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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道, Ὁ λόγος ὁ τοῦ σταυροῦ )를 아십니까?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道)는 대부분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도(道) 일 것입니다.
동양철학에서 도(道)는 우주 혹은 세상의 근본 원리 또는 이치이며, 인간의 본성(本性)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리가 길을 나타낼 때에 '도로(道路)'로 쓰고, 진리에 이르는 길을 일컬을 때도 쓰입니다.
도(道)는 한자로 풀이해 보면 辶(쉬엄쉬엄 갈 착), 首(머리 수)가 합쳐진 글자인데, 
머리수(首)자는 사람의 머리를 의미하므로, '사람' 을 뜻합니다.
사람의 머리가 가야할 방향, 인간이 마땅히 가야할 그 길, "사람이 지켜야할 마당한 것을 도리(道理)"라고 합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도리를 해야지" 도리는 인간다움, 사람다움입니다.

도리는 본질이지요. 속성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도(Ὁ λόγος, 道) 

바울이 말하는 도(道)는 십자가에 담긴 진리입니다.
우리들은 보통 십자가라고 하면 머리에 떠 올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골고다 언덕의 나무십자가입니다.
멜깁슨이 만든 영화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 정도일 것입니다.

사형수가 지고가던 나무십자가
어차피 처형되어 죽어 버림을 받은 사형수는 자신이 고통을 받고 죽어야 할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 형틀을 지고 영문 밖에서 처형이 될 집행 장소까지 어깨에 지고 가는 것이 관례였으며 죄수는 발가벗겨졌다.
당시 나무 십자가 전체 무게는 136kg이나 되기 때문에 가로목만 죄수가 지고 가게 하였다. 가로목은 보통 34~60kg의 무게를 지녔으며 죄수의 목덜미를 가로질러 고정시켰고 두 어깨로 균형을 유지하도록 했다.¹
이것이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는 복음서에 나타난 죄수가 처형되어야 할 십자가였다.

그러나 그가 지신 십자가는...

그러나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십자가는 물리적인 나무가 아니다.
그 나무 십자가, 그리스도가 지셨던 십자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지셨던 십자가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나무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살아 있다.
그 십자가 이야기는 영원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벨이 죽었으니 믿음으로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아벨)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지금도 말하고 있느니라. (히11:4).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 골도다 언덕의 십자가는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슴저미는 사랑이야기

그리스도가 지신 그 십자가,

거기에서 하나님은 가슴이 터지도록 외치고 계십니다.
"이것이 내 어린 양(너희 죄를 지고 죽는 어린양),

 널 위해 못 박힌 그 십자가이다."라고.

그 십자가는 지금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 십자가를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십자가에 담긴 나의 생각과 마음,

내 마음에 맺힌 이야기를 너는 아느냐?"

"십자가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 아담을 짓기 전부터 계획해 놓은 것이란다."

우리가 그것을 알기를 하나님은 간절히 원하십니다.

 

"나무십자가"에서 "말씀의 십자가"로

1)십자가의 영원성
죄수 하나가 못 박혀 죽은 십자가는 그의 죽음과 함께 멈춘다.
하지만, 그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가 하나님이시기에,
영원부터 계시고 영원까지 계신 분이기에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같이 의미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한다면,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즉 나무 위에 그분의 손과 발이 못 박힌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십자가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십자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전반적인 구원 계획 안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바라보았던 우리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창세전부터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구원 사건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십자가는 단지 골고다의 물리적인 십자가, 즉 예수님이 나무에 못 박혀 운명하신 사건만을 보여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십자가는 손발을 못 박아 목숨을 빼앗는 잔혹한 사형대라는 의미를 훨씬 더 뛰어넘는다.
십자가는 물리적인 차원은 물론 시간조차 초월한다.
영원 전에 시작된 하나님의 사역 안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조명해 봐야만 그와 같은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계 13:8)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삶이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딛 1:2)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어리석은 인간이 고안해낸 작품이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준비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십자가는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어 죄를 짓기 전에 이미 영원하신 하나님의 심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십자가, 그 이후

이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에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함께 시작되었고,
그리스도가 완성하실 역사의 종말까지 포함한다.
영원한 과거뿐 아니라 영원한 미래에까지 그 그림자를 드리운다.
십자가의 온전한 의미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포 함한다.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은 초대 교회의 근본 진리였다.
이 점은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십자가 사건에 견줄 수 있는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십자가는 역사상 어떤 사건도 이보다 큰 사건이 없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물리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사건이다.
하나님이 걔입하신 사건,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계획하신 사건이다.
이 놀라운 십자가의 비밀,
하나님의 마음 안에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비밀이었다.
그 비밀이 때가 되어 그의 아들 안에서 나타났다.
이 놀라운 사실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알 수 있는 이해력을 허락주시고
십자가가 성부하나님께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깨닫게 해주시기를 바란다.


