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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신조어는 그 시대를 반영하며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1990년대 슬로비(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
2000년대 웰빙웰다잉(Well-being & Well-dying)
건강하게 잘 사는 것보다 건강한 죽음
2010년대에는 욜로족(You Only Live Once)
'욜로(YOLO)'는 신조어로 'You Only Live Once'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입니다.
'You only live once, but if you work it right, once is enough.
(한 번 사는 인생, 제대로 산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You live every day, you only die once.'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며 살다가 딱 한 번 죽는 것)

후회 없는 삶에 대한 고민과 시대 흐름을 반영한 문장이었지요.
표면적인 의미는 '한 번뿐인 인생'이란 뜻이지만,
그 속에는 '미래보다는 현재의 나의 삶에' 더 의미를 두는 현대인의 특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욜로족’은 지금 현재를 가장 중요시하며 소비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말에는 'Carpe Deim’¹과 ‘Memento Mori’²의 의미를 모두 내포하는 문장입니다.

그러나 2022년 트렌드는 K-파이어족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입니다.
최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보고[2022년 6월]
MZ 세대 사이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적 독립과 조기 은퇴의 약자로 만들어진 신조어입니다.
시대마다 생각하는 사조가 바뀌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표면적 변화일 뿐입니다.
한 시대의 유행일 뿐입니다.
이러한 것이 인간의 내면의 본성을 바꾸어 놓거나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유행처럼 번졌다가 시들해지고 다른 것으로 대체될 뿐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사느냐?"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의 가치" 역사 이래로 변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과학이 진보는 편리함을 가져다주고, 의학의 진보는 좀 더 생명을 연장해 줄 뿐입니다.
이러한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답게 해 주는 것에 가치를 두고 살 때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당장 눈앞에 있는 즐거움을 찾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것에 거의 무관심하거나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러므로 시대의 유행을 좇아가기보다 현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피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더 유익하고 더 중요합니다.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느냐에 달렸습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히브리서 3장 16-1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16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 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라고 격양된 목소리로 견책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는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동족인 유대인들에게도 배신자로 낙인 되어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에 버겁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왔던 그 동족에게로, 유대교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리로 돌아가면 현실에서 겪는 고난은 해소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고 맙니다.
만일 배교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한 영원한 나라>를 잃고 맙니다.
"현실과 믿음 사이에서" 우리는 고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예수님은 이 청년의 중심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다른 번역에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가니라."라고 아주 실감 나게 번역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오늘이라고 일컫는 날에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며 살 것인가?
내 인생의 장래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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