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이 그러했습니다.
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태어난 어거스틴은 젊음시절 방탕한 삶과 사생아를 낳고 오랭 세월 방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선과 악으로 나누는 마니교를 신봉했었습니다.
로마로 건너간 어거스틴에게 어머니 모니카는 수사학의 거장인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어보라고 권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라
암브로시우스는 당대의 수사학의 대가이자 웅변가요, 진리를 파수하는 영적 리더였습니다.
젊은 수사학 교수 어거스틴은 밀라노에서 가장 유명한 그의 설교를 통해 이해할 수 없었던 성경의 보다 깊은 의미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렇게 그가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그에게는 <거듭남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작은 불씨처럼 어거스틴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율법과 정죄
그는 자신의 추한 정욕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절망과 수치심에 빠지곤 했습니다.
386년 8월 말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 알리피우스와 마주 앉아 이집트의 수도사 <안토니의 놀라운 희생과 거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대화는 그를 더 깊은 영적 갈등과 번민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가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알리피우스를 떠나 자신이 묵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며 묵상할수록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머리를 쥐어뜯고 두 주먹으로 이마를 치며 괴로워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의 영혼 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그 자신의 비참한 모습이 눈앞에 필름처럼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폭우 쏟아지는 것 같은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것들을 끄집어내어 놓으니, 그것이 모두 헛된 것이며,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혀 통곡하였습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들려오는 주의 음성
그때 나는 왜 나의 더러운 생활을 이 순간에 깨끗이 끝내지 못합니까?”라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이웃집에서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톨레 레게, 톨레 레게(“tolle lege, tolle lege”)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
이러한 어린아이들의 목소리는 마치 하늘로부터의 명령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서신을 펴 들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을 읽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이 말씀은 광명한 확신의 빛으로 어거스틴의 심장을 깊이 찌르듯 박혔습니다. 그토록 오랜동안 방황하던 그의 신앙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습니다.
수사학 교수 어거스틴은 이 구절에 응답하여 결단하게 됩니다.
그가 그의 온 생애를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처럼 한 인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역사는 말씀으로부터 오는 회심입니다.
회심은 인격적인 변화
“회심”이란 인간을 송두리째 바꾸는 질적 변화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회심이 인간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날 때, 그를 바라볼 때, <죄용서>와 함께 찾아오는 평안함, 하늘의 위로, 영혼의 자유함, 환희.... <구원의 확신>으로 넘쳐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회심을 허락해 주시도록 몸부림치며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