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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逆說)(1)

역설(paradox)은 표면적으로는 모순적이고 불합리하지만, 사실은 그 속에 진실을 담고 있는 말.

예수님은 역설을 통해 전자의 고통보다 후자의 기쁨이 더욱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산상수훈의  <역설>

세상에서 가난한 자는 불행한 자라도 본다. 

그것은 물질, 돈이라는 가치 기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심령이 가난함은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 안 계시다"는 말이다.

가난함이 돌이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어 복으로 이끈다. 

성경은 물질보다 영적으로 심령이 온갖 비참함과 결핍으로 지배하는 마음, 

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텅빈 가슴을 의미한다.

그것을 안다면 그는 복된 자이다.

그는 결코 방치해 둘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상태 곧 비참함과 거짓, 텅빈 마음 그것을 알고 있다면

어떤 방법을 다해서라도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찾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애통해 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위로, 곧 심령이 가난한 자와 함께하심 발견한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을 만날 것이기에,

하나님을 찾던 그 심령이 하나님 나라(천국)로 채워진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들어와 계심으로 그의 심령은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이 한마디 말씀 속에는 놀라운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대로 삶을 살고 실패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100% 성공법칙>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것을 공동번역에서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곧 무슨 행동을 하든지 그 행동의 근거를 <역지사지易地思之 : 남의 입장에 서서 해 보라>는 뜻이다. 

그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대접받는 자리에 있고 싶어 한다.

나이가 차고 때가 되면 그런 자리는 자연스레 오기 마련이다.

젊어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남을 대접하는 일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 "주도적이 되어라. 자존감을 높여라. 공감하라. 성공하라"고 외친다.

내가  남의 입장이 되어야 해?

죽어도 이해를 못하겠고,

죽어도 공감을 할 수 없으며,

죽어도 따를 수 없다고 말한다.

 

1985 50주 미국 전역에서 가장 훌륭한 아버지 선발에서

그 해 뉴욕 주지사였던 <마리오 쿠오모>가 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는 인사말에서

“내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 아내 마틸다와 두 아들, 그리고 세 딸이 모두 나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일이 잘 될 때는 대개의 경우

나 자신보다는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세 딸들이 일을 잘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잘 안될 때에는 내가 책임을 느껴 개선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공을 자신이 아닌 다른 가족들에게 돌렸다.

혹시 잘 못된 일이나 책임 질 일에 관해서는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보다 더 아름다운 명언이 있을까.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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