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ὅσοι δὲ ἔλαβον αὐτόν, ἔδωκεν αὐτοῖς ἐξουσίαν τέκνα θεοῦ γενέσθαι, τοῖς πιστεύουσιν εἰς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he gave the right to become God’s children,
to those who believe in his name:”
내가 믿다(G4100: πιστεύω, 피스튜오 believe)
피스토스(G4103)에서 유래 '신실한, 신뢰하는, 신임하는, 믿는' 등의 의미로 쓰였는데,
피스튜오는 말씀(요 4:50), 하나님(행 27:25)에 대해 '의지하다, 신뢰하다', 말 또는 말하는 사람(막 13:21; 요 4:21)을 믿는다로 쓰였다.
"πιστεύω εἰς 피스튜오 에이스"는 '~을 믿다' believe in는 의미로서(예: 갈 2:16; 요 1:12; 요 3:18)로 《일반 헬라어와 70인역본에서는 없는 독특한 것》으로 쓰였고, 예수님의 역사에 있어서 특별한 사건들(살전 4:14; 롬 10:9), 기독론적인 문장(요 20:31) 등에 특별한 역사적 내용을 기독론적 고백에 결합시킨다.
그의 이름 속으로 믿는 자들(πιστεύουσιν εἰς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원어를 번역하면 "예수의 이름 속으로 믿는 자들에게는"이다.
요한 사도는 믿는 자들의 독특한 속성을 표현했다.
왜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그의 이름 속으로 믿는다고 했을까?
또한 "그의 이름 속으로 믿는 자들"에 대해 영접하는 그림언어를 앞에 썼을까?
예수를 믿는 것은 《지적 동의》가 아니다.
" 그래 , 나도 이해해" 그러나 별로 예수와 관계가 없다.
변화된 신분, 변화된 삶을 의미
하지만, 《예수 이름 속으로 믿는 것은》내 신분이, 내 인격이, 내 삶이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내 삶에 일대 변화이다. 내 삶을 송두리째 예수 속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가 우리에게《이것이 진정한 믿음, 진짜 믿음》이라고 말하려는 의도였다.
신(信)은 곧 언행일치(言行一致)이다.
믿을 신(信), 人(사람 인)과 言(말씀 언)이 합쳐진 회의자(會意字, 합하여 새로운 뜻을 나타낸 글자)로
보면 '사람(人) 다운 말(言)은 믿을(信) 수 있다'라는 뜻이 되고,
言의 뜻과 人의 음을 취한 형성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람이 말을 한다.
어디에? 하늘에.
사람이 말을 한다.
누구에게? 사람에게.
이때에 말, 또는 축문(口)을 하늘에 전하는 모습으로 석삼三은 '석 삼'이라는 한자로,
숫자 3과 그 서수를 나타내는데,
하늘들의 하늘(heaven), 하늘(sky), 그리고 세상(earth)을 뜻한다.
그 위에 丶(가장 높은 이, 그의 말씀, 통치)를 뜻한다.
그러므로 말씀 언(言)은 단순히 말을 하다는 것이 아니다.
약속이나 언약도 포함한다.
말이라는 도구를 써서 기도나 제사를 통해 하늘의 말씀을 받아 내리는 장면을 설명한 것이다.
言約(언약)은 말로 하는 약속이다.
말로 한다고 소홀히 여기면 큰코다친다.
사람 사이의 언약은 법률적 계약 못지않은 구속력을 지닌다.
혀의 권세
말에 따라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된다.
법정에서 증인은 자신이 잘못 증언하면 위증죄로 처벌을 받는다.
형법 제152조(위증, 모해위증)
①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위증죄는 법률에 따른 선서를 한 증인이 법정 등에서 거짓말 내지 허위증언을 할 경우 성립한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신용(信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용은 사회의 건강의 척도이다.
사람은 그가 한 말(言)을 믿는다.
또한 나아가 대리자로서 신언(神言)으로 신과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을 담당하는 역할을 ‘사람 인(人)’으로 표현한다. 그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신탁(神託)으로 받아 내리는 말씀이다.
예언자(預言者, prophet)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전하는 사람이다. 예) 나단의 신탁
언은 곧 행을 나타낸다. '언행일치(言行一致)'란 말과 그에 따른 행동이 같음을 의미한다.
믿음의 근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그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고 약속대로 행동하고, 그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것이 믿을 신(信)에 담긴 깊은 뜻이다.
유교의 도덕이념(정치이념)에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가 있는데, 이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 했다.
정치와 사회, 조직 등 인간관계에 신의(信義)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보신(普信 : 널리 믿는 것)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가?
사람(人)다운 말(言)은 믿을(信) 수 있다
여기에 믿을 신(信)은 서신(書信)을 말하는데, 한자로는 서신이라 했는데 순화어로 ‘편지(便紙·片紙)’라 쓰게 되었다.
그 편지는 담긴 내용에 따라, 중요도에 따라 다르게 취급된다. ‘정보’의 의미로 쓰일 때(송신, 수신, 통신 등)에 쓰이면서 그 정보가 사실일 경우에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편지, 정보, 믿음>라는 3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신(信)'과 관련된 사자성어로 삼강오륜에서 '붕우유신(朋友有信)‘은 ‘벗과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고, ‘무신불립(無信不立)’은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미덕은 신용과 신뢰라는 것을 일 수 있는 말이다.
이같이 살아라
人(사람 인)의 言(말씀 언)이 반신반의(半信半疑)
하게 만들면 안 된다.
말은 명확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자신이 확신하지 못하면서 과신(過信)해서도 하게 해서도 안된다.
서로가 망신(妄信)을 당한다.
또 믿을 수 있는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물속은 알 수 없다.
그러니 삼가 맹신(盲信)하지 말고, 거짓 사이비 미신(未信/迷信)에 속지 말아야 한다.
남을 속이고 배신(背信)하는 배신자(背信者)가 되지 말고,
남에게 불신(不信)을 조장하지도 말고,
신뢰(信賴)를 주어 신망(信望)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위정자라면 자기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위정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남을 속이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이목지신(移木之信)하여
신의와 신용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잔신의 삶에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고,
또한 그 모든 바탕 위에 반드시 신(信)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