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겔 1장1~3절,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 목차 --
풍진세상을 달려가며
2018.1.20 육적 사망 선고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삶
오한으로 찿아온 긴급신호
119로 응급실에 가다
예고편 주님은 날 위해 일하시고
정신 좀 차려 봐요
교회는 아프지 않게 하소서
'하늘소망'을 노래하며
풍진세상을 달려가며
이 *풍진(風塵)1)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며 살리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치열하게 25년을 달려왔다.
매 순간마다 주시는 은혜로 살았지만, 교회 안에 불의와 싸우는 동안 그 중심에 나 홀로 서 있었다.
목회는 싸우라고 맡겨 주신 것이 아니다.
타협하며 하라고 부탁하신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양이 변하여 염소처럼 뿔로 목자에게 달려든다.
목자에게는 양을 돌보는 사역이지만, 가끔 염소들이 끼어 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
목회, 그 가슴앓이
목회의 어려움은 은혜 받은 양떼들이 목회자의 땀과 눈물과 피를 먹어야 산다는 것이다.
성도에게 하나님이 회심의 은혜를 주셔서 불같은 은혜를 체험했다고 말을 해도
그들을 사랑만 해야 하는 이유이다.
마귀는 그들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아주 간사하고 교묘하게 파고 든다.
온갖 억지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한다.
이렇게 깨뜨려지지 않은 사람을 통해 목회자를 가로 막으며 힘들게 한다.
어느 교회나 있다.
어느 목회자에게나 있다.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찌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잠언27:22).
그랬다. 예수님의 가는 길에도 방해하던 베드로, 가룟유다처럼...
하나는 거듭났으나 덜 성숙한 제자요,
하나는 거듭나지 않은 육신에 속한 자로 예수를 팔고 못박도록 내어 준 자였다.
2018.1.20 육적 사망 선고
주님이 처음 부르실 때에 "내 손바닥에 너를 새기었다"고 하시고,
이제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겔16:6)고 말씀하신다.
비록 현재의 삶이 버거워도마침내 겨울 동짓날 긴 밤이 지나고 떠오르는 태양처럼 찬란한 영광을 노래 할 수 있다고.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이것이 주님이 내게 오시는 유일한 통로이다.
"주여! 다시 한번 예기치 않은 부흥을 허락하소서."
주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기쁨이 솟아난다.
그래서 "하늘소망"을 찬양하며 가기로 다시금 결심한다.
거룩한 *하시딤3)으로 살기로 결단한다.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삶
오직 한 길로 25년을 쉬임없이 달려왔다.
아니 앞만 보고 달려왔다.
결국 하나님이 강제로 쉬게 하시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2018년 1월 18일 목요일 점심 때부터 소변이 잘 나오지를 않았다.
평생 처음 있는 경험이라 급히 병원을 찾았다.
소변 검사 결과는 월요일 오후에나 나온다고 한다.
처방받은 약을 먹고 조금 나아졌다.
다음 날 약으로 견디며 저녁 금요기도회를 시작할 무렵 갑작스레 오한이 찾아왔다.
겨우 진정이 되어 설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독감이려니 생각하고 약을 먹었다.
조금 나아져 토요일 오전을 가족들도 평소와 같이 보냈다.
아이들은 각자 방에 있었고 아내는 출타중.
점심에 약을 먹고 누워있으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오한이 가시질 않는다.
고 1때 겨울방학 때 이런 지독한 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그러려니 한 것이 탈이 나고 말았다.
다시 몸을 추스리고 겨우 주일설교를 마무리했다.
오한으로 찿아온 긴급신호
2018.1.20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잠시 누었다가 일어나 어떻게 화장실에 갔는지 필름이 끊겼다.
화장실에 간것만 기억 나고 그 이후로는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잛은 시간 갑작스레 정신은 이미 혼미해 지고 육신은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문 앞에 쓰러지면서 "꿍"하고 큰 소리가 나서 딸이 달려와서 물었다고 한다.
"괜찮아요. 아빠.
