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개역한글)
“ἐμοὶ δὲ μὴ γένοιτο καυχᾶσθαι εἰ μὴ ἐν τῷ σταυρῷ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δι’ οὗ ἐμοὶ κόσμος ἐσταύρωται ⸀κἀγὼ κόσμῳ.” (갈 6:14)
“But far be it from me to boast, except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ich the world has been crucified to me, and I to the world.”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십자가(G4717: σταυρόω 스타우로오. 십자가에 매달다, 십자가에 못박다, 말뚝을 박다.) 스타우로스(G716: 막대기, 십자가)
신약성경에서 46회 모두 '십자가에 못박다'라는 의미로만 사용되었다.
•마 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마 23:34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행 2:36, 행 4:10 베드로는 그의 설교와 산헤드린 앞에서 : 이스라엘 전체 백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다.
•고전 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 갈 3: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 계 11:8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
빌라도와 유대종교지도자들의 계획대로 앓던 이가 빠지듯 끝났습니다. 제자들과 백성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시던 예수가 허무하게 죽음으로 그들의 모든 희망도 끝나고 말았습니가.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고 안식 후 첫날, 예수의 부활소식은 또 다른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도무지 부활이 불가능한 생물학적으로나, 의학적로로나, 과학적으로나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이사야53장은 메이시야의 고난과 영광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 상함, 채찍질을 받으시고 도살장의 어린양같이 죽임을 당할 것, 자기 영혼을 사멍애 이르개 할 것 등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완수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요,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구원계획을 이루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메시아)의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에 죽은 예수는 우리의 그리스도 아닙니다.
세상은 그를 유능한 스승 정도로 기억해 주겠지만, 구원얻는 길은 묘연해지고, 유대인들처럼 다시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제자들과 부활을 목격한 자들의 증언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이 명백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은 죽음과 사망을 이긴 자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나 사망이 그를 가두어 둘 수 없는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능력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인본주의가 발흥할 때마다 부활의 종교인 기독교는 심각한 도전을 받아 왔습니다.
세상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인본주의는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타격을 입혔고 교회는 예수의 부활과 생명을 의심하고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인류를 타락시킨 사탄의 전략이 어느 정도 승리해 갈 때마다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보냄같이 십자가에 눈을 뜨고, 십자가에 사로잡힌 설교자들을 보내어 잠자는 교회를 깨워 오셨습니다.
생명력을 잃은 교회
교회는 세상과 가까와 지고,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마다 생명력을 잃었고,
그때마다 교회는 너무도 쉽게 잠들어 왔습니다.
교회가 잠들 때마다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은 생명력있는 '기도와 영력'이 사라지고, 그저 종교의 허울을 쓴 모습처럼 허수아비와 같았습니다.
십자가를 알지만 십자가를 경험하지 못했고, 눈으로 성경을 읽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보다 자기의 이익이 되는 성경해석과 묵상으로 끝났습니다. 교회가 성경에서 구원을 위해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권능을 경험하지 못할 때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은 명백한 귀결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본질인 생명과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 영혼이 변화되는 일은 그만큼 희박했습니다.
교회가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깊은 침체에 빠져 들어 화석화되어갈 때 잠들어 있던 교회를 일깨우는 일은 소수의 깨어 있는 무리들에 의해서였습니다.
교회 회복과 십자가
하나님은 잠자던 영혼들을 일깨우시고 그들로 놀라운 영적 각성을 불러 일으키셨습니다.
그때마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부인되던 시대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부흥의 때에는 언제나 평범하게 받아들여지던 사실들이 충격적으로 경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눈뜰 때
사람들은 십자가에 나타난 구속 사건이 자신들의 인생을 향하여 갖는 개인적인 의미에 대하여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언제나 알고 있던 십자가의 복음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언제나 충격이었습니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집단적인 영적 체험을 부흥이라고 불러도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경험하라
교회가 생명과 능력을 회복할 때마다 공통적인 현상은 십자가를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신 그 십자가가 믿는 자들 안에서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그 복음 앞에 깨어나게 되도록 교회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이 아닌 것들 안에서 안주하는 대신에 복음과 함께 고난 받기를 소원하고,
십자가 아닌 것들을 인하여 위로받기보다는 오히려 십자가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며
진리 아닌 것들을 인하여 세상과 화목하기 보다는 참된 것들 때문에 세상과 싸우기를 소원하여야 합니다.
그것들을 통하여 교회는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로 불꽃처럼
십자가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가 십자가를 경험하지 않고도 씩씩하게 살아가며 복음의 감격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일깨워 그리스도 앞에 서게 하겠습니까?
누가 강철같이 차갑게 굳어진 뺨에 그리스도의 대속의은혜로 말미암는 감격의 눈물이 흐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에 붙잡히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도록 바라보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그들로 하늘의 능력으로 피묻은 십자가의 은혜만을 선포하는 강단을 사모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마르지 말아야할 감동
이같이 그들이 십자가에 새롭게 눈을 뜨고, 그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십자자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다시금 거룩한 생명력으로 충만하여지고,
새로운 영적 각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느끼고,
다시 태어나는 변화를 경험하고 싶은 사모함으로 하나님 앞에 흐느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잊혀져 가던 십자가를 다시 선포하도록 말씀의 전달자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십자가 아래서
거룩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헬라어로 십자가는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입니다. 순(ϭυν, 함께)과 에스티우로오(έϭταύροω, 못박히다)의 합성어입니다.
이는 함께 못박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깊이 경험한 그들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에스타우로타이, 현재완료시제)라는 고백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하고 십자가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로 여전히 그 십자가의 영향력은 그의 실존에 계속해서 끼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입니다.
지금이 우리가 십자가에 새롭게 눈을 떠야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물들어 있는 그 십자가는 지금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 앞에서 당신과 내가 반응해야할 차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러 나아가 경험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