사도바울의 복음, 십자가의 도

이 놀라운 사실을 그 비밀을 사도는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바울에게는 이 십자가의 도가 우주의 신비를 열며 모든 우주의 비밀을 풀며,
모든 것을 화목시키는 열쇠로 인식되었다.
이 십자가의 도가 바울에게 주어진 것은 그를 통해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서의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우주 안의 모든 문제와 비밀을 푸는 유일한 열쇠>인 이 십자가의 도를 깨달아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라고 선언한다.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도는 한편의 메시지인 '설교' 가 아니다. 지식이 아니다.
잠시 십자가의 도에 관한 바울의 진술부터 살펴보자.
십자가의 도( Ὁ λόγος γὰρ ὁ τοῦ σταυροῦ)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설명하는데, 왜 헬라어 접속사(conjunction) “γὰρ”(가르)를 썼을까?

왜냐하면“γὰρ”²

한글 성경은 헬라어 원문 성경에 엄연히 써 있는 중요한 접속사인 “γὰρ”가 있는데 이를 번역을 하지 않았다.
없다고 해서 문장이 불분명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접속사 앞 문장과 뒷 문장의 연결 고리를 하기 때문에 해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바울이 로마서에서는 자주 사용된다.
접속사인 이 단어는 “γὰρ”(because, 왜냐하면, Heb. כי ki)이다.
로마서 핵심 구절인 롬 1:16-17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οὐ γὰρ ἐπαισχύνομαι τὸ εὐαγγέλιον (우 가르 에파이스큐노마이 토 유앙겔리온)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노니 For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NASB)
이 말은 접속사인 “γὰρ”가 앞의 문장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앞 문장과 접속된 한 문장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본문 고린도 전서1장 18절도 17절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고전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그 도 (왜냐하면) 그 십자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해되었습니까?
바울이 강조하려는 것이 <물세례>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린도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베드로파), 그리스도파 등 그들이 누구에게 복음을 들었고, 믿게 되었는가를 따지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에 관심의 초점이 있었다.
바울은 자신이 몇 사람에게만 세례를 베풀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세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그 세례를 왜 받았는냐?
세례가 중요하냐? 그 세례를 받게 된 이유가 중요하냐?
물세례는 한번으로 충분하다.

또 너희들이 명망있는 분(아볼로, 베드로, 사도의 제자들...)들에게 물세례 받은 것 가지고 서로 자랑하지 마라.

누구에게 물세례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도 몇 사람에게만 세례를 주었다. 만일 세례를 주는 일이 중요했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진짜 중요하냐?  

진짜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도"이다.
결국 너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그게 핵심이야.

바울은 1:29~30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너희의 자랑은 주 안에서, 오직 예수만 자랑해야 해.

육체의 자랑은 아무것도 아니야.
너희가 거듭나고 구원얻은 것이 세례가 아니다.
너희가 구원받은 것은 "십자가의 도"로 얻은 거야.
예수는 우리의 지혜이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어! 이거 자랑해야지

신자들은 때로 비본질적인 것을 중요시 한다. 또 비본질적인 것들의 체험을 자랑한다.  

스프라울(R. C. Sproul)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믿음과 열정이 증가했다거나,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다는 등의

얘기를 들으면 매우 기쁘다.

내가 우려하는 바는 '그 체험이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체험에 대한 해석을 내리려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스르곤 한다.

우리가 근거로 삼을 것은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복음진리: 십자가의 도)를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십자가의 도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람의 말의 지혜(설교, 메시지)가 아니다.
그가 전하는 것은 <오직 복음>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자랑은 물세례와 같은 체험이 아니다.

우리의 진짜 자랑은 그 <복음>은 <도>,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하는 것이다. 라고 사도는 증거한 것이다.
  "복음 = 도 = 십자가 =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열되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가가 중요하단 얘기다.
1)바울이 말하는 도( Ὁ λόγος)
"복음 = 도=십자가 = 하나님의 능력"
바울은 "십자가의 도" 곧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이유와

그 십자가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가의 도는 무엇을 나타내려 한 것일까?
도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한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십자가를 통해 나타났고,
그 십자가는 곧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2)'말씀( Ὁ λόγος)' 곧 '로고스'
바울은 십자가를 이야기 하면서 그 십자가의 예수는
로고스( Ὁ λόγος)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와 똑같은 단어가 요한복음 1:1 에도 기록되어 있는 데
여기에서는 '말씀'으로 번역되었지만
실제는 고린도전서 1:18과 동일한 '도' 곧 로고스란 헬라어가 사용되었다.
“태초에 말씀( Ὁ λόγος, 로고스)이 계시니라 --------------------- 태초에/ 영원성, 말씀이 계시니라/신격성(인격성)
이 말씀( Ὁ λόγος, 로고스)이 하나님(성부)과 함께 계셨으니 -- 함께/신성, 동등성
이 말씀 ( Ὁ λόγος 로고스)은 곧 하나님(성자)이시니라." ------- 영원성, 신성, 동등성
Ὁ λόγος(로고스) =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심( 동등하심, 동일 본질이심, 동일한 영광) = 성자 하나님
(로마서 9:4-5) 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를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Ὁ λόγος(로고스)³