"화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으~음"하는 나의 신음소리가 대답인 줄 안 것이다.
결국 두 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내가 여전히 화장실에 있다는 아들이 알았다.
딸이 아내에게 급히 전화를 했다.
아빠가 화장실에서 너무 오랫동안 나오질 안으신다고.
결국 아내가 와서야 사태를 안 것이다.
겨우 문을 밀치고 들어와 소리를 지른다.
"119 불러, 빨리. 빨리 오라구."
119로 응급실에 가다.
만성피로에 급성폐혈증으로 겨우 심장만 살아서 사선을 넘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주말 오후이라서 주치의도 없는 응급실 상황,
인턴이 담당자가 주치의에게 전화로 긴급보고를 한다.
그 정도 혈압이라면 이미 장기 손상이 있을 것이라는 주치의가 판단,
한번 망가진 장기는 회복이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담당 의료진이 5분도 안되어 주치의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같단하게 이것저것 검하고는 뛰지 않는 심장부터 정상으로 높이려면 강제로 혈압을 상승시키는 약을 투여하여 혈압부터 높여야 한다고 한다.
'너무 약해도 너무 쎄도 안된다.'는 주치의 말에 의료진이 고민을 한다.
약을 많이 쓰면 신장이 가장 무리가 가고 망가지며,
심장도 심각하게 무리가 온다는 것이다.
약하면 정상 작동이 안된다.
혈압상승제를 어디에 놔야할까?
발 등에, 가슴에, 목에.
어디가 좋을지 고민을 한다.
그래도 시급을 다투는 상황에서 주치의 판단이 옳았다.
결국 목에 주사바늘을 꽂혔고 혈압상승제를 투여하기 시작한다.
혈압이 오르면서 나는 정신도 오락가락한다.
헛소리를 했나 보다.
'내일 주일인데 설교하러 가야한다'고.
'아니라고. 여기 병원인데 죽게 생겼다고'.
예고편, 죽음의 사선을 넘어서
모두가 긴급기도에 돌입했다.
만에 하나 장기가 손상되었다면 이제부터는 병원에서 살아야 한다.
한 주간 집중치료, 침대에서 생활을 해야했다.
4일째 되어서야 겨우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계속해서 상태를 보려고 피를 뽑고 검사를 하느라 의료진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나는 긴 꿈을 꿨다.
나는 1층에 있었다. 홍수가 났다.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도 않고 지하부터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빨리 올라가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에게 빨리 뛰어 옥상으로 올라가라 목이 터져라 외친다.
그러나 7층 옥상까지는 물이 먼저 차오를 것만 같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사람이 올라가는 속도보다 물이 떠 빠르게 차오르더니
7층까지 가득 처더니 치고 올라간다.
그런데, 홍수임에도 신기하게 진흙탕 물이 아니다.
너무나도 맑고 깨끗하여 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먹어도 될 것 같다.
아니 나는 물 속에서 물로 호흡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이것은 분명 물인데, 물 때문에 숨이 막혀 죽지를 않는다.
내 입에서는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내 속에서 소리가 들여 온다.
"물을 먹어라! 물을 먹어야 죽지 않아! 걱정하지마. 괜찮아!"
마치 성령을 마시듯 나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배가 점점 불러 온다.
처음에만 약간 숨이 찬듯 하더니 전혀 숨이 막히지 않았다.
나는 미쳐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 손으로 힘껏 밀어서 7층 위로 올렸다.
그들의 몸은 순식간에 옥상 위쪽으로 올라간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은 다 대피시켰다.
남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다행이다.
물이 솟구쳐 오르는 힘에 의해 나도 같이 올라간다.
이 때 꿈은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예고편이었다.
그 일들이 눈 앞에서는 재난 같았지만,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들을 위한 역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님은 날 위해 일하시고
그리고는 순식간에 어둠의 세력이 가득한 곳에 이르렀다.
어디에도 물러설 곳이 없다.
어둠의 세력과 맨 손으로 싸우고 있다.
긴 시간을 영적인 사투를 벌이며 처절하게 싸웠다.
