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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스(거룩한 습관)의 힘을 아십니까?

비록 작은 것 같지만, 그것이 쌓이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비록 작은 개미라도 무시하지 마라.
"개미가 커다란 댐을 무너뜨릴 수 있다."

"티끌모아 태산이다."

비록 작아보여도 그것이 습관이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습관을 가지고 있다.
습관이란 후천적으로 반복하여 고정되는 성품이다.
군대는 강제적으로 습관을 고치고, 바꾸는 곳이다.

습관은 한 사람의 성품과 성격, 인격을 형성한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삶을 이끌어 가고 결국 운명을 결정짓는다.
습관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나쁜 습관은 나쁜 결과를 낳고,  좋은 습관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


공동체에도 습관이 있다.
관습이라는 것이지요.

개혁과 혁신이 아니면 바뀌기 어렵습니다. 
좋은 관습을 지닌 민족공동체는 밝은 미래를 형성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그 장래가 어둡다.
공동체의 관습이 그 공동체의 앞날을 결정한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의 전통 속에서 좋은 학습법의 습관을 형성했다.

그리하여 유대인 출신들이 역사상 노벨상 수상자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수많은 석학들과 경제인들이 그들로부터 나왔다.

성경 속의 좋은 습관이 그들을 세계 역사에서 위대한 민족으로 만들어갔다.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는 습관 네 가지를 살펴보자.
우리는 이를 거룩한 습관이라 부르자.


첫째, 예배의 습관

우리는 순례자이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 “절기의 전례(前例, 앞 전, 법식 례)를 좇아”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셨다(눅 2:42).
“전례”가 곧 헬라어 “ἔθος(에도스)”로서 습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은 열두 살 때 이미 습관을 좇아 부모님과 함께 성전에 올라 예배하셨다.
뿐만 아니라 성전에서 선생들과 더불어 담론을 나누셨다.
예수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성전을 찾아 정규적으로 예배를 드릴 줄 아는 거룩한 습관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열두 살은 성인식을 할 때이다.
이미 모세 오경을 모두 암기하였고, 심지어 말라기까지도 암기하였다.
예수님을 훗날 랍비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서 우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치열하게 성경과 전통적인 것들을 익히셨는가를 보여준다.
치열하게 살자.
건강을 해칠 정도로 열정을 쏟자.

두 번째, 성경을 읽고 암송하라

예수님도 어려서부터 규칙적이고 몸에 배인 습관이 있으셨다.

누가복음 4장 16절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다. 당연하다.
그런데 성경은  “자기 규례”였다고 증언한다.
이 “규례”가 “에도스”이다. 거룩한 습관이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는 것이 예수님의 규례이자 습관이셨다.
주일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토론하고 나누는 날로 만들자.
예수님이 갑자기 성경을 읽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이같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습관은 그를 한 분야의 거장으로 만든다.

늘 성경을 가까이하셨을 것이고, 묵상하고, 탐구하듯 암송하고, 토론하셨을 것이다.

세 번째, 기도하라

성경은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을 남기면서 겟세마네 기도를 기록하겨 있다.
예수님이 감람산에 가셨다.

예수살렘 성에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 맞은편 감람산에 가시면 “습관을 좇아”가셨다(눅 22:39).
예수님에게는 기도가 “에도스”이었다.

예루살렘 오실 때면 언제나 감람산으러 기도하러 가셨던 것이다.

저녁시간 예수님을 만나려면 그곳에 가면 만날 정도로 계속 반복하여 거기를 기도 장소로 삼으셨던 것이다. 깊은 기도가 사명을 일깨우고, 기도가 그 사람을 만든다.

곧 깊은 기도가 성품을 빚어간다.
이제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명을 감당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십자가를 앞두고 비로소 기도의 제목이 떠오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일과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기도하셨고, 때로 배에 오르셔서 주무실 만큼 치열하게 사셨다.

하루 종일 일과로 바쁘실 때도 기도하셨고, 때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셨다.
계속하시던 기도의 관례를 좇아 십자가를 지면서도 기도하신 것이다.
기도는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하는 위대한 습관이셨다.
이것이 습관의 힘이다.

네 번째, 전도하라
마가복음 10장 1절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모여든 무리들을 향하여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곧 전도이다.
예수님은 많은 무리들에게 전도하고 복음을 가르치시는 일이 전례 곧 습관(에도스)이었다.
성경을 읽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임재 속에 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한 것들이다.

그렇게 습관을 가지게 되면 담대해진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마5:3)
예수님은 입을 여시면 다가 온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고 복음을 가르치셨다.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 나라가 있었다.
전도는 예수님의 가장 훌륭한 습관이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사신 것은 우리의 모범이 되시기 위함이다.
그 인격과 성품은 창세 전부터 있으셨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사실 때 우리의 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거룩한 습관을 만드셨고,

그 습관들을 좇아 자신을 빚어가셨다.

그리고 랍비로서, 구원하실 메시아로 그 인격과 성품을 형성해 가신 것이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먼저 거룩한 습관을 좇아 예배하자. 성경을 읽되 묵상하고 암송하고 탐구하자.
기도하되 깊은 기도, 기도를 마치면 쉬어야 할 만큼 진액을 쏟아 기도하자.

열렬하게 진지하게 기도하자.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자.
또 우리의 사명인 전도를 위해 순발력을 발휘하자.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하심을 알게 하자.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예수님을 본받고, 그와 같이 거룩한 습관을 따라 살자.
예수님의 “에도스”가 나의 “에도스”가 되어  작은 예수로 살자.

하나님의 영광과 인격과 능력이 내 안에 임하도록,

마침내 주께서 함께하사 우리 위에 은혜의 빗줄기를 마음껏 부으시도록.
예수님처럼 우리도 거룩한 습관들을 몸에 배이도록 하자.
그래서 흐트러짐 없이 일관되고, 한결같고, 변함없는 강골의 삶을 만들어 내자.
이것이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가장 강력한 영적 힘을 갖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일에 세상 사람이 보기에 어리석은 사람처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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