장인 신앙교육서를 '신앙교육과 고백'(Instruction et confession de foy)을 작성할 적합한 인물이었다.
이듬해 라틴어로 '신앙교육서 혹은 기독교 교육의 강요'(Catechismus, sive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라는 제목으로 유럽의 모든 교회가 읽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칼빈을 추방했던 제네바

그러나 안타깝게도 칼빈이 제네바에서 곧 추방되었다. 그의 제1차 신앙교육서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미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당시로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그러나 그가 스트라스부르에 망명하였다가 다시 제네바로 돌아와 교회의 직분과 규율을 확립하기 위하여 '교회 규칙'을 제정한다. 그리고 그가 집필한 교리 교육서인  '제네바 교회 신앙교육서'(Le Catéchisme de l’église de Genève)은  그곳에서 뿐만 아니라 인근의 개혁 교회들과 성도들의 교리 교육과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불어로 먼저 출판했도(1542), 이어 라틴어로도 출판했다(1545). 이후로 칼빈의 《제1차 신앙교육서》는 중요한 교리를 33개 주제별로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을 서술식으로 작성하였다.
그 후 제2차 신앙 교육서는 연중 교육을 위해서 주마다 주제가 분류되는 373개 문답으로 구성했다.

우리의 신앙 기초와 뼈대

  칼빈에게 있어서 '교리'는 단순히 가르침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설교와 선포를 통해 가르쳤다.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의 내용을 축조한 것이다.

•  축조(逐條)하다 : 해석이나 검토 따위에서, 하나씩 조목조목 차례로 좇아지다. 2 축조(築造)하다 : 쌓아서 만들다.

교리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닿는다.

예정론 교리

칼빈의 기독교강요 편집에 있어서 가장 위치 변화가 심한 교리가 예정론이었다. 이중예정론에 대한 칼빈의 입장은 시종여일했다.
  칼빈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되는 설교에 천착하였다. 그는 성령 신학자였으며 또한 삶의 교리를 강조한 실천적인 목사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가르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신앙의 교사였다.


왜 교리를 배워야 하는가?

교리는 선조들이 어떻게 하면 가장 성경적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고민하며 성경의 가르침과 생활을 일치되게하려 노력하였다.
우리로 지름길로 가게 만들어 준다.
교리는 결국 우리를 성경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품속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신앙교육서는 교리를 가르쳐 신앙을 올바르게 고백하게 하는 효과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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