지친 내 모습이 보인다.
내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갑자기 원수들이 한순간에 다 사라진다.
창문 너머로 찬란하게 빛이 비춰오고 마침내 어둠의 세력은 다 사라졌다.
환하게 저녁 노을이 지기전 아주 강렬하게 비추어 오는 빛처럼 찬란하게 비추어 온다.
마침내 이겨낸 것이다.
이 일은 실제로 얼마 후 진행되는 가운데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 일은 모두가 주님이 하신 것이었다.
나는 한편의 드라마처럼 이미 예고편으로 끝까지 모든 것을 본 것이다.
정신 좀 차려 봐요
그리고 나서는 잠에 빠져든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아내가 정신이 드느냐고 묻는다.
겨우 대답을 했다.
온 몸에 기운이 없다.
응급실에서 침대에 실려 일반병동으로 옮기는가 보다.
일반병동으로 옮겨진 것은 다음 날 아침,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 아침이다.
감사한 일은 어느 장기 하나 손상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의료진들도 신기하다고, 기적이라고 말한다.
주님이 모두 하신 것이다.
성도들, 가족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역사하신다.
기도의 능력을 경험한다.
우리에게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거룩한 부흥을 꿈꾸며 기대한다.
교회는 아프지 않게 하소서
주님, 어떠한 경우에도 교회는 아프지 말아야 합니다.
내 입에서는 계속해서 이 기도뿐이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피 값으로 사신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님이 하나씩 완벽하게 모든 것을 정리해 가신다.
물론 어리석은 자는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어도 그 미련이 벗겨지지 않지만,
주님은 당신의 뜻을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성취해 가신다.
예수님이 열두명에게 삼년을 집중하신 것처럼이제부터는 사람,
그 영혼의 변화를 위해 사역하기로 결심했다.
그 동안에는 숫자라고 하는 것에 얽매이고남을 의식하듯 사역했었다.
아마도 모든 목회자가 가진 마음이리라.
'하늘소망'을 부르면서
이제 주님과 한걸음씩 다기 걷기 시작했다.
이 찬양, '하늘소망'을 부르면서 그 길을 간다.
몸을 추스리고 다시 사역을 시작한다.
코로나19가 시작되었고, 함께 해준 교회와 성도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모세에게 다시금 목회를 배운다.
40년 목회가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을까.
모세만큼 가려면 나도 15년이 남았다.
모세가 성소(성막) 앞에 엎드리면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했다.
그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목회는 주님의 일이다.
주님이 하시는 일이다.
메마른 날, 시리도록 푸른 날에도 부흥을 주시도록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롭게 조직적으로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나를 모세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주여! 반석에서 생수가 터쳐나오는 역사와말씀이 말씀되게 선포되어
다시 거룩한 부흥을 경험하게 하소서.
[후렴] 주님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순례의 걸음 멈추지 않으며
어떤 시련이 와도 나 두렵지 않네주와 함께 걷는 이 길에
*1)풍진(風塵)우리가 사는 세상은 풍진(風塵)과 같다.
이 말은 바람과 먼지(티끌)를 가리키는 글자의 조합이지만,거기에 담긴 뜻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글자대로 바람과 먼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 바람은 세찬 삭풍같은 바람이며, 그 먼지는 앞이 보이지 않는 뿌연 티끌로 사방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비록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이와 같고, 그런 세상의 중심에 우리들이 서 있다.
우리들은 지금 이 풍진 세상을 만났다.
이같은 세상에서 우리들이 할 일이 무엇인가?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하는가?
유일한 "하늘 소망"을 노래하며 사는 것이다.
*2)하시딤(Hasidim, חסידים, 히브리어 “헤세드”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자비”를 뜻하며, 하시드(hasid)의 복수 형태다.
하시딤(Hasidim)은 히브리어로 '경건한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하시딤은 하시드가 둘 이상 모였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거룩한 나실인 곧 '하시딤'으로 살아 가도록 부름을 받았다.
마지못해 억지가 아니라 “즐겁게” (joyfully) 지키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되,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거룩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