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聖誕祭 : 크리스마스)
- 시인 김종길 -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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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애뜻한 할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시로 녹여냈다.
늘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랬다.
알제시대와 6.25와 보릿고개를 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그 시절,
자식 사랑만큼은 누구보다 크셨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늘 그랬다.
당신의 몸을 돌보지도 않았고
햇볕에 그저 그을린 얼굴
꾸밀 것도 없던 그 시절, 구리무도 아꼈다.
변변한 살림에 병원은 언강생심(焉敢生心)
기침약 살 돈도 없고
어린것이 언 몸을 파르르 떨며
기침을 하다가 까무라 친다.
기절하면 서너 시간은 축 늘어져
죽는 듯이 숨서리조차 없다.
그 길로 아픈 자식 살리려고
포대기 하나 가지고
둘쳐 없고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온몸에 땀으로 적시고,
오십 리를 걸어
용하다는 침쟁이를 찾았다.
"쯧쯧ㅡ 백일해야"
가죽 두루마리에서
장침을 꺼내든 할 멈,
망설임 없이 인중(人中)에
깊숙이 꽂는다.
이내 죽은 듯 숨소리도 없고
온몸에 땀이 비 오듯
마치 봄날에 꿈을 꾸듯
새근새근 깊은 단잠을 잔다.
뒤집지도 못하던 어린것이
젖을 달라며 기어 온다.
"오 내 새끼 살아났구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던 분이
바로 나의 어머니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