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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부터 영원까지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주 안에서 행복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בָּרוּךְ יְהוָה אֱלֹהֵי יִשְׂרָאֵל מֵהָעֹולָם וְעַד הָעֹולָם אָ
“בָּרוּךְ יְהוָה אֱלֹהֵי יִשְׂרָאֵל מֵהָעֹולָם וְעַד הָעֹולָם אָמֵן וְאָמֵן׃” (시 41:13)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로다 아멘 아멘” (시 41:13)

“Blessed be Yahweh, the God of Israel,
from everlasting and to everlasting!
Amen and amen.”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받고자 합니다.
시편 41편은 [시편 제1권]의 마지막 장입니다.  
저자는 다윗이며 영장으로 한 시(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개역성경] “빈약한 자(가난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 (시 41:1)
“Blessed is he who considers the poor.
Yahweh will deliver him in the day of evil.” (시 41:1)
[원문번역] 오 행복하여라(오 복이 있도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재앙의 날에 그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다윗은 하나님을 친양해야할 마땅한 이유들을 자신이 처했던 환경들 속에서 하나씩 열거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러이러한 이유들 때문입니다."라고 분명한 이유와 자신의 체험을 통해 경험했던 하나님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마치 산상설교의 첫 번째 복을 이야기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①
▷ ①Isaiah 57:15; 66:2”(마 5:3)
[원문번역] 그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 심령이 가난 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가난한 자를 의미하는 헬라어 <프토코스>는 본래 "쭈그리고 움츠려드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자주 비참한 가운데 헤맨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거지 신세로 전락한, 구걸하는, 거지처럼 가난한 사람으로 파산당한 사람을 일컫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외면당하고 짓밟히고 억압을 받는 사람입니다. 나아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에서 하나님 외에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같이 절대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다윗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 이러한 처지에 놓였었고, 살아오면서 이러한 경험들이 많았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너무나 쉽게 지난 시절을 잊고 살아갑니다. 

어렵던 시절, 그토록 처절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었고,

지금은 그러한 고통이나 비참함에서 벗어났건만

그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아픔, 상처, 불행의 기억들을 잊는 것도 은혜이지만,

받은 은혜, 입은 호의와 사랑을 잊지 말아야할 것을 잊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닙니다. 

다윗은 그 은혜와 사랑을 찬양으로 보답합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찬양하며 살아야할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면 영원부터 영원까지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영원이라는 뜻 자체가 무한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반복하여 영원부터 영원까지라고 강조함으로써 우리들이 존재하는 한 무한히 찬양해야 한다는

다윗의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입니다.  

히브리어 “올람”(םלוע)은 ‘영원(永遠, eternity)’이라고 우리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올람이 '시간의 무한한 지속'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시간을 초월한 무시간'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계십니다. 

즉, 시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존재에 있어서 영원이십니다. 

공간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무한히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이 유한하고, 제한된 공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올려드리는 찬양을 기뻐하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으신 시작도 끝도 없으신 무시무종(無始無終)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시작과 끝이 없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히 7:3).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에서도 시편 90편에서도 이같이 그 사실을 묘사합니다. 

1절,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먼지)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이것이 창조주와 우리 인생의 차이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시무종의 하나님,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

모든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습니다(요 1:3).

그러므로 이 세상에 그 어느 것 하나도 그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존하여 계신 하나님(출 3:14)만이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리석게도 인간이 만들거나 고안해 낸 것을 경배합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들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여 가짜인 우상을 만들고

짝퉁 하나님으로 위안을 삼으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안정감일 뿐입니다.

반드시 그 배후에는 사탄이 하나님으로 가장하여 그들에게 절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어리석게도 인간은 스스로에게 속고 있을 뿐입니다.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 왜 하나님이신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았던 다윗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오직 하나님만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 초월하여 계신 하나님이 그가 지으신 피조세계의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를 알리시기를 기뻐하사 계시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고치시고, 응답하시고, 도우시는 분입니다.
이 같은 사랑을 받고 사는 우리들이 그를 경외하고 찬양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입술로 찬양을 올려드리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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