헬라어 사전에 나오는 "로고스"의 정의
'내적인 생각이나 사상을 외적으로 표현해 놓은 말씀, 또는 내적인 사상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은 설명되고 해석이 되며, 이해되어 진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자신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로고스 즉 그분의 내면에 있는 생각과 사상이 바깥으로 표현되어 말씀으로 나타난 것이다(히 1:3).
더 나아가서 주님의 근본 본체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하나님의 내적인 사상,
곧 로고스가 육신을 입어 외적으로 표현된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이와 동일한 논리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고 재창조하여 예수 그리스도 의 형상으로 만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속생각(사상)이 외적으로 표현되어 <말씀( Ὁ λόγος)>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곧 본문이 말씀하는 "십자가의 도"의 참된 의미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십자가는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지 그 <속생각과 뜻>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심벌(상징)이고, <십자가의 도>는 그 전체적인 하나님의 생각과 사상을 외적으로 표현해 놓은 말씀인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는 그 자체 안에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을 내포하고 있다.
그 '도'는 다이내믹할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이 '십자 가의 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신다.
십자가에 대한 설교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 그 자체 가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십자가의 도를 타락하고 상실된 이 세계에 선포해야만 한다.

세상의 왕들이 사자(使者)들을 통하여 왕의 어명을 만방에 알리듯이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복음의 말 씀과 능력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십자가에 있는 것이지,
우리의 경험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란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에 대한 인간의 어떤 주관적인 평가나 사상도 아니요, 단순히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능력의 십자가의 말씀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모든 권세, 곧 타락하고 부패된 인간들을 구원하시며,
인간을 타락하게 만든 원수마귀를 완전히 멸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뜻은 오직 십자가의 도를 통하여 세상 가운데 표현된다.
타락한 천사장(마귀/사탄)은 예수의 부활로 완전히 패배하였고, 부패한 아담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
"바울에게는 이 십자가의 도가 우주의 신비를 열며 모 든 우주의 비밀을 풀며,
모든 것을 화목시키는 열쇠로 인식되었다.
이 십자가의 도가 바울에게 주어진 것은 그를 통해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서의 십자가를 증거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우주 안의 모든 문제와 비밀을 푸는 유일한 열쇠인 이 십자가의 도를 깨달아야만 한다.

(고전 1:18)
Ὁ λόγος γὰρ ὁ τοῦ σταυροῦ τοῖς μὲν ἀπολλυμένοις μωρία ἐστίν,
τοῖς δὲ σῳζομένοις ἡμῖν δύναμις θεοῦ ἐστιν.” (고전 1:18)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word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dying,
but to us who are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고전 1:18)
참고
1.출처 : 아이굿뉴스(http://www.igoodnews.net)
2.“γὰρ”를 넣어 읽어보자.
접속사 “가르”(γὰρ)가 롬 1:16-17절 사이에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3 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16 οὐ γὰρ ἐπαισχύνομαι τὸ εὐαγγέλιον· δύναμις γὰρ Θεοῦ ἐστιν εἰς σωτηρίαν παντὶ τῷ πιστεύοντι, Ἰουδαίῳ τε πρῶτον καὶ Ἕλληνι. 17 δικαιοσύνη γὰρ Θεοῦ ἐν αὐτῷ ἀποκαλύπτεται 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Ὁ δὲ δίκαιος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15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왜냐하면(γὰρ) 내가 복음을 부 끄러워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왜냐하면(γὰρ)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요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왜냐하면(γὰρ)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http://gnpnews.org/archives/76859
3.“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 1:1)
“οὗτος ἦν ἐν ἀρχῇ πρὸς τὸν θεόν.”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2)
“The same was in the beginning with God.” (요 1:2)
“πάντα δι’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καὶ χωρὶς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οὐδὲ ἕν. ὃ γέγονεν”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3)
“All things were made through him. Without him was not anything made that has been made.” (요 1:3)
“ἐν αὐτῷ ζωὴ ἦν, καὶ ἡ ζωὴ ἦν τὸ φῶς τῶν ἀνθρώπων·”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4)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요 1:4)
요1:18 “θεὸν οὐδεὶς ἑώρακεν πώποτε·
⸂μονογενὴς θεὸς⸃ ὁ ὢν εἰς τὸν κόλπον τοῦ πατρὸς ἐκεῖνος ἐξηγήσατο.”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No one has seen God at any time.
The one and only Son,① who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s declared him.
▷ ①NU reads “God”” (요 1:18)
요1:18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이려고 나타나셨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 로고스는 하나님이시고,
그로(창조중보자)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 만물을 존재케 하신 존재자요,
만물은 그 안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가 다스리고 계신다.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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