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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디자인하다 - 회심

예수님이 이르시되,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 : 3 )


사랑이 : 오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돌이킴] 없이는 천국도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돌이킨다는게 뭐야?
행복이 : 응, 돌이킨다는 말은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꾸는 것, 방향 전환을 말해. 잘못된 길에서 방향을 돌이키는 거야.
사랑이 : 그건 회개 아니야.
행복이 : 회심과 회개가 있는데,
1)회심(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방향을 전환하는 것, 2)회개(행동을 고치는 것)는 곁 길로 가다가 다시 원래 길로 돌아오는 것을 말해.
사랑이 : 그렇구나.
행복이 : <회심은 평생에 단 한 번>이라고 해서. 단회적이라고 해. 대신 <회개>는 생활 속에서 잘못을 깨달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하는 거지.
사랑이 : 어느 것이 우선이야.
행복이 : <회심>은 마치 옷을 입을 때 첫 단추를 끼는 것과 같아.
사랑이 :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에는 다 잘못된 거잖아.
행복이 : 맞아, 예수님은 마치 첫 단추를 끼우듯 <마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다면> 그 신앙은 종교인이 되고 말지. 그래서 종교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어. 진짜 신자가 아니니까.
사랑이 : 그렇구나. 그러면 나는 회심했을까?
행복이 : 신앙은 하나님을 떠나 살던 사람이 그렇게 살다가는 지옥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회심이라고 해.
성경은 말하는 <죄>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난 것,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 맘대로 사는 것을 죄라고 하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줄을 모르고 살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이 하나님과 등지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해 줄 때 돌이키게 되는 거야.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지. 예수님 없이는 돌이킬 수 없어.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되는 거야.
사랑이 :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곧 <믿는 것>이라고 했잖아.
행복이 : 그래, 맞아.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모셔 들이는 것,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는 것을 말해.
사랑이 : 그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믿으면 회심인 거야?
행복이 : 그렇지. 회심(conversion)은 완전히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해. 한자로는 전향(轉向)라고 하지. 예를 들면 태풍의 방향이 가던 방향을 바꾸었을 때, 간첩도 전향을 하고 자수해서 광명을 찾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우상을 섬기다가 그것이 어리석은 짓으라는 것을 깨닫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말해.
전향은 완전히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해.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거야. 한자로 회심(回心)이야.
사랑이 : 그란데, 예수님은 왜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어야 한다고 했어.
행복이 : 응, 예수님이 <어린아이>처럼 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이들은 <순종>을 잘하는 것을 말하는 거야.
사랑이 : 어른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잖아.
행복이 : 대부분 어른이 되면 어린아이에 비해 <자기 고집>이 생기고 굳어져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야.
사랑이 : 그렇구나.
행복이 : 예수님이 집을 나간 탕자 이야기를 말씀하신 것처럼 집을 나간 둘째 아들 탕자도 문제이지만, 큰 아들은 집을 나가지 않았지만 그도 집안에 있는 탕자였지.
사랑이 : 왜 집에 있는데 탕자야.
행복이 : 집을 나간 자식은 아버지를 욕 먹인 탕자이지만, 잡 안에 있던 아들은 자기 고집으로 아버지를 무시했거든. 유대인이 집안에 있는 탕자라면, 이방인은 집을 나간 탕자야. 예수님 이야기는 둘 다 탕자라는 거야. 탕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라지 못하던 아들들. 아버지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헤아리는 아들,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오게 된 것도 아버지 때문이야.
사랑이 : 나도 내 마음을 늘 부드럽게 순종하는 마음을 유지해야겠어. 나도 마음이 굳어질 때가 있거든.
행복이 : 모든 사람이 다 굳어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항상 말씀으로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해야 해.
굳어지지 않게 해야 하는 거지.
사랑이 : 나도 고집이 생겨서 말을 잘 안 듣는데... 헤헤
행복이 : 언제나 "예"하고 순종할 준비를 하고 사는 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비유에서도 그래 즉시로 나가서 순정했잖아.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을 오해하고 자기 생각으로 아무 일도 안 한 거야
사랑이 : 고마워요. 오빠~
(오늘은 여기까지)


■ 회심과 회개 : 돌이킴, 자식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킨다고 할 때 이 '돌이키다' 가 바로 '슈브(שׁוב, return, turn back)'이다.
• 진정한 회개는 뉘우치며 행위로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 나함(히브리어 מקנ, 사 16:28 뉘우친다)은 신약성경에서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전치사 μετά(메타)와 '알다'라는 동사 νοέω(노에오)가 합성된 말이다.  
• 슈브(히브리어 בושׁ 돌아선다)는 ἀποστρέφω(=turn from, 눅 23:14; 롬 11:26, 행 3:26)나, ἐπιστρέφω(=turn around, 막 4:12; 눅 22:32; 요 21:20; 행 15:36)로 번역하고 있다.
● 메타노이아
예를들면, <헬라의 군사>들이 한 방향으로 행진하다가 뒤를 돌아야 할 때, 상관이 μετάνοια (After head! About face! 뒤로 돌아!) 라고 외치면, 그 순간 즉시 뒤로 돈다. 메타노이아는 하나님께로 마음과 생각과 뜻과 행동을 돌이키는 종교적 윤리적 실천적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회개는 곧 전적 헌신이다.
이와 같이 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회개(悔改)라 한다면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믿음과 회개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로써 참된 회심에는 믿음과 회개,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존 머레이(John. Murray)라는 신학자는 회심을 가리켜 “회개하는 믿음” or “믿는 회개”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회개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敬畏心)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옛사람이 죽고 성령께서 살아나게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옛사람이 죽은 것과 새로워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가운데서 그와 연합함으로서 이루어진다."라고 지적하였다. (「기독교강요」Ⅲ․ⅲ․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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