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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은 훈계의 도구인가?

훈계와 징계
손이나 도구를 사용하거나 언어 폭력은 아이들의 가슴엔 피멍보다 짓게 물든다.
종종 아이들을 마구 패듯 때리는 비인격적인 폭력(?)이 훈계라는 미명하에 저절러진 비상식적인 문화가 왜 학교에 생겨났을까? 그리고 군대도 역시 그러하다.
아이들이 죽을 만큼, 인격적으로 모욕을 받을 만큼, 아이들이 죽을 만큼 얼차려를 주어야할까?

물론 교육하는 당사자인 교사나 장교의 입장에서 아무리 화가 난다해도 그렇다.
그것은 도가 지나친 것이다.
그것이 무슨 교육인가? 폭력이다.
이러한 문화는 언제부터엿을까?
일제시대 때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 교사들(순경)이 조센징이라면 폭력으로 억압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군사독재시절의 유산이다.

본래 훈계 문화는 무엇이었을까?
말로도 깨닫는 사람과 어리석어서 말로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잠언에 자식을 채찍질로 다스리라는 말이 여러번 나온다.
여기서 사용되는 번역이 문제이다.
마치 때리는 것이 정당한 것처럼 번역한 것이다.
아니다.
아이들도 엄연한 인격체이다.
그들이 받은 상처를 누가 치유해 준단 말인가?
훈계나 꾸지람, 채찍 등....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아니 꼭 필요하고, 또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방법과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성경은 지혜의 책이다.
성경의 번역 언어도 좀 순화시켰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러분은 자식을 채찍질(?)을 하는가?

(잠 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잠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이는 훈계의 방법이 문제이다.
훈계가 자칫 지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주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말 번역도 문제이다.

왜 채찍이라고 번역했을까?
채찍은 가죽으로 길게 늘어뜨린 것으로 말이나 소몰이에 사용되는 도구이다.
이름 그대로 채찍은 마구 후려치는 행위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다. 
한자어로는 편달(鞭撻)이라고 한다.
종종 주변에서 '지도 편달(指導鞭撻)'이라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채찍의 의미를 안다면 그런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 물론 오늘날에는 순화된 의미도 있겠지만.
편달은 길쭉한 대나무(뿌리로 만든) 지팡이, 혹은 막대 모양의 무늬에 가죽끈이나 체인 등을 설치한 기구로 손으로 휘둘러 짐승몰이를 하거나 강요할 때 쓰이는 도구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사람이나 동물을 길들이기 위한 체벌 도구로 엉덩 등을 때릴 때 사용한다. 그리고 채찍의 끝에 속도가 얼마나 빠르고 쎈지, 음속을 넘는다고 한다.
심지어 범죄자들을 위해서는 사용되는 채찍은 그 끝에 금속이나 뼛조각을 매달아 살이 찢기가나 뼈가 부러뜨리고 으스러지도록 만든 다.
그러니 편달을 사람에게 쓸 용어가 아니다. 짐승을 길들이는 도구일 뿐이다.
'편달'은 "채찍질하다"라는 뜻으로, 편달이 바른길로 가도록 가르쳐 이끌며
격려해 달라는 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짐승에게 쓰여야할 언어이고 도구이다.

사람에겐 편달이 아니라 '사랑'을
성경이 채찍을 이사야 53장에 메시아의 고난과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신 것 때문에 자주 채찍이라는 단어로 번역을 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잠언서에서는 채찍이 아니라 《막대기》에 해당한다.
채찍은 강요와 길들이기 위한 것이지만, 막대기는 그 목적이 다르다.
히브리어
셰베트(H7626: שֵׁבֶט)를 번역한 것인데, 그 뜻은 '막대기, 지팡이, 홀, 부족, 지파'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막대기'를 의미한다.
회향을 떨 때(사 28:27) 또는 무기로(삼하 23:21), 그리고 양떼를 모으거나 계수할 때(레 27:32, 겔 29:37) 및 보호할 때(시 23:4, 미 7:14) 사용되었다.
시 23:4에서 이 단어는 여호와께서 의의 길로 행하는 자기의 종을 보호한다는 의미로 비유적 측면에서 사용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막대기는 교정적인 징계 또는 형벌의 도구가 아니다. 안위기 목적이다.
때로 막대기는 교정 도구로서 종(출 21:20), 미련한 자(잠 10:13, 잠 26:3), 아들에게(잠 13:24, 잠 22:15, 잠 23:13-14, 잠 29:15) 사용되었다. 그러나 잠언에서 이것은 훈육의 상징이 된다.
이는 은연 중에 잘못하면 《매를 맞아야 한다》는 사고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맞아야 한다. 그런데 마치 이것이 아이들과 훈련병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들이 사용한 훈계의 방법
회초리나 막대기도 자기 자식을 바르게 고치려는 어머니의 몫이다.
나름 신중한 결정을 하게 된다.
즉, 목적이 때려서 교정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강력한 경고이다.
그것은 회초리나 막대기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자식을 사랑하기에 교장하려는  💕 이름으로 주어지는 훈계의 막대기이다.

