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고 어머니와 모친(母親)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신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나를 낳으신 분이 어머니이고,
나를 기르신 분이 모친이라는 것을."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같은 단어로 반복해서 쓰지 않기 위해서 다른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것을 쓰느냐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지요. 그러나 동일한 분에 대해 다르게 표현했을지라도 한 분입니다.
언어는 다양합니다. 그래서 같은 표현인데, 어떤 것으로 쓰느냐에 약간씩 뉘앙스가 있습니다.
"이르시되, 가라사대, 말씀하시기를, 말하기를, 말하되,...
"잉태, 회임, 임신, 애를 가짐"
이러한 표현들을 인문학에서 문장을 아름답고 수려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오해하게 된 이유
- 워치만 니(형제), 특별히 신학공부를 하지 않음, 그러나 많은 영어로 된 신앙서적들을 번역함.
그가 개인적으로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깨달아지는 경험을 하면서 그것을 원어로 살펴보니 말씀이라는 단어를 <로고스>와 <레마>로 쓰인 것을 알고는 기록된 성경은 로고스이고 내가 깨달은 말씀은 레마라고 하게 되면서 비성경적, 비신학적인 주장을 하게 된다.
그가 번역한 글을 한글로 번역한 분들의 책을 읽었던 목회자들조차도 그것이 성경적이고 신학적으로 맞는 줄 알고 무분별하게 답습하고 따르다보니 생겨난 헤프닝이다.
- 성경적 근거 :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70인 역, LXX)에 구약(히브리어) 다바르(말씀, 말)을 헬라어로 번역하는데 로고스와 레마로 번역함.
- ‘로고스’는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요 1:1, 14)’을 지칭하기도 한다.
(ΚΑΤΑ ΙΩΑΝΝΗΝ 1:1 Greek NT: RP Byzantine Majority Text 200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개정)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 1:1, NRSV)
<워치만 니>가 해석하면 그것이 권위가 있는가?
한마디로 <로고스>와 <레마>를 구분한 것은 언어학의 무식(無識)에서 나온 소치(所致)라 할 수 있다. 중국출신의 워치만 니가 주장하는 <경건주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아래 글은 워치만 니가 로고스와 레마를 구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http://chch.kr/numz/view.php?bid=sec1&bno=21182&slid=kin#.Y4PhlaTH0zY
<워치만 니>의 글 "로고스"인 말씀과 "레마"인 말씀의 차이
신약에는 두 개의 「말씀」이라는 단어가 있다.
하나는「로고스(logos)」인데 이것은 일반적인 말씀이다.
또 하나는「레마(rhema)」인데, 성경에는 「말씀」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두 단어는 약간 다르다. 「로고스」는 영원토록 정해진 것이며, 객관적인 것이며, 즉 일반적으로 말하는 말씀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말씀이다. 「레마」는 「로고스」보다 더 주관적이다. 우리는 신약 몇 군데에서 「레마」를 사용하여 설명한 곳을 인용할 수 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다. 이곳의 말씀은 「레마」이지 「로고스」가 아니다. 이 말씀의 뜻은, 반드시 그리스도가 사람 안에서 말씀하셔야 비로소 사람이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우리 많은 사람들이 외울 줄 알고 심지어 십 년 이십 년 동안을 외워왔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은 「로고스」이다. 어느 날, 당신은 성경을 읽다가 예전과 다름을 느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세상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심을 느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들에게 독생자를 주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셨음을 느낀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에게 「레마」―오늘날 주님이 친히 하시는 말씀―를 주소서. 「레마」가 있어야만 우리는 성장할 수 있고 살아 있는 말씀으로 다른 사람들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레마」이다. (워치만 니 전집 제2집 제14권, 제3장)
로고스와 레마에 대한 오해
https://jesus4today.tistory.com/m/80
설교를 듣다 보면 ‘로고스’ (λόγος) 와 ‘레마’ (ῥῆμά)를 구분하는 설교들을 자주 듣게 된다.
