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고해성사', 과연 성경적 '죄 용서'인가?
아니면 거짓된 안정감을 갖게 하는 '신종 면벌부'인가?
공개적으로 <죄 고백>을 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죄를 고백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죄가 "사적인 죄인가? 공적인 죄인가?"에 따라
죄 고백과 죄 용서에 대한 대상도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느 선교단체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죄 고백’이 문제가 되고,
이른바 ‘목욕탕 교회’를 표방하는 교회에서 행해지는 ‘죄 고백’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 교회는 교회를 마치 ‘목욕탕’으로 비유한다.
여기서 사람들을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목욕탕에서 씻는 것은 때를 제거하는 것이지 수치를 제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것이 마치 죄를 씻는 것과 같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은 매우 심각한 범죄이다.
왜냐하면 어떤 죄는 은밀하게 죄를 고백해야하고,
어떤 죄는 사적으로 해야하고, 어떤 죄는 공개적이어야 하는 것이 있다.
그들이 교회를 마치 공중목욕탕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무지한 비유이다.
목욕탕은 돈을 내고 누구나 가서 씻일 수 있다는 공공의 장소이다.
만일 길거리에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된 목욕탕이라면 공짜여도 누구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누구나 "목욕탕에 들어가 옷을 벗고 들어가 몸을 씻어내듯,
교회에서도 말씀 안에서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고 죄를 씻어낸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하며 가증한 비유인가?
우리 나라의 초창기 부흥의 시기에 공개적인 죄의 고백이 있었다.
그러나 이 때에는 하나님이 그들의 신앙양심을 회복시키시고, 성령께서 교회에 주시는 선물이었다.
오늘날 공예배나 모임에서 하나님이 일으키신 역사였다.
이러한 하나님이 부흥을 주실 때,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권능을 나타내실 때에 일어난 예외적인 일이다.
이것을 일반적인 예배에서 고백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죄의 고백>인가? <폭로>인가?
개인적으로 지은 사적인 죄를 공개적이 장소에서 회개하였을 때를 살펴보자.
어느 날 갑자기 교회 공집회에서 교인들 앞에 나와 “나는 불륜을 저질렀습니다”라고 고백한다면
만일 간통죄라는 법이 살아 있었다면,
그리고 간통죄 법이 없어졌어도 그 고백이 죄의 고백이 아니다.
<양심이 견딜 수 없어서> 공중 앞에 폭로함으로서 <죄용서 받았다는 안정감>을 얻고 싶을 뿐인 것이다.
그 고백을 하나님이 용서하셨는가?
배우자가 용서했는가?
가족들, 부모나 자녀들이 그리고 그 죄를 지은 당사자의 배우자나 자식들이 용서했는가?
순전히 자기 만족을 위해 고백한 것 뿐이다.
여전히 그의 죄는 남아 있다.
먼저는 공중 앞에 나서기전 하나님 앞에 지은 죄이므로 철저하게 토설해야 한다.
다윗이 지은 죄에 대해 얼마나 크게 회개하였던가(시51편).
또 죄를 지은 당사자의 배우자와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했는가?
그리고 본인의 배우자에게도 개별적으로 죄 고백을 하였는가?
여기서 그쳐도 된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냥 고백하는 곳은 폭로이지 죄의 고백이 아니다.
자신만 마음이 편안해 지겠다고 폭로한다면?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배우자나 자식들, 믿음이 어린 성도들, 불신자들이
그런 폭로를 들을 때 당사자와 배우자나 자식들에게 새로운 낙인이 생길 수 있다.
예수님이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용서하셨다고?
아니다. 상황이 다르다. 이 여인은 왜 잡혀 왔을까? 수동적이었다.
스스로 죄 고백을 한 것이 아니다. 드러남을 당하였다.
이 장면은 돌을 든 자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인간은 자신을 의로운 척한다. 자신은 깨끗한 척한다.
그리고 이 여인을 끌고온 목적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려 처단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사건이다.
그러므로 공개적으로 죄 고백한 것과는 다르다. 상황이 다르다.
모든 죄 고백을 일반화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
물론 모든 인간이 부도덕하고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죄 고백을 받아 줄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죄를 고백한 대상이 용서해 준 일이 없는데.....
카톨릭에서 은밀하게 '고해성사'를 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일까?
공적인 모임이나 공집회에서 '신종 고해성사'를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것일까?
무조건 '죄 고백'은 무조건 '죄 용서'인가?
죄 용서의 선언은 누가하는 것인가?
얼마전부터 개신교의 일부 선교단체와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공중 앞에서 신종 고해성사를 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마치 이런 것이 성경적인 것처럼 주장했다.
과연 하나님이 그렇게 공개적으로 하는 고해성사를 죄 고백으로 보실까?
아니면 죄를 고백하는 그들 스스로가 면벌부를 받기 위한 죄 고백의 쇼는 아닐까?
그들이 생각하는 죄 용서는 정말 그럴까?
"나는 공개적으로 내 죄를 고백했어!"
"그러니 이제 내 죄를 용서 받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일 그들이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그 죄 용서는 '자신의 심적 고통과 마음에 쌓인 불편함을 씻어내고 양심이 안정감'을 갖기 위한 신종 고해성사는 아닐까?
정말로 죄 고백이 죄용서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정한 죄 용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자지 스스로 거짓된 안정감을 갖고 싶은 숨은 욕망에서 죄를 고백하게 하는 '신종 면벌부'는 아닌가?
첫번째,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회중이 참회의 기도를 하고 성구를 읽어주고 선언한다고 죄용서가 아니다.
두번째, 죄의 회개에는 정직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한다. 그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인정해야 한다.
세번째, 그리고 죄를 고백한 이후의 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죄에 대한 혐오와 죄에 대해 죽기까지 거부하는 일, 죄와 싸우는 일이 필요하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