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아버지가 계신 산소에서 바라본 고향 하늘이다.
그가 떠나신 지 47년이 되었다.
그곳에서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할아버지는 내 인생에 데미안(Demian)과 같은 분이셨다.
비록 배움은 짧았어도 인생을 사는 지혜가 있으셨다.
나는 그가 떠나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그가 옳았음을.
그렇다.
그는 나의 친구였고, 선배였고, 스승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났고, 나는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일러준 말들을 생각한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죽음에 관하여.
이것을 얻는 것이 지혜이다.
누구나 살지만 어떻게 사느냐, 무얼 위해 사느냐? 왜 사는가?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생 80이 넘으면 거기서 거기다. 90이나 100살이나 120살이나 엇비슷한다.
예수께서 33세를 살으셨다.
바울, 베드로는 60대 초반,
대부분 사도들도 그러했다.
다윗은 70세, 유독 사도요한만 90세가 넘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특별한 은사로 여호수아가 110세, 모세가 120세를 살았다.
이 지혜를 자연 만물 중에도 알도록 이치를 심어 놓으셨다.
전도서 3장 21절은 "인생들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중국어 화합본)라고 말합니다.
개역한글판 성경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 3:20-21)
* 킹제임스성경
모두가 한 곳으로 가나니 모두가 흙에서 왔고 모두가 흙으로 다시 돌아가도다.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누가 알리요?(전 3:20-21)
개역성경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간다”
이 지혜를 얻는 것이 《생명나무》이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는 골고다의 나무십자가에서 완성된다.
분명 인생은 죽음으로 육신을 마감하지만, 그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나 같은 육체를 가진 짐승의 혼은 땅으로 내려간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왔고, 이 땅에서 그를 섬기며 그의 계명으로 살고, 그가 예비하신 길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 곧 생명과 사항의 나라로 간다. 이 지혜를 얻으면 육신은 하루하루 후패하여가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고, 마음은 계속해서 생명 있는 나무처럼 푸르고 푸르게 된다.
왜 하필이면 나무인가?
한 나무의 나무나 인간이나 똑같다.
한 그루의 나무도 잘 모르는 인생이 자신을 어찌 알리요.
나무는 창조주가 지으신 목적대로 철저히 열두 달과 네 개의 계절을 거스르지 않는다.
또 세월을 거스르지 않는다.
창조자의 창조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주가 주신 생명을 가장 고귀하게 간직하고 있다. 끊임없이 인간과 짐승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인간과 짐승이 살아갈 생명의 호흡인 산소를 내어 준다.
이 관계를 나무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생명은 무엇인가?
아담이 지음을 받았을 때 얼마나 명철하고 똑똑했던지 그가 모든 만물의 이름을 짓는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그같이 똑똑했어도 아직 선악을 분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언제나 지켜야 할 금기가 있었다. 사랑은 그 금기를 지키는 것이다.
자동차를 몰고 갈 때에도 나만의 자유를 위해 무조건 달릴 수는 없다.
서로의 생명을 위해 지켜야 할 멈추고,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이 있다.
눈에 생명이 보이지 않지만, 서로의 약속 안에 생명을 지켜 주는 비밀이 있다.
이 모든 비밀, 생명이 살고 죽은 지혜, 선과 악의 비밀을 하나님은 늘 우리의 눈앞에 두신다.
그리고 순종하는지 아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알려하신다.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
일차적으로 그것이 인간 존재의 목적 곧 창조의 목적을 알려준다.
인간의 존재의 목적, 그 답을 사람들은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
그 답을 또 과연 얼마나 있을까?
어떤 이에게는 아마도 영원한 숙제로 남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 그 숙제를 이 세상에서 풀어야 한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 비밀은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여기저기에 있다. 또 누군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주지 않으면 알 수도 없을 것이다.
지혜자요, 도를 전하는 전도자는 그것을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잠언 3:13-14)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잠언 19:8)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해석하려 한다.
이것도 아담을 무너뜨린 마귀의 속임수에 속는 것은 아닐까?
지혜와 생명나무
살아있는 나무가 있고, 죽은 나무가 있다.
나는 할아버지 무덤 앞에 오랜 시간을 앉아 그와 대화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내가 열두 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옆에 있는 오래된 노송을 한참 쳐다보았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도, 그리고 주변에 있는 나무들도.... 그리고 살아온 나의 인생도.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재롱도 받아 주시고, 늘 할머니를 내가 독차지해도 웃기만 하셨다.
그저 인자하기만 하셨던 할아버지는 나의 오랜 친구였다.
나는 그의 등에서 자랐고, 그의 어깨에서 인생을 배웠다.
두 가지 지혜
학문을 통해, 경험을 통해, 조직과 사회를 통해 지혜를 배운다.
공자는 세상의 지식들 속에서 지혜를 얻는 세 가지 방법을 말했다.
첫째, 《사색》에 의한 것으로, 가장 고상한 방법이다.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므로 궁극적인 답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둘째, 《모방》으로 가장 쉬우나 만족스럽지 못한 방법이다.
멘토를 곁에 두고 배우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스스로 할 수 있게 된다.
셋째, 《경험》을 통해 얻는 것으로, 가장 어렵다.
먼저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직접 실천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터득하게 된다.
그러면 진정 지혜를 얻었는가?
또 하나의 지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혜의 근원, 그 본질"은 무엇인가?
분명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가 복이 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창조자이신 하나님, 곧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며(잠 9:10),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고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다.라고 했다(욥 28:28)
그가 이 자연과 만물 안에 그 비밀들을 숨겨 놓으셨다.
아니 이미 우리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탐욕 곧 죄가 이미 주셨던 생명의 근원이며 본질을 잃어버리게 했던 것이다.
그 생명은 <관계>였다.
관계는 바로 생명줄이다. 사랑의 줄이다. 아이가 엄마의 태에서 탯줄을 통해 생명을 공급받듯이 엄마와 아기는 생명적 결탁의 관계이다.
그것이 세상 밖으로 나와도 여전히 그 관계가 지속되어야 마땅한다.
자식은 어른이 되고, 늙고 죽을 때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앞설 수 없다. 부모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혈육의 관계는 전쟁이나 기근, 질병으로 끊어질 수 있어도 본질적인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
세상의 그 어떤 사상도 이 관계를 넘어설 수 없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연결고리이다.
죄 곧 육신의 생각은 그 신비한 아름다운 기억을 망각하게 하고, 생각은 어둡게 하고, 영의 눈이 멀어 보지 못하게 하였고, 지금도 계속해서 지혜에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먼저 생명의 신비는 우주와 만물 속에 그 비밀이 있다.
인간은 얼마를 살도록 지음 받았을까?
인간은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인간은 천년 가까이 살았다.
나무는 보통 천년을 산다.
나무는 물과 햇빛, 그리고 공기가 있으면 산다.
사람도 육의 양식과 사랑과 희망이 있으면 살아간다. 많이도 필요 없다.
욕심을 내려놓고 하늘의 것을 구하며 사는 삶이다.
하늘은 알고 있다.
전도서 12장은 이렇게 도를 전하며 마무리한다.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라고.
내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지.
그분만이 알고 있다.
그분이 만든 생명의 세계를 오늘도 배우라고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