그 구분은 크게 1) ‘로고스’는 기록된 글이며 세상의 언어 또는 철학적 언어라는 것이며, 2) ‘레마’는 ‘로고스’가 성령님의 역사로 변화되어 받는 말씀이며 능력의 말씀이고 영의 언어이다 라는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할 만큼 한 목회자들도 두 단어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 이상의 해석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그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와 성서 저자들이 사용하는 사례들을 무시하고 두 단어를 구분 짓는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그 어느 성서 텍스트로도 입증할 수 없는 근거 없는 해석들을 한다는 것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용된 ‘로고스’와 ‘레마’가 ‘랄레오’와 ‘아쿠오’ 두 동사와 함께 사용된 것은 바로 그 둘은 글에 갇혀진 말씀이 아니라 생동력 있는 말씀임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로고스’와 ‘레마’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두 히브리어 단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같은 히브리 단어 ‘다바르’/ ‘다발’ 를/을 헬라어로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로고스’는 이성적인 말씀이고 ‘레마’는 마음에 주어지는 말씀, 또는 ‘로고스’는 쓰인 말씀이고 ‘레마’는 성령님의 역사로 ‘로고스’가 ‘레마’로 변하게 된다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바르’라는 한 단어가 70인 역에서 ‘로고스’ (λόγος) 와 ‘레마’ (ῥῆμα) 그리고 음성을 뜻하는 ‘포네’ (φωνή) 로 번역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 한 가지 때문에 ‘로고스’와 ‘레마’를 동의어라고 무조건 단정할 수 없으며, 먼저 세 단어로 번역이 된 구절들의 콘텍스트를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그 번역된 단어들과 원어의 컨텍스를 봐도 ‘로고스’와 ‘레마’는 주로 동의어로 사용된 것을 확실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레마’는 ‘아마르’와 같고 ‘로고스’는 ‘다바르’와 같다는 주장 곧 ‘레마’와 ‘아마르’는 ‘로고스’와 ‘다바르’와 다른 것이라는 주장이 틀린 것임을 보여준다.
로고스와 레마,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λόγος)와 레마(ῥῆμα)에 대하여
로고스 (λόγος) 와 레마 (ῥῆμά, 흐레마)
설교를 듣다보면 ‘로고스’ (λόγος) 와 ‘레마’ (ῥῆμά)를 구분하는 설교들을 자주 듣게 된다. 그 구분은 크게 1) ‘로고스’는 기록된 글이며 세상의 언어 또는 철학적 언어라는 것이며, 2)
jesus4today.tistory.com
- 신약성경은 두 단어 모두 큰 구별 없이, 말 혹은 말씀으로 번역합니다. 그렇기에 원어로 보지 않는 한 어떤 구절이 로고스이고 어떤 구절이 레마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신약에 331번 등장하는 로고스가 말, 말씀, 이야기, 진술 등을 뜻하는 광범위하고도 포괄적인 단어라면 70번 등장하는 레마는 ‘발언’을 뜻하는 구어(口語)입니다.
문제는 일부가 ‘로고스’는 성경에 적힌 일반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레마’는 내게 주는 특별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계시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레마를 통해 성령의 권능이 강력하게 역사하며 주님을 영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교회를 미혹하며 혼탁시킵니다.
몇 년 전 이런 주장을 하며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던 사람이 가는 곳마다 파탄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레마와 로고스가 들어간 모든 구절을 뽑아 비교 분석하였고 레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성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임을 발견했었습니다.
레마(ῥῆμα)와 로고스(λόγος)의 차이가 어떤 신비나 능력에 있지 않고 그저 상황에 맞게 쓰인 것뿐이란 걸 증명하는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두 단어가 한 구절에 같은 용도로 쓰인 경우를 보는 걸 겁니다.
다음은 그런 경우의 몇 구절입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레마)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로고스)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요 12:48).”
즉, 예수님의 그 당시 발언 혹은 증언을(레마) 받지 않았던 사람들은 곧 예수님이 한 그 말이(로고스) 그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끝으로 우리가 잘 아는 “하나님의 말씀은(로고스)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란 구절은 레마가 아닌 로고스입니다.
• 로고스는 그냥 흰 종이에 검은 글씨이고(그들의 말대로), 레마는 살아있는 로고스로서 능력 있는 말씀이란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지 잘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또한 “…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로고스)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4).”에서도 청년들 안에 거한 로고스(말씀)로 흉악한 자를 이겼다고 하지 레마로 이겼다고 하지 않습니다. ‘로고스’는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요 1:1, 14)’을 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렇게 로고스를 무시하는 생각과 궤변이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이지 깊이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