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셋째 날 수요일 새벽예배에 나오신 성도님들을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오랜만에 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심령에도 주의 은혜의 단비가 가득 부어지길 바랍니다.
설교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헌신"(막 14:3-9)이라는 주제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신약성경 사복음서에 “한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을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라 한 사건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내용의 유사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 사건으로 보는 경우는 향유 부은 <시기, 장소, 방법, 인물의 이름 등이 그 이유인데,
결정적으로는 각기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향유를 붓고 나서 예수님께서 하신 그 행위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211장에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께 바치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라는 가사에 막달레나 마리아라고 기록한 것은 작사자가 고레고리 1세(교황의 설교와 로마 가톨릭 전통)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막달레나(북부 갈릴리의 지명- 당시 주둔해 있던 로마 군인들을 접대하던 창기들이 많았음 ) 마리아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서는 바리새인 시몬이 이 여인을 죄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가톨릭 교황의 확대 해석에서 시작된 오해이다)
오늘 말씀은 마가복음은 마태복음(26:6~13)에도 동일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14장1절, 때는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3절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태와 마가가 "유월절 이틀 전"이라고 밝힌 것은 향유를 부은 사건이 유월절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성경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주께서 죽었던 나사로를 살려주셨는데,
나사로의 여동생(언니 마르다)이 부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고, 이 때는 유월절 엿새 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이유
저자는 여인이 부은 향유는 매우 값진 향유요,
"순전한" 나드 향 옥합으로 표현 것으로 보아 매우 좋은 향유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옥합(alabaster jar) 옥으로 만든, 뚜껑이 있는 작은 용기, 깨뜨려- 밀랍으로 밀봉된 뚜껑을 제거하기 위해 취한 행동)
그리고 제품이 히말라야산 나도 초에서 추출하는 것으로 당시 최고의 향유로 부자나 귀족들이 사용하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향유를 모은 것은 일종의 중요한 재산적 가치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향유를 모으기 위해 얼마나 애쓰며 조금씩 모아지는 그것을 보면서
위안을 삼고 꿈도 꾸고 인내했을까,
그동안 그녀의 삶이 어떠했을까를 추측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향유는 여인이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모은 재산 전부일 수 있습니다.
이 여인도 향유를 조금씩 모으면서 미래도, 사랑도 꿈꿨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그녀의 <모든 생각>은 무도 바뀌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예수님께 받은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 사랑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기에
이제까지 자신이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던 향유조차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그녀의 생애에 들어오시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삶의 이유와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상당한 값이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 수천만 원에 해당하는 것인데, 한 두 방울만 사용해도 되는 것을
단번에 허비하였습니다.
무엇이 이처럼 아름다운 헌신으로 주님께 자신의 존경과 예우를 다해 표현했을까?
향유의 사용처
사실 이스라엘 여인에게 있어 이 향유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향유는 여인이 시집갈 때 <필수 품목>이었습니다.
신부는 신랑의 머리에 이 <향유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의식>이 있는데
이것은 "나의 신랑은 오직 당신뿐입니다"라는 의미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이 향유는 남편에게는 일편단심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랑과 관련하여 아주 귀한 존경하는 중요한 분들이 집에 초대하거나, 방문했을 때
손님에게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보여주는 행위가 이 향유를
그 귀한 분들의 머리에 한 방울 떨어 뜨려 주는 것이었고,
나머지 향유는 남편을 장사할 때 전신에 뿌려주는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의미로서 영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와 발에 부은 사건은
이 여인이 예수님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또 존경하고, 높여드리고 싶은지를 알 수 있지요.
아낌없이 부은 향유
허비하면서, 값을 따지지 않고 기꺼이 허비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돈이나 그에 상응하는 가치로 판단합니다.
이 여인은 나드향, 곧 수천만원보다 가치보다
주님을 만나서 얻은 그 크신 은혜를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여인은 주님께서 나의 모든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서
예수님께, 예수님을 위해
아낌없이 전부를 부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셨습니까?
그분을 알았다면 여러분은 이 여인의 기쁨, 감격, 환희, 사랑이 넘쳐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면 여러분의 삶의 방향도, 가치관, 인생관도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분명 그분을 여러분이 만났다면 여러분의 삶이 변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의 비전으로 여러분은 충만해지고,
그의 부활의 능력, 그의 권능과 사랑, 성령 충만 등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분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에 가장 우선순위입니까?
주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정말 바꾸어 놓았습니까?
무엇이 바뀌었습니까!
예수를 만나면 새사람이 됩니다.
교회를 다니는 많은 신자들이 예수를 믿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땅에서 복을 받아 형통하게 되는 것에 집착합니다.
기독교는 결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기독교는 예수를 만나 내가 바뀌고,
내 삶이 바뀌고,
나의 인생관, 가치관, 삶의 방향과 삶의 목적이 바꾸어 놓는 종교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고, 베드로가 그랬고,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이 그랬습니다.
어거스틴, 루터, 칼빈, 우리나라 초대 국부 이승만 대통령 등,
이들은 예수를 만났고, 그들의 인생이 바뀌고 국가를 바꾸어 놓은 인물들입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자신이라는 최고의 향유"를 예수께 붓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는 그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고난 받으신 고난주간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도 주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과 뜨거운 헌신이 삶으로 고백되는 일이 회복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