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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말하는 멍에는 정말로 쉽고 가벼울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짐은 과연 무엇일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

짐을 지우다 [G5412: φορτίζω, 포르티조 phortizo-
burden. 포르토스(G5414: 짐)에서 유래] 동사 포르티조는 신약성경에서 두 번 사용되었다(마 11:28, 눅 11:46)

수고하고 무거운 짐

수고는 당연히 피곤하고, 지치고, 녹초가 되게 하는 일을 말한다.
그 수고는 무거운 짐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고달픔 혹은 가난으로 인하여 오는 힘든 삶의 무게를 말씀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지켜야 하는 율법으로 인해져야 하는 짐을 의미했습니다.

율법의 짐, 율법 준수

본래 하나님이 율법을 주실 때에는 <짐>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짐이 되고, 수고해야 하고, 무거운 것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왜곡시켰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순기능(본래 주신 의미)은 신본주의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망쳐 놓았습니다.
도리어 더 많은 역기능(왜곡, 변질, 퇴색되ㅁ을 의미으로 인본주의가 가미되어 복이 짐으로 바뀐 것이지요.

누가 그랬나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는 결코 우리들을 힘들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인간을 부려먹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뜻(통치)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즐거이 지고가야할 복을 짐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율법교사들(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입니다(눅 11:46).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화가 있을진저"라고 비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가르치는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율법의 가르침)을 지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형식적인 계명들(지킴)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참조: 마 23:23)은 버렸습니다.

율법을 왜 지켜야 하는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깊은 뜻은 무엇입니까?
그 것은 세가지입니다.
즉 그분을 향한 의(義), 그분의 인(仁), 그분의 신(信)입니다.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과 소통입니다.
<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의 신앙입니다.
경건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좋으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섬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하나님으로 섬기는 삶,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게 하는 삶,
그 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삶의 목표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사랑보다 세상 사랑 곧 육체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을 더 추구하지는 않습니까?

내게 와서 배우라.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이니라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이니라"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멍에는 스승의 철학, 행동 전부를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이유는 그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멍에는 스승의 철학과 행동 전부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멍에(예수님의 가르침=하나님 사랑,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는 쉽고 그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마 11:28 이하).
요일 5:3을 보면,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계명들은 사랑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율법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수장 기둥 같은 일꾼이 죄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대하여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 자유의 율법"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에 매이는 삶이 아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은 더 많은 <죄 : 육신>로부터의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약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더 많은 자유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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