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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이란게 세상에 있기나 하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부친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왔습니다.
시집온 어머니는 여섯 자식을 낳았습니다.
저는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뒷바라지하고,
자식들을 키우느라 몸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큰 자식이 십 대 중반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무 어렸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조차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홀아버지에게 늘 꾸중만 받고 자랐습니다.
딸자식은 공부 안 가르쳐도 된다는 아버지 생각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도 못했습니다.
겨우 글을 읽을 정도이고, 글을 쓰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받침은 모두 맞지가 않는 글을 씁니다.
마음이 아파서 글을 씁니다.
이제는 80 후반이 되었습니다.
나도 시집와서 딸 넷과 막내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받아본 사랑을 모르니 자식들에게 부끄러워 사랑한다는 말도 못 해 봤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도 많지 않은데....
내가 글을 써 놓는 것은 어릴 적에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고 싶어서입니다.


꿀 맛 같은 사랑

한 가지 야채로는 영양가를 다 맞추지 못합니다.
그래도 구색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꿀을 부었습니다.
심심한 맛을 바꾸는 비법이고,
또 꿀만 먹는 것도 그랬습니다.
나에게 꿀맛을 느낄 방법은 없을까요.

이 한마디 듣고 싶어서

엄마의 아픈 사연을 큰 딸이 읽었습니다.
엄마의 일기장을 본 딸은 "왜 옛날 얘기를 쓰느냐"라고
"좋은 추억도 아니고 아픈 기억을 뭘 하러 들추느냐"라고....
그런데 말입니다.
이 한마디를 듣고 싶습니다.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한참 엄마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사랑도 못 받아서 얼마나 힘들었어요"
인정해 주고,
"괜찮아 엄마, 다 지난 세월이야."
"사랑해요. 울 엄마, 정말 고생했어요."
이 말을 그렇게 듣고 싶은데, 죽기 전에 들어 보려나. 어니 나도 엄마가 사랑하다는 말을 해 주었는지 기억도 너지 않고, 엄마 없이 자라며 구박과 힘든 세월을 살다 보니 나도 사랑한다고 해주지 못했습니다.
차마 입에서 "사랑햐"라는 세 글자, 이 한마디가 그리 어렵고 는 쑥스럽습니다.

누가 대신 해주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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