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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성결(거룩)이란 무엇인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이사야 6:3, 요한계시록 4:8)
세 번 반복되는 찬송은 신구약 성경에 두 번 등장합니다.

거룩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그를 섬기는 그의 백성에게 거룩을 요구하신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선지자로서 부름을 받을 때 스랍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하였다.
이때 ‘거룩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는 <카도쉬קָדוֹשׁ >이다(사 6:3).
‘거룩’은 순우리말(한자로 ‘성결(聖潔)’, holy)인데, ‘거룩/성결’(명사)은 <코데쉬 קֹדֶשׁ>이다. 동사 <카다쉬 קָדַשׁ>와 형용사 <카도쉬 קָדוֹשׁ>가 파생되어 나왔다. "거룩하다"<카다쉬 קָדַשׁ>는 "세상의 속된 영역과 구별하고 분리하되어 매우 고귀하고 신성시되는 어떤 영역이나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거룩하다는 것은 더러운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거룩"은 우리말 사전에는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 우리들이 예배 찬송가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이른 아침 우리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주 성삼위일체 우리 주로다"라고 고백한다.
성경에서는 모세를 부르실 때"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발을 벗으라"라고 하셨다.
제사장들이 성막에 들어갈 때 입는 성의에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라고 했다(출 28:36-38).

또한 예배와 삶의 계명으로 주심

레위기 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베드로전서 1:15~16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나아가 우리 존재가 거룩한 제사장이라 하였다.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결케 되는가?

우리는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하신다.
요일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신앙이 어린 성도들은 성경적인 회개에 관해 잘못 알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회개해야 할 것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굳이 복잡한 언어로 회개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회개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대해서는 어리석게도 그것을 자기 의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에 대한 오해는 잘못된 산앙과 거짓된 안정감, 거짓된 회개와 더불어 자기의 종교적 만족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어리석음을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성경적 회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배역한 인간의 사악함에서 돌이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이길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죄를 방치하면 점점 죄는 규합하여 단단해지고 마음을 굳게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빈복적인 회개가 필요합니다.
구원을 받는 순간 완전한 새로운 피조물(신분)이 됨에도 불구하고 온전하지(삶)는 못합니다.
구원받은 자녀들에게도 그 죄의 습성(습관, 버릇)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것은 완전해서가 아니라 완전함으로 나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회개(돌이킴)는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점진적으로 온전함(성화)을 향해 나아갑니다.
베드로 전서 3장 21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베드로가 말한 것을 이해하십니까?

베드로는 구원의 세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물로써 씻어내는 외적 의식이 아니다.
신앙고백으로 물세례를 받을 때 그 사람 안에 반드시 확고한 <선한 양심의 신실한 대답>이 내포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참된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거룩한 세례의 효력은 우리들의 어떤 행위의 공로에 의존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존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한 것을 우리의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나의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세례자의 공로나 선행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을 얻습니다.
세례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 죽으시고, 날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부활)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고 말합니다.
이같이 올바르게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예식에 따라 입으로 시인하므로 그에게 세례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속으로 세례를 주노라"라고 공포하여 인치는 것입니다.

세례는 구원의 수단이자 구원받음의 약속이 됩니다.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21절).

회개에 합당한 선한 양심으로 고백이 없이는 물세례에 외적으로 참예하는 것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 있어야 만합니다.

<양심의 응답 : 나는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와 허물로 죽은 자입니다.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외에 구원받을 길 외에 어떤 방법도 없는 비참한 죄인이며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아래에 있는 자입니다>이 있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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