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의 정체, 싫증
오래전부터 게으름과 싫증에 대해 정말 관계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좀 억지로 연관 지으면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으르다는 말은 그 사람의 기질일 수 있다.
무엇이 게으름인가?
게으를 태(怠), 게으를 만(慢)
한자로 게으르다는 말은 게으를 태(怠)가 있는데, 부수는 心(마음심)이다.
게으를 태는 남이 볼 때 저사람은 게으르다고 말할 때와 스스로 자신의 일을 게을리하다는 말로 쓰인다.
또 어떤 일에 대해 업신여기다는 뜻도 있다. '거만하다'는 뜻도 있다.
하나씩 살펴보면 厶部('마늘모')는 사람이 팔꿈치를 구부려 물건을 자기 쪽으로 감쌈을 나타낸다.
이것은 '나' 또는 '사사롭다'의 뜻을 나타낸 글자이다.
이처럼 팔을 안으로 구푸린 모습으로 厶자는 '사사 사'라는 한자이다.
厶는 자식을 나태내기도 하고, 셋을 나타내기도 한다.
첫째, 팔을 안으로 구푸린 모습으로는 사물을 둘러싸서 가두어 자기 것으로 하려는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자다.
손을 뻗다, 펴지다의 의미도 있다. 私(사사 사)의 옛글자이다.
厶(사사 사)의 본 자로, 뜻을 나타내는 禾(벼 화)와 음을 나타내는 厶(사사 사)가 합쳐진 형성자이다.
둘째, 子(女) 변형이기도 하다.
台 = 厶(사사사) + 口(입구)
①【태】 별 이름(三台星); 땅 이름(州名), 인생의 시작은 엄마 뱃속에서 시작됩니다. 胎夢(아이 밸 태, 꿈 몽)
②【이】 나(我); 기쁘다(悅); 기르다(養), 아이 기르다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③【대】 늙다(大老), 대臺(높을 대) 간자체로 台 등으로 쓰인다.
怡와 怠의 차이
台, 여기에 마음심(心) 이 붙였다. 마음심이 어디에 붙어 있느냐에 따라 또 다르게 쓰인다.
台 + <忄, 㣺 = 心>이 글자의 어디에 붙는가에 따라 다르다.
心 앞에 붙이면 마음의 상태를 뜻하고, 아래에 붙거나 뒤에 붙으면 그 결과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앞에 붙이면 기쁠 태怡, 아래에 붙이면 게으를 태怠가 된다. 이처럼 전혀 다른 뜻이 된다.
기쁠 이(怡)는 자녀를 양육하니 마음이 기쁘다는 의미가 된다.
怠 = 台 = 厶(사사사) + 口(에울 위) + 心(마음심)으로 구성된 글자이다.
厶(자식, 특히 아들), 구역(口)을 발로 돌아 에운다는 데서, '에울 위'라고도 한다.
아이를 가진 임산부나 엄마가 아이를 에우고 있어 마음이 거기에 쏠려 일에서 멀어집니다.
그러다보면 마음은 게을러지며 둔하여지고, 행동은 느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발전했습니다.
회복탄력성이 사라진 것입니다.
"열심히 하지 않고 게으르다"는 뜻으로 태만(怠慢)하다는 말로 씁니다.
태만은 그 사람의 <기질, 성품, 태도>를 일컬어 쓰이는 말입니다.
그 사람은 자세가 태만하다. 천성적으로 태만하다.
그 학생은 수업에 태만하다. 그 사람은 업무에 태만하다.
그 사람은 생활이 게으르고 천성이 태만하여 직장에서 잘리고 말았다.
* 회복탄력성(resilience) :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좌절된 현실을 인식하고 이를 고쳐서
다시금 새롭게 본래대로 회복하는 마음의 근력을 말한다.
이것을 기억하라.
