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 함은 특별사면(特別赦免)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대통령이 특정인에게 이미 형을 언도받은 특정 범죄인에 대하여 <형 집행을 면제> 하거나 <유죄로 선고 언도한 효력을 상실하게 하는 행위(효력을 정지시키는 조치)로서 자유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특별사면으로 <의롭다> 칭하신 것인데,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음은 곧 속죄함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에게 어떤 의롭다고 인정할 만한 행위가 있어서 의인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첫 번째 주신 법 : 율법
행위로 의롭게 되는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정죄의 기능으로 죄인에 대해 어떠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준다.
율법으로 구원받을 자가 없고, 의롭다 함을 받을 자가 하나도 없다.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지정하신 <의>를 나타내는 기준이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의 법정에서 "나는 의롭습니다. 나는 의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언하고나 의롭다고 주장할 자는 하나도 없다. 양심이 이미 그를 죄인이라고 인정하며 율법이 그를 송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행위로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주신 또 다른 법 : 생명의 성령의 법
특별조치법
로마서8장 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하나님이 또 다른 방법으로 의롭게 되는 <한 법 :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명얻는 법 : 은혜의 법>을 알려 주셨는데 이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법이다. 우리에게는 의로움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제정하여 주신 그 법을 우리가 믿으면 우리가 의로운 것으로 간주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이 특별조치법은 <은혜의 법>이다.
"육체의 법" 곧 죄의 법이 그 하나이고, "마음의 법" 곧 은혜의 법이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4).
특별사면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법이다.
<특별사면과 가석방>은 모두 자유의 몸이라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가석방은 형량을 아직 마치지 아니한 것으로 형량을 채우기까지 다시 범죄행위를 하여서는 결코 안된다.
그러나 특별조치법은 <은혜와 자비로 주신 법>이다. 그러므로 은혜의 법 아래 있는 자는 죄를 대적하고, 죄를 지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없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공로뿐이다.
엡 2장 9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고린도전서 1장 29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요, 선물이다.
우리에겐 자랑할 것이 없다. 그리스도의 공로이므로 그리스도의 공로만 자랑해야 한다.
우리에게 모순 같이 보이지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무조건 "너는 죄가 없다"라고 선언하실 수는 없으시다. 무조건 용서하심이 아니다. 우리는 죗값을 치를 능력이 전혀 없다. 우리는 죄의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전혀 없는 제로(0)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이 사실을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또 다른 한 법은 마련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 또 때가 차매 아들을 세상에 속죄제물로 대신할 어린양으로 보내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죗값을 지불하는 <속건제물>로 자신을 드리셨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영원하신 하나님 안애 감취 었던 비밀인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
엡 1:3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선택하셨는가?
롬 8:29-34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의 구원 시간표
미리 아심은 창세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계획과 선택은 창조보다 앞선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 계획은 창세전이다.
부르심은 역사의 세계 안에서 시간 속에서 실행되어 부르심에 순종하는 그를 또한 그를 의롭다 하시는 구원사건은 현재에 속한다.
그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영광스런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장차 진행하신다.
이처럼 선택도 창세전에 하셨고, 그 예정된 자들을 부르시고 예수가 믿어지게 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믿음은 내 안에서 발생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 영혼에 들어와 나를 이끄셔서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그리고 매 순간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간섭해 가시고 도우신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을 지속하도록 그의 뜻하신 계획 안에서 마귀의 시험을 허용하시고, 피할 길을 주시며 또 이기게 하신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같은 구원을 은혜로 주시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속죄의 제물로 삼으셨다. 예수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할 어린양으로 보내신 것이다. 구약에 제사법은 율법을 범한 자들이 용서받는 길을 열어 놓으신 한시적인 특별조치법이다.
1) 한시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를 말한다.
2) 한시적이지만,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이 대신 죽은 것으로 간주해 주신 것이다.
3) 완전한 제사 곧 죄 없는 어린양 이신 그리스도가 제물이 되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받게 하심은 특별조치법의 완성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요구인 사망의 값을 지불하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 곧 마침이다.
이 법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피(보혈)를 믿음으로 속죄함을 받는다.
이 법으로 그리스도가 다시 세상에 오실 때까지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으시다. 만민에게 주어진 법이다. 믿음으로 구원(죄용서, 속죄함)함을 얻는다.
구원은 의롭게 된 것을 의미하고, 의로움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특권을 의미한다.
그 특권은 예배할 특권이요, 기도할 특권이요, 응답받을 특권이요, 은혜받을 특권이요, 찬양할 특권이요, 사랑받을 특권이다.
은혜로 말미암은 죄 용서
첫째,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받았다.
둘째,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셋째, 오직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다.
우리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차별 없이'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되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품꾼의 비유처럼 그가 몇 시에 왔든지 품삯을 동일하게 주시는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 처음에 왔든 맨 나중에 왔든 모두 동일하지만, 모두 은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