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말씀요약 『기다리는 사람들』(눅 1:26-38)
교회는 전통적으로 독자적인 달력을 사용 - 대림절,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등 –했는데 이는 신앙생활의 핵심들을 담고 있다.
대림절(待臨節, Advent), 이 말은 “오다, 도착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고대 로마시대에 황제가 즉위하여 어느 지역을 방문할 때 “그분의 방문”(His Advent)라고 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진정한 만왕의 왕이요, 유일한 주이신 예수님의 오심 곧 성탄을 “그분의 방문”(His Advent)으로 여겼다. 이후로 성탄절을 기다리는 절기를 대림절(Advent)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리아의 영적인 변화
28절,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라고 부른다.
마리아는 무슨 은혜를 받았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마리아에게 <어떤 영적인 변화가 일어났느냐> 하는 것이다.
대림절을 기다리는 우리들에게도 이같이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30절,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메시야 곧 하나님을 아들을 낳을 어머니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계획을 세상에 완성하시기 위해 사람을 찾고 계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그를 낳아줄 여인을 선택하셔야 했다.
문제는 이 엄청난 일을 받아들여 줄 동정녀가 필요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예,Yes)라고 대답할 아브라함과 같은 여인을 찾으셨다.
선택된 사람은 처녀였던 마리아였다.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에 마리아를 부르신 것이다.
34절.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어떻게 혼인도 없이 남자도 없이 “아이를 잉태할 수 있습니까?
이성으로 생각해도 도무지 불가능하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이해되면 믿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해가 안 되니까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성적으로 도무지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믿는다.
37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먼저 믿어라 그리고 말씀하신 내용을 묵상하고 탐구하라. 깨닫고 이해가 되고 확신하게 된다.
38절,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복음을 듣고 구원얻는 것도 그렇다. 내가 다 이성으로 이해되어서 믿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으로 이해가 되어서 믿는 것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믿는 것이다.
그래서 순종한다. 마리아는 이 말씀을 믿었다.
행동하는 믿음
39절,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마리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마리아는 이 소식을 가지고 어디로 향합니까?
이것을 확인해 줄 신뢰할 만한 영적인 사람 엘리사벳에게 달려간다.
주님의 약속을 대망하며...
교회(성도 개개인)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
재림신앙이 없다면 죽은 신앙이다.
한 마디로 종말론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입니까?
살전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한 마디로 영적으로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도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세상 즐거움에 취하거나 세상일에만 몰두해서도 안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미련한 다섯 처녀의 처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당신에게 대림절이 있습니까? 마라나타!(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말씀나눔
1.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 중 대림절의 의미는 무엇인지 함게 나누어 보자.
2.성경에서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방법은 무엇인지 나누어 보자.
3.재림 신앙으로 살기 위해 경건생활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적용 방법을 나누고 합심하여 기도하자.
(원문)
대림절과 우리의 믿음(눅 1:26-38)
교회는 전통적으로 독자적인 달력을 사용해 왔습니다. 즉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서 별도의 달력을 만들어 사용해 왔는데 이를 교회력이라 합니다. 교회는 대림절,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등인데, 교회력의 시작은 대림절(待臨節)부터입니다. 영어로 ‘애드벤트’(Advent)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오다, 도착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말은 본래 고대 로마시대에 황제가 즉위하면 그 지역을 연초에 순시할 때, 예고된 지역(도시)에서는 황제의 방문을 성대히 준비했습니다. 그때를 “그분의 방문”(His Advent)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한 만왕의 왕이요, 유일한 주님이시기에 예수님의 오심 곧 탄생인 성탄을 그가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 “그분의 방문”(His Advent)으로 여겼습니다. 그 이후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신 그 절기를 대림절(Advent)이라 불렀습니다.
본문은 성경시대의 대림절에 관한 말씀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어느 날 정혼한 마리아를 찾아와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28절,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라고 부릅니다.
마리아는 정혼하였으나 아직 처녀였는데, <아들을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들이 ‘메시아 곧 구세주/구주’라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매우 놀랐습니다.