禍生于懈惰(화생우해타)
說苑曰(설원왈)
“설원에 말하기를
官怠於宦成(관태어환성)하고,
관리는 벼슬이 뜻하는 대로 성취되는 데서 게을러지고
病加於小愈(병가어소유)하며
병은 조금 나은 데서 더 악화되며
禍生於懈惰(화생어해타)하고
화(禍)는 게으른데서 생기고
孝衰於妻子(효쇠어처자)하나니
효도가 쇠함은 처자 때문이니
察此四者(찰차사자)하여
이 네 가지를 살펴서
愼終如始(신종여시)니
삼가 마침을 처음과 같이 해야한다”
詩曰(시왈) 靡不有初(마불유초)나
시경에 말하기를 "시작이 있지 않은 이가 없고
鮮克有終(선극유종)이라 하니라.
끝까지 있을 수 있는 이가 드물다" 하였다.
그러면 왜 게으르지 말아야 하는가?
이제 정리해 보자.
태만"은 게으름(怠)과 오만함(慢)을 가지고 있습니다.
느리다고 꼭 게으른 것만은 아닙니다.
육지에 올라온 거북이 보고 토끼가 "너 왜 그렇게 느리니"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다릅니다.
거북이가 토끼에는 "너는 왜 수영도 못하고 왜 잠수도 못하니"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게으름과 태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태만은 반드시 화(禍)를 가져온다.
인생에 화(禍, 재앙 화)는 게으르고 나태한 것에서 생긴다는 뜻입니다.
재앙은 뜻을 나타내는 示(보일 시)와 소리를 나타내는 咼(입비 뚫어질 괘/와)가 합쳐진 형성자입니다.
게으름이나 나태함이 결국 화를 낳게 되니 성실해야 함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나 느낀다면"
그것을 '싫증이 나다. 싫증을 느끼다. 싫증을 내다. 반복되는 일상에 느끼는 감정은 싫증'입니다.
그 싫증은 그 사람을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를 꺾어 놓습니다.
이것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게으름은 <회복탄력성>이 없거나 매우 약한 사람의 기질에서 나옵니다.
먼저는 자신의 게으름의 원인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바꾸는 노력의 대가를 지불하고 칭찬해 주십시오.
그래서 <습관 바꾸기>를 해야 합니다.
먼저는 잠을 관리해야 합니다.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죠.
그리고 행동을 고치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게으름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것을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의 삶에는 진보가 없습니다.
돌쩌귀, 게으름에 관한 비유
게으를 만(慢), 마음( 心)이 끌리는(曼)대로만 행동하는 것
曼 = 曰(가로 왈), 罒( 눈 목), 又(또(손) 우)
曼 길 만 , 뻗을 만 , 오랑캐 만 , 길게 끌 만(길다 , 뻗다 , 오랑캐 , 한없음 , 널리 퍼짐)
만담(漫談) 만평(漫評) 만화(漫畫) 漫은 '흩어질 만'은 '흩어지다', '넘치다', '마음대로'를 뜻한다.
솔로몬은 "제자리걸음만 늘 반복한다"는 의미로 돌쩌귀로 게으름을 비유했습니다.
- 돌쩌귀처럼 침상에서 어슬렁 거리리며 왔다갔다 하기만 한다.
잠언 26: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집 안에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늘 반복되는 일상만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솔로몬 시대에 문은 어떠했을까?
여닫이 문짝을 만들어 열고 닫으려면 문짝이 기둥과 연결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것을 <돌쩌귀>라 합니다.
돌쩌귀·문장부 등의 통틀어 일컫는 말인데, 충북 방언으로 "돌쩌귀"라 하지요.
아마도 성경 번역자가 이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짝과 기둥에 각각 돌쩌귀는 쇠붙이로 만든 것을 사용하는데,
문얼굴의 문설주(세운 기둥)에 암톨쩌귀를 박습니다.
그리고 열고 닫을 문짝의 문울거미에 수톨쩌귀를 박습니다.
문짝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문설주의 암톨쩌귀의 구멍에 수톨쩌귀의 촉을 끼우며 완성이 됩니다.

(이어서)
게으름이란 무엇인가? 싫증인가?
<게으름의 뿌리, 자기 사랑>입니다.
<게으름의 발전, 정욕>입니다.
<게으름의 선택, 부주의>입니다.
<게으름의 결과, 고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