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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죽인 것과 그를 위해 죽음에 넘기운 사람들

고린도후서 4:10-11

죽인 것, 죽음에 넘기움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νέκρωσιν)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θάνατος)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always carrying in the body the putting to death of the Lord Jesus,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revealed in our body.”
1.죽음(νέκρωσιν, 네크로신) : 네크로오에서 유래
죽임, 살해함, 죽은 상태(G3500: νέκρωσις, 네크로시스). 바울은 네크로시스를 성례적 의미로 사용했다. 즉, 예수의 죽음에 연합하여 죽고, 또한 예수의 부활에도 참예함을 의미한다.  
'네크로스'(nekros)는 가장 소망이 없는 상태, 즉 '시체'와 '죽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주로 부활과 대조를 이룬다.
2.죽음(G2288: θάνατος 다나토스), (G2348 : θνῄσκω 드네스코) 죽다에서 유래, '죽는 것, 죽음'을 말한다. 다나토스는 실제적으로 '죽는 것' dying(히 7:23) 혹은 '죽어 있음' being dead(빌 1:20)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죽음을 뜻하는 ‘다나토스’(θάνατος)는 ‘육체의 죽음, 영과 육의 분리, 죄로 인해 야기된 영혼의 비참함, 죽은 악한 자들의 지옥에서의 비참한 상태, 죄로 인해 야기된 모든 비참함을 포함하는 죽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사망하다, 영적으로 죽다’는 뜻이다.

진정한 거듭남과 구원의 비밀을 알았던 사람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죄에 대한 각성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거나 죄에 대한 각성을 경험한 것이 곧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복음을 너무나 값싼 것으로 전락시켜 놓았습니다.
 

믿음의 선진들

진정으로 거듭나고 구원의 비밀을 알았던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살았습니까?
첫째는 구원의 은혜에 한없이 감격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모르기 전에는 한없이 비참한 죄인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비결임을 알았습니다.
둘째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살았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거룩한 삶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희생하든 기꺼이 지불하므로 거룩에 이르기를 열망했습니다.
넷째는 늘 주님이 오실 그 날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그 날이 있기에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라 자처하며 자신의 육신의 안위보다 매일 순교의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같이 이 세상에서 불꽃처럼 타오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이같이 살게 만들었던 원동력은 십자가였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로 죽음을 맛보셨다는 것을.
그는 결코 죽으실 수 없는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사망에 갇혀 있을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하나님이심에도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경험할 죽음을 그가 경험하심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죄인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넘치는 희생을 알았습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로 크고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죽인 것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고 살고자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최대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고 싶어했습니다.
그 십자가는 지고 갈 때 주님은 도리어 무거운 짐을 벗겨주셨습니다.
그들은 이 역설의 신비를 알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질 때 주님도 나와 함께 하시고,
주님은 언제나 거기에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지고 사는 것을
그들의 진정한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그 십자가는 육신으로는 고통이지만,
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복음의 전달자로 사는 것을 위해 희생하고, 복음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만난 그 '십자가의 예수'를 전하지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

여러분은 십자가의 예수를 만나셨습니까?
"십자가의 예수", 바울의 고백 속에 담긴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딤전1장17절,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예수를 만났다면 그가 누구인지를 아시겠습니까?
"영원하신 그리스도가 죽으셨지만, 썩지 아니하시고, 또한 성경대로 그가 살아나셨습니다"(롬15:3~4)
그는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의 영광이시며,
또한 존귀와 영광을 영원무궁하도록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깊이 묵상하며 바울처럼 그분을 깊이 알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도 이 사실에 감격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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