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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철학의 인식론과 논리학(5)

인도 철학의 인식론과 논리학

인도에는 신을 인정하는 힌두교가 있고,

신을 부정하고, 제사를 부정하며, 유아를 인정하는 자이나교가 있다.

또 신도 부정하고, 유아를 부정하고, 무아를 주장하며 영혼을 부정하는 유물론적 인간관을 가진 불교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도유물론>이 있다.

신의 존재의 유무에 따라 구분된다.

신이 있다면 구원이 운명이나 숙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의 유무에 따라 구분된다.

영혼이 있는가, 없다는 유물론인가? 

여기에서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

힌두교는 신의 도움에 의한 합일로서 구원, 해탈을 주장한다.

자이나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유아를 인정하며 고행으로 구원에 이른다.

불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무아를 주장하며, 깨달음으로 구원에 이른다.

'무아'이므로 사실 '윤회'도 없다.

그런데 불교는 <무아인 동시에 유아>를, <윤회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윤회>를 이야기 한다.

연기설이 바로 그 증거이다.

영혼이 없다고 부정하는데, 한편에서는 그 존재를 인정한다.

싯달타가 사람이 죽으면 <풍>이 된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풍(바람)을 인도적인 언어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불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풍 = Air>,  인도 철학의 언어에서는 생명소리이다. 생명을 가리킨다. 본질의 생명이다. 

본질에로 회귀이다. 

그러나 불교입장에서 보면 유물론과 같다.

그냥 공기일 뿐이다.

무게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물질로 환원을 의미한다. 

사람이 존재할 때는 유아이고, 죽으면 무아이고, 윤회는 하지 않으나 만물은 윤회와 같은 변화를 가진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유아를 가진 인간은 현실에서는 고뇌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위해 <깨달음>이 필요하다.

즉, 현실에서 살아갈 때 고통을 느끼는 현실적 자아는 본래의 자아가 아니다.

사람들은 현실적인 자아와 참자아를 혼동하고 있다.

이를 분리하고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며 해탈이다.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행이 아닌 수행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침내 고와 집을 멸하고, 도에 이르면 "참자아" 곧 "무아"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고집멸도(苦集滅道)는 불교의 근본 원리인 사제(四諦)의 첫 글자를 따서 이르는 말이다.

‘고’는 생로병사의 괴로움,

‘집’은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모임,

‘멸’은 번뇌를 없앤 깨달음의 경계,

‘도’는 그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하기 위해 수행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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