위의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서당에 관한 것이다.
한 아이는 훈장님에게서 돌아서서 울고 있고, 이를 보고 아이들은 웃는 듯하다.
무언가 속상해서 돌아서서 울고 있다.
훈장님의 훈계 때문이었을까?
훈장님은 때린 일이 없다. 회초리가 없다.
그러면 아이는 왜 울고 있을까?

회초리 문화는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알듯 조선시대에는 훈장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조는 아이를 곰방대로 때렸을까?
그럴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아니다."
조선시대 때  훈장이 회초리로 훈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훈장이 아이들이 잘못해서 훈계를 해야 할 경우, 함부로 회초리를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잘못을 고치려고 매를 들 때는 방법과 절차가 있었다.
그렇다.

아이 : 제가 잘못했습니다.
훈장 선생님 :(먼저 이유를 묻는다) 왜 그랬느냐?
아이 : 예 사실은 이러이러 해서 그랬습니다.
훈장 : 그랫구나. 알았다. 그럼 이렇게 하거라.
아이 : 예
그러면 아이들이 고쳐지나요. 그렇지 않지요.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훈장 :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아이 : 저는 좀 맞아야 됩니다.
훈장 : 그래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처럼 훈장이 자기의 감정을 실어서 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훈장과 아이, 둘이 합의 하에 매를 들게 됩니다.
때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교정이 목적이니까요.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고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훈장 : 그래, 고맙다. 넌 좀 맞아야겠다.  어머님께  말씀드려라. 그리고 회초리를 받아 오거라.
훈장은 당장 잘못을 본 순간, 아이를 때리면 안 된다.
구리고 아이는 어머님께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맞아야 하는지 어머니께 알려야 했다.

아이 : 어머님, 전 좀 맞아야 됩니다.
제가 잘못한 일이 있습니다.
어머니 : 그래, 네 말대로, 네가 맞아야 할 일을 했구나.

그리고는 어머니는 아이의 손에 회초리를 건네 준다.
아이는 어머니가 주신 회초리를 훈장님께 가져 온다.
훈장은 감정으로 아이를 때리는 것이 아니다.

훈장 : 그래, 이 회초리는 어머님이 끊어주신 것이 맞느냐.
이를 확인한다.
왜냐하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 : 예
훈장 : 자 그럼,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뉘우쳤느냐.
아이 : 예
훈장 : 회초리를 맞도록 종아리를 걷거라.
이것이 사랑의 매이다.
그리고는 훈장님은 아이의 어머니가 훈계해 주길 원하는 만큼 보내 준 회초리 갯수대로 아이에게 훈계를 한다.
이처럼 아이는 맞기 전에 깨달았고,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자신과 어머님이 허락했기에 훈장에게 회초리로 맞는다.
여기에 훈장은 전혀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 아이의 마음에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회초리는 매가 아니다.
아이가 정말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와 훈장의 마음이다.
아이는 맞기 전 이미 알고 있다.
깨달았다.
이미 아이의 마음 안에는 교정이 일어났다.
(물론 미련하고나 어리석은 아이는 제외하고) 자신이 맞는 것은 훈장 선생님이 감정으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니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의 매라는 것을!
그것을 아이는 "사랑의 회초리"라 한다.

먼저는 설득이다.
그리고 훈계와 경고이다.
가장 마지막 단계가 징계와 채찍질이다.
육체의 고통을 가하여 돌이키게 하는 최종적인 방법이다.

징계와 채찍질의 목적은 "돌이킴"이다.
어긋난 길로 나갈 때 징계와 채찍질을 하게 된다.

히브리서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1. 징계 = 파이듀오(G3811: παιδεύω) : 훈련시키다, 교육하다, 징벌하다, 교정하다.
훈련시킬의 기본적인 어근은 파이스(G3816:아이 Child) 이다. 따라서 파이듀오는 문자적으로 `어린 아이와 함께 있다라는 뜻이다.
즉,  '양육하다'(bring up), '교육하다'(educate), 가르치다'(instruct), '습관 들이다'(accustom)라는 의미가 되었다.
히브리어 야사르(징벌하다, 훈계하다, 교정하다; 대개 피엘형이 사용됨)의 역어로 사용(41회).
2. 채찍질 = 마스티고오(G3146: μαστιγόω) : 매질하다, 채찍질하다, 징계하다, 응징(징벌)하다.
동사 마스틱스(G3148: 채찍, 매질)에서 유래, 문자적으로 '채찍질하다, 채찍으로 때리다'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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