마리아의 영적인 변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어떤 영적인 변화가 일어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림절을 보내는 우리에게도 이같이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마리아는 무슨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30절, ‘메시야 곧 하나님을 아들을 낳을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계획 곧 하늘에서 이루신 뜻을 세상에 완성하시기 위해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그를 낳아줄 여인을 선택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엄청난 일을 받아들여 줄 신앙을 가진 동정녀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예,Yes)라고 대답할 아브라함과 같은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여인은 처녀였던 마리아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에 마리아를 부르신 것입니다.
아직 어린 마리아도 천사가 일러 준 말을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그 말이 이해되지 않고 믿어지지도 않았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이런 말이지요. 어떻게 혼인도 없이 남자도 없이 “아이를 잉태할 수 있습니까?
이성으로 생각해도 도무지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이해되면 믿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해가 안 되니까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성적으로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바울은 자신이 도무지 예수 믿을 자격이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고후 4: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쉽게 말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당신들은 당연히 구원받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하셔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더욱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같이 인간적으로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고, 또 사도로 쓰임 받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도무지 구원받을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보니 “나 같은 죄인도 구원받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나를 구원하신 것이구나.”
“내가 구원받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이젠 마음껏 자랑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노력이나 힘이나, 어떤 조건은 전혀 없고 거저 주시는 은혜로, 그것을 믿음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내가 선택받았는지 안 믿어집니다.
자꾸 내 조건, 내 생각을 내세웁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가로막는 방법입니다.
“아니 생각해봐,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겠어! 네가 구원받을 무슨 자격이 있어~ 너는 꽝이야 꽝!
봐봐, 너 믿음이 없잖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는 믿는다.
내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전능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천사는 그래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37절을 보십시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이른 말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내 생각으로 이해돼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우리도 학교에 가서 배울 때 내가 다 이해되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가르침이니까 <일단 믿고> 그런가 하여 알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는 공식을 외우고 그것을 가지고 이치를 깨닫고 나니 이해가 됩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먼저 믿어라>. 그리고 <그 말씀하신 내용을 묵상하고 탐구하라>. 그러면 <깨닫고 이해가 되고 확신하게 된다>.
일단 하나님을 믿으니 마리아의 마음으로부터 확신이 생깁니다.
38절,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복음을 듣고 구원얻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가 다 이성으로 이해되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내가 수용하기 어려어도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첫째, 하나님은 내가 멸망받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구나
둘째, 그래서 나를 멸명에 이르지 않게 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셨구나
셋째, 내가 그를 믿으면 영생을 주시는구나. 아멘. 감사합니다 하고 믿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 어떤 이들은 선택받은 사람들만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써 있다고 하는데, 내가 선택받았는지도 잘 모르는데. 내가 구원받을지 어떻게 아나요?
이것 역시도 사탄, 마귀의 방해입니다.
이와 같습니다.
어떤 일로 부모님과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부모님은 아들에게 소식을 전해 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편지를 받아 아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부모님이 보낸 편지에 쓰이길 적힌 주소로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아들의 몫입니다. 선택입니다.
행동하는 믿음
마리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단지 머리로 이해가 아닙니다.
39절,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마리아는 이 소식을 가지고 어디로 향합니까?
이것을 확인해 줄 신뢰할 만한 영적인 사람 엘리사벳에게 달려갑니다.
가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달았으면 확인하십시오.
내가 깨달은 것이 어떠한지 물어보십시오.
목사님을 찾으십시오. 신뢰할 만한 영적 지도자나 도움을 주실 분에게 나는 이렇게 믿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맞는지 검증을 받으십시오.
모르는 것도 더 많이 깨닫게 되고, 영적인 진리를 깨달아가는 로드맵이 생길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대망하며...
교회(성도 개개인)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없다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초림(예수/구원자)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대림절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종말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은 안 믿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예수님은 재림>하십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해 318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 1:11,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최종 약속을 주시고 끝을 맺습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삶으로 믿음을 지켜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사람들은 그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한 마디로 종말론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입니까?
그때와 기한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평소에 만반의 대비를 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전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한 마디로 영적으로 깨어있으라는 것입니다.
마 24:38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취되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도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세상 즐거움에 취하거나 세상일에만 몰두해서도 안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미련한 다섯 처녀의 처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매년 대림절이 옵니다.
그러나 올해는 마리아의 신앙을 묵상하며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들을 믿고 있는지,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고 있는지,
날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 점검하며 살고 있는지, 행동하는 신앙인지를 확인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라나타!(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