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는 한때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야베스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가 했던 기도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상 4:9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존경을 받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고통을 겪으면서 낳은 아들이라고 하여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불렀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¹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²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대상 4:10)
“וַיִּקְרָא יַעְבֵּץ לֵאלֹהֵי יִשְׂרָאֵל לֵאמֹר אִם־בָּרֵךְ תְּבָרֲכֵנִי וְהִרְבִּית אֶת־גְּבוּלִי וְהָיְתָה יָדְךָ עִמִּי וְעָשִׂיתָ מֵּרָעָה לְבִלְתִּי עָצְבִּי וַיָּבֵא אֱלֹהִים אֵת אֲשֶׁר־שָׁאָל׃” (대상 4:10, BHSSBL)
“Jabez called on the God ① of Israel, saying, “Oh that you would bless me indeed, and enlarge my border! May your hand be with me, and may you keep me from evil, that I may not cause pain!” God granted him that which he requested.
▷ ①The Hebrew word rendered “God” is “אֱלֹהִ֑ים” (Elohim).”
이 책의 저자 브루스 윌킨슨은 이 짧은 본문을 토대로 하여 우리가 해야 할 기도의 모형을 설명하고 있다.
야베스의 기도에 대해 주시도문이나 기도론을 가지고 논하지 말고, 오직 성경이 말하는 것만큼만 해석하자.
역대기 기자는 왜 야베스의 기도에 이처럼 관심을 가지고 그가 기도했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다고 기록했을까?
어찌 되었건 우리에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야베스의 기도에서 첫 번째 기도는 바로 복을 구하는 기도이다. 우리가 복을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기복신앙이라고 말하는데, 시편을 보면 결코 기복신앙이 아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복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복을 말한다.
우리말이나 영어로 해석된 복은 히브리어로 《바라크》이다.
복(H1288: בָּרַךְ, 바라크)은 "무릎을 꿇다, 엎드리다, 축복하다, 복을 주다, 찬양하다,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다, 찬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뜻은 "무릎을 꿇다(kneel down)"이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편 95:6)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며 무릎 꿇고 예배하는 것 자체가 성경이 말하는 실질적인 복이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을 주신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바라크)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창 1:22)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도 바라크의 축복이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바라크)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모든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는 분,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경배와 예배와 찬송을 받으실 분이다.
우리의 복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얼굴(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은 기도와 뗄 수 없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그 약속을 근거로 야베스는 기도했습니다.
1. 하나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함은 "창조주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 것이 복의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 곧 하나님을 찾는 것, 그와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과 관계가 연결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복-바라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이 복이요, 하나님을 경배하고 엎드리는 것이 복입니다.
모든 좋은 것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영혼이 잘됨》의 복입니다. 이것이 <바라크- ברך>의 복입니다.
하나님께 무릎 꿇고 머리를 숙여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복이 <바라크>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그의 영혼은 한량없는 기쁨에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처럼 <바라크- ברך>의 복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그 율법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복을 받음으로 그는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이 됩니다.
그의 영혼은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찬송하니 복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바라크>의 복으로
기뻐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바라크(복)>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2. 이 복은 《관계의 복》입니다.
이러한 복을 받는 자들이 그 복을 누립니다.
시편 1편의 축복은 《아쉐르》의 복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의 회복으로 누리는 복《바라크》을 받은 자들, 그들의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영혼 깊은 곳의 만족과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찬 영적 복을 말합니다.
아쉐르(복)을 번역한 헬라어 "마카리오스(μᾰκάριος)"는 "복된(blessed), 축복된(fortunate), 행운의, 행복한(happy), 행복(happiness)"으로 '최고의 복, 최상의 행복, 최상급의 복'을 의미한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즉 아쉐르의 축복은 내면 깊은 곳의 축복입니다.
μακάριος(마카리오스)를 번역한 영어 성경은 놀랍게도 우리에게 익숙한 ‘be happy’가 아니라 ‘blessed’이다.
왜냐하면 ‘be happy’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εὐτῦχία(에우투키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happy’는 어근 <hap>인데, 이는 "우연"을 뜻한다. ‘happen’으로 확장되었다. ‘happy’가 의미하는 행복은 "우연히 발생하거나, 행운(lucky)"처럼 주어진 것이다.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오, 행복하여라~" 혹은 "복이 있도다"라는 말은 ‘happy’가 아니다. ‘blessed(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복, 하나님과 관계에서 받게 된 복)’이다.
우리는 행운이나 우연히 생기는 복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예수께서 “행복하여라.”라고 선언의 이유가 명확해지지요.
우리들이 추구해야 하는 참된 행복(blessed)은 세상이 말하는 행운처럼 찾아오는 행복(happy)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blessed)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to bless) 자 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누릴 수 결코 누릴 수 없는 복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과 관계에서 그를 경외하고 섬길 때 주시는 복입니다.
그런데 동양 사상에서《복》은 성경에서 말하는 복과 거리가 멉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수(壽), 부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받는 것들입니다. 또 이러한 것들을 누렸다고 복을 받은 덧이 아닙니다. 이보다 더 좋은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장수나 부귀나 건강이나 덕을 베푸는 일이나 수를 다 누리고 죽는 것이나 복이 아닙니다. 이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월한 상대적인 의미에서 복처럼 보일 뿐입니다.
3. 성경의 복은 《절대적인 복》입니다.
이 복은 하나님 만이 주시는 복이기에 절대적인 복이요,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주신으 복입니다.
그 복은 신약적 용어로"하나님의 은혜,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어떤 것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처럼, 한국교회의 성장은 기도에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영성은 기도의 영성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우리 민족이 어려운 시대, 암울한 시대에 기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어디에선가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는 우리의 감정을 배설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소원대로 이루어 달라고 떼쓰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인애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요,
그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통성기도 등과 같은 시간을 통해 열렬히 하나님이 일하여 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님, 이 나라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이 되게 하소서.
오직 주를 가까이하는 복을 나에게 충만하게 주십시오.
주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하루라도 살 수 없나이다.
주님, 나의 생각과 믿음과 소망의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나는 주님을 위해 더 중요한 일을 더 많이 섬기고 싶습니다.
주님, 주의 강한 손이 나와 함께 해 주십시오.
주님이 돕지 않으시면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 나를 악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원수 사단은 나를 자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오직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진심으로 그리고 즉시로 나의 심장을 ❤️ 주께 드리나이다. 아멘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