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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사귐)

가장 영광스러운 초대

교제(交際)는 혼자할 수는 없습니다. 교제는 사귀어 가까운 사이로 지내는 것입니다.

[ 交 사귈 교, 際 '즈음/가, 끝, 변두리, 사이, 때]

친밀한 사귐은 그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귐은 둘 모두에게 아름답게 행복한 것입니다. 그 사귐은 때로 힘들고 어려울 때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지요.
여러분은 우리의 인생에 힘들고 어려울 때 누가 가장 먼저 달려와 주던가요? 누가 끝까지 나와 함께 해 주고 위로 해 주던가요?
사귐은 그가 나를 그의 중요한 자리에로 초대해 주고, 또 내가 그를 내 인생에 귀한 자리에 초대한 것입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이러한 교제를 해 왔다면, 그는 당신에게 누구입니까? 그는 아마도 당신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전우이거나, 오랜 친구, 혹은 당신과 인생을 함께 해온 동반자입니다. 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이거나, 내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아끼며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13장 1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귐의 한 장면입니다. 또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전 마지막 만찬 때에 불안해 하는 제자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15장 13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사귐 또는 교제는 시간적으로나 관계적으로 가장 많은 순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3년의 공생애를 함께했습니다. 꼬박 3년을,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비로소 예수님은 그들을 "나의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마치 생사를 함께한 전우같은 동반자, 동행자, 친구로 여겨 주셨습니다. 그들은 훗날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자신들의 목숨을 예수님을 위해 내어놓습니다.

교제는 <사귐, 교제, 친교, 연합, 나눔>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우선 순위는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의 우선 순위는 평강의 하나님 아버지와 사귐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 1:3)  “that which we have seen and heard we declare to you, that you also may have fellowship with us. Yes, and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요일 1:3)
여기에서 <사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인데,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 사귐(G2842: κοινωνία, 교제(交際), 친교(fellowship) 참여(participation) 나누어줌(impartation) 등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영광스러운 초청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더불어 사귐입니다.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이 교제를 위한 초청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려고 초청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코이노니아를 우리를 주의 만찬에 참예하도록 하시는 "신령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제"입니다.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여기서 참예, 참여는 '코이노니아'를 번역한 것입니다. 사귐, 교제, 친교, 연합을 의미하고, 어떤 중요한 일에 초대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는 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하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입니다.

사귐의 유익

이같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대의 자리에 나아감으로 우리는 무슨 유익을 얻습니까? 이 유익은 사사로운 이익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와 사귐으로 얻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먼저는 그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요, 그가 하신 일에 참예함이요, 그의 사랑에 참예하는 것이요, 그의 기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가 보낸 편지

요한사도가 편지를 보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 1:3)
복음서와 계시록을 그에게 받았던 수신자들의 환경은 어떠했습니까?
오늘날과 같은 평화와 번영과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넉넉함이 있던 때였습니까?
아니면 동족으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로마인들로부터 천대와 박해와 고난이 반복되던 때였습니까?
그들은 어디서 위로를 받고, 어디서 잠시나마 쉼과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까?
오! 나의 가엾은 동지들이여!
아니 가장 영광스러운 나의 형제들이여!
그들은 요한에게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요한의 마음 안에 있던 사랑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예수를 따를 때 박해와 멸시와 모욕을 당하고 온갖 불행을 받게 될 때 어디에서 <위로>를 얻습니까?
먼저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위로를 얻는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위로를 얻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요, 각 위격과의 사귐입니다.
교제란, "상호간에 주고받는 친밀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위로는 평강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위로는 쉼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감사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사귐)가 있을까요.
"오!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 이보다 더 위대하고 영광스러우며 아름다운 것이 또 있겠습니까.
이제 당신입니다.
이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그 은혜와 사랑, 축복의 잔에 참예하고, 그 영광을 누릴 차례입니다.
https://youtu.be/PWGetG_XW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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