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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길의 명확한 기준, 진리입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이 땅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한 부류는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거나 배울 기회를 놓치고 그 일로 힘들게 사는 사람입니다. 

또 한 부류는 자신이 왜 사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인생관이 없거나 잘못 형성되면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일삼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삶의 방식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인간다움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다움'입니다. 이는 "기대수준과 자격이 충분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에 <잘 어울린다, 합당하다>는 입니다.

<신자답다, 사람답다>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삶의 목적

소요리문답의 첫번째 질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입니다.

<답>으로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창조주이시고, 선하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그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다움입니다.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선택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또 즐겁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벧전2장15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엡4장 23절,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5장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1)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살고 있는가?

무엇을 나의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 기준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기준이 우리의 장래를 결정합니다. 
밭을 가는 농부가 소에 멍에를 지우고, 쟁기를 손에 잡고 밭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가 어떻게 하면 똑바로 밭을 갈 수 있을까요?
밭이 잘못 갈렸다고 문제가 있냐구요?
밭을 제대로 갈지 못하면 농사의 효율성도 떨어질 뿐더러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손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농부가 밭을 똑바로 갈기 위해서는 정확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시선을 향하여야 합니다.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요동하는 배처럼 갈지(之) 자를 그으며 인생을 망치고 맙니다.
결국은 허망한 인생길을 가게 됩니다.

무엇을 내 인생의 기준을 삼아야 하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중요해 보이고, 그것을 따라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지는 것 같고, 또 나만 손해보는 것처럼 유혹하는 것들에서 나를 지키고 꿋꿋하게 살 수 있을까요?
바울은 그것을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엡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우리는 당장 내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내가 익숙한 길,
자주 다니던 곳은 알지만,
우리가 가는 인생길은 매일매일 새로운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도 인공위성에서 나의 위치를 찍어주는 GPS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로 성경은 인공위성 역할을 해 줍니다.
무엇이 이 시대를 이끌고 있는가?
이 세상의 사조는 무엇인가?
즉, 이 세상의 풍향계는 무엇인가?
온갖 교훈의 풍조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들이 사는 세상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이러한 세상에서 누가 나를 진리로 이끌어 줄 것인가?
친구인가? 세상인가?
그래도 가장 안전한 것은"부모"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아는 스승"입니다.
누가 나를 헛된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서 나를 지켜 줄 것인가?
사도 바울은 아비와 같은 심정으로, 그가 아는 진리를 어미와 같은 마음으로 말합니다.
엡3장 14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 우리의 삶의 명확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분명한 것은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에덴동산에는 하나님의 법이 그 기준이었습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지식의 나무>였습니다.
엡3장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바울은 진리는 예수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진리는 우리를 헛된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줍니다. 진리는 허리띠와 같습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참되고 바른 길을 가게 해 줍니다.
진리는 우리를 이 세상의 풍속과 허망한 것, 헛된 신화로부터 우리를 지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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