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흥을 사모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흥이 우리에게 찾아오는가?
분먕한 사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건이지만, 우리는 메마른 날에도 비를 기다림 같이, 농부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이 부흥을 주시기를 시모해야 합니다.
마가여한의 다락방에 모여 약속하신 성령 몇 날이 못되어 허락하실 약속의 성령을 기다리며 전혀 기도에 힘쓰던 성도들 같이, 우리가 기도의 불길로 타올라야 합니다.
"부흥의 역사는 목사들만 아니라 매우 비천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교회의 연약한 지체들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탄광에서 일하던 에반 로버츠, 욕쟁이 존 버니언, 구두수선공 디엘 무디, 집시 출신의 사람을 통해서도, 국기 계양대 앞에 모여 학교를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던 학생들을 통해서도.... 세계 곳곳에서 부흥의 불길이 일어 나길 하나님이 더 간절히 원하신다.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으며,
그 어떤 규칙도 정할 수 없다."
우리는 그의 약속을 믿고 기도할 뿐입니다. 언젠가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셔서 그의 권능으로 거룩한 부흥을 하럭하실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고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성령세례를 사모하던 평범했던 주부 제시펜 루이스에게 식탁에서 놀라운 체험을 주셨던 하나님, 그를 탁월하게 사용하시던 그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우리도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신학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로이드 존스의 부흥신학의 '성령세례'는 우리들이 따르는 정통 개혁주의 신학 노선에서 다소 벗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비난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성령의 일하심의 다양성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의 성령에 대한 생각이 젊었을 때보다 목회의 현장에서 더 깊이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저술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능한 신학자의 가르침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들도 작은 부분에서는 실수나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그의 경험이나 신학적 지식의 불비할 때는 그가 볼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교리나 체험이나 가르침은 언제나 성경의 검증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안수할 때에 그들도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유대인 사도들조차 인정하지 않던 일이 일어 났습니다. 그일로 인하여 그들의 생각이 깨뜨려지고 확장되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 제자들도 그들이 구원을 제한하고, 성령의 일하심조차 제한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들의 신학이 성령의 일하심을 제한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신학은 이론이며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요20:22절의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행8:14-17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물세례)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성령을 받음으로 나타난 증거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이러한 증거는 목회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하시는 사역을 자신의 경험 안에서나 신학 안에서 고정적인 틀로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들이 생각하는 한도 안에서만 일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지성과 학문에 제한받으시거나 매이지 않습니다. 로이드존스의 신학을 이해하려고 하고, 오히려 다양한 성령의 일하심을 우리들의 학문으로 제한하려는 무지에 대해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경고표지판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도 나의 신학은 정확하고 전혀 틀림없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넓게 열어둔다면 성령의 다양하게 일하심을 알게되고,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줄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라는 약속의 말씀
"만일 우리가 세속적 야망에 사로잡혀 있거나 영적침체를 겪는다면 그것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부주의하고서 영적 생활에서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물을 넣지 않고 밥을 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세례는 성령충만입니다. 우리들이 믿을 때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고 유효하게 복음사역을 하고자 한다면 성령충만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흥은 무엇인가?
부흥은 느닷없이 찾아오시는 성력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능력을 부어주심"으로 놀랍게 영적인 회보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때로는 개인적으로 때로는 집단적으로 임합니다. 오순절과 고넬료의 가정에서처럼 많은 경우 집단적인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이와같이 "부흥의 핵심은 성령께서 함께 모인 많은 무리들 위에, 때로는 한 교회 전체 위에, 많은 교회들 위에, 어느 지역들 위에, 또는 한 나라 전체 위에 임하신다는것입니다 ...
"부흥"(revival)이란 성령의 임하심, 또는 흔히 사용되는 다른 용어는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나타납니다. 성령부어주실 때에 다양한 현상들, 은사체험과 하나님의 임재를 다양하게 경험합니다. 부흥은 성령께서 한 사람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능력으로 임하셔서 복음과 하나님의 사역들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방문하신 것이요, 하늘의 날들이 땅에 임한 것이며, 교회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주재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한량없이 주어진 풍성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라
부흥, 하나님께 찾아라
"로이드 존스는 부흥의 특징과 성격을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서 찾는다"
"부흥은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주권적이고 즉각적이고 초자연적인 행동으로서 설명될 수 없는 기적이다. 따라서 부흥에는 그 부흥을 이루는 방식들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께서 부흥을 위해 사용하신 사람들, 장소들이 제한이 없는 까닭은 부흥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강조한다.
부흥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으며, 그 어떤 규칙도 정할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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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은 무엇인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부흥신학
"부흥의 역사는 목사들만 아니라 매우 비천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교회의 지체들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으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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