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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어릴 적 뒷동산에 올라 연을 자주 날리곤 했단 추억이 있다.
겨울인데도 찬바람이 불어도 신이 나서는 뒷동산에 올라갔다.
바람이 없으면 바람개비를 만들어 달리면서 바람을 느끼곤 했다.
여름엔 자전거를 타면 시원한 산들바람,
겨울엔 매서운 찬바람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었다.
빨래가 흔들리고, 나뭇가지에 나뭇잎이 바람에 스칠 때 바람의 흔적으로 바람을 알게 된다.
우리가 숨을 쉬면서 공기를 느낀다.
호흡, 그런데 우리의 속이 시원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전반부의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해 주실 때 이해가 되어 기쁨이 가득했다.
그러나 성장해서 신학적이고 원어적인 이해가 넓어지면서 더 많은 은혜를 주셨다.

보이지 않으나 실제하는 영

보이지 않아도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눈을 감고도 바람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의 영은 영이신 하나님을 느낀다.
히브리어 <루악흐רוּחַ>는 "바람, 영, 호흡, 숨, 마음, 영, 생기, 공기, 기분, 경향"이다.
창1:2, <루악흐 하엘로힘רוּחַ אֱלֹהִים>은 개역에서 '하나님의 “영(靈)”이다. 구약 헬라어 역본(70인역)은 '프뉴마'(πνεῦμα)로 번역했다. 구약성경에 총 389회나 등장한다. 구약성경에서 “루아흐”는 “성령”이라는 의미로는 94회 사용되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영도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바람이 지나가는 흔적을 보듯 마찬가지로 내 안에 영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 실체를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다른 감각기관으로 알 수 있다.

영은 영으로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내 생각으로,
예수님의 감정이 내 감정으로,
예수님의 의지가 내 의지에로 들어와 내 생각은 소망으로 감정은 사랑을, 의지는 믿음을 갖게 된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내 영이 반응을 한다.
기쁘고 감격하고 환희가 넘친다.
주님의 말씀은 귀로 듣고 내 마음에 들어오면 내 안에 그가 주시는 "소망이 생기고, 사랑이 생기고, 믿음"이 생긴다.
또 호흡을 통해 숲 속으로 들어가면 시원함을 느낀다.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의 원시림이다.
사람은 영(혼)이 존재한다.
하나님도 영이시다(요 4:24).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을 지으셨다.
인간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하나님을 닮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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