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해도 돼(?)
요즘 시대는 너무들 잘 먹고 산다.
그것이 많이 '죄스럽지 않은가'.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부모가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받기만 하다 보니 나누고 주는 일에 점점 인색해져 간다.
어른들이 젊어서는 사서도 고생한다는 말을 하셨다. 고생해 봐야,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호강은 '전혀 고생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다른 말로는 "호의호식'이다.
호의호식(好衣好食)
7, 80년대 이전만해도 어른들이 힘들게 일하실 때 자식들이 일을 거들지 않을 때, 일도 안 하고 놀고 있는 자식을 보며 하는 말이 "호강하는구나!"라며 나무라셨다.
호강은 스스로 하는 일 없이 지내며 누구에게 의존해서 도움으로만, 먹고사는 것을 말한다.
한자로는 호의호식(好衣好食)이다.
호의 호식하며 산다는 말은 호의는 좋은 옷을 입고 호식은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을 말한다.
긍정적으로 "나는 호강하며 살았지"라고 하면 부모덕에 '호화롭고 편안한 삶을 누림'을 말한다.
호강이 부정적으로 쓰일 때에는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재는 호강에 초친얘여!"라고 할 때는 호강이 지나쳐 인생을 망치며 사는 것을 말한다.
고생해 보지 않고 입만 살아있을 때, 분수나 때에 맞지 않는 말을 할 때 "호강에 초치는 소리하고 있구먼."...
"호강에 초친다"는 말은 호의호식에서 지나친 것을 말한다.
여기서 '초'는 '식초'를 의미하는 것으로 식초를 들어부어 음식을 못 먹게 만들 때를 쓰인다.
혹은 "초치는 데는 소질이 있어." "호강에 초치는 소리 하고 있구먼."... 한창 잘되고 있거나 잘되려는 일에 훼방을 놓아서 일이 그르치거나 시들해지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예) 즐기기는 다 즐겨놓고, 그러고는 하는 말 '아이, 힘들어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못해 먹...."라고 한다. 그러면 호강에 초치는 소리하지 말고. 라테는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그런 소리를 듣고 나면,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그냥 절벽이다.
그래도 여전히 "자랑하냐 호강에 초치는 소리하냐."라고 잔소리한다.
호강에 겨워(받혀) 요강에 똥 싼다.
"우리 때는 말이야 ~......"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호강에 겨워(받혀) 요강에 똥 싼다."라고 한다.
왜 요강이 필요했나? 70년대 새마을운동이 있기 전, 수새식 변기가 나오기전까지 대부분 농촌에는 초가지붕에 아래 살았다. 그래서 지금처럼 강추위가 밀려오면 깜깜한 밤에 밖에 있는 뒷간(변소, 해우소)에 가는 일은 매우 번거로웠다.
아이들은 엄마를 깨워 같이가야 했다.
아이는 "엄마! 밖에 있어"
엄마가 "응, 걱정말고 빨리하고 나와!"
뒷간에 앉으면 찬바람에 엉덩이가 애이듯 하고, 나이 많으신 어른들은 강추위에 짧은 시간이지만 쪼그려 앉았다 일어날 때 현기증이 나고 쓰러지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요강을 방구석에 두고 볼 일을 해결했다.
새색시가 시집갈 때 가마(긴여행) 안에 넣어주고, 또 집안에 가장 먼저 들여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요강은 혼수 중에 필수품이고, 풍수로는 집안의 복과 자손만대를 상징한다고 한다.
요강(尿罁)은 오줌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그릇을 가리킨다. 본래 요항(溺缸)에서 와전된 말이다. 야호(夜壺), 음기(飮氣), 설기(褻器), 수병(溲甁)이라고도 불렀다.

"그는 부모 덕에 한평생을 호강하고 즐겁게 살며..."
이는 아무런 고생도 안 하고 너무 거저 먹는다는 말이다. 너무 편안하게 먹고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만에 호강했...
그러나 상대방을 기쁘게 립서비스하는 데에도 쓰인다. 일종의 감사 표현이다.
큰 대접을 받았을 때 "덕분에 입이 호강했습니다."
좋은 구경을 시켜주었을 때 "덕분에 눈이 참 호강했어요"라고 한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겠습니까?
얼마 전 직장과 학원, 성악, 운동까지 하느라 고생해서 대상포진이 왔었는데.
마음이 짠했습니다.
딸이 지금은 힘들고 고생하지만, 꼭 해낼 것 같습니다.
딸내미가 이 영상을 알려주어 보게 되었다.
https://youtube.com/shorts/9Ud9WLY9hVA?si=gcrl6r_fOSIY_OQ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