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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의롭다하심)과 성화(거룩함)

제11장 칭의에 관하여
하나님은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을 또한 《값없이 의롭다고 칭해주신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 하나님께로 가는 길, 하나님 앞에서 생존권, 영생에 이르게 함》를 토대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법정적 선언이다.
둘 다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시는 산물인데,
칭의는 성부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역이고,
성화는 성령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역이다.  

타락과 구원

☆ 원죄 : 죄책과 오염의 전가
아담의 범죄는 후손들에게 전가되어 죄에 물들어 있는 상태와 또 죄에 물들어 끊임없이 죄를 생산하며 그 결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아담의 죄의 결과로 발생한 원죄는 오염(汚染)과 죄책(罪責)을 포함한다.
오염은 범죄한 상태이며 오염되었기에 죄책이 있다. 죄과로 인한 죄의 책임은 사망의 형벌을 뜻한다. 그리고 죄과로 인한 오염은 전적인 무능과 전적인 부패를 포함한다.
죄가 들어온 후로는 죄에 오염되어 스스로 죄를 해결하는데 무능하고, 부패(腐敗)하여 스스로 깨끗해질 수 없는 존재로 살다가 죽음에 이르고, 또한 멸망(영적 사망)에 이른다.

구원 계획

이를 보시고도 하나님은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청세전에 삼위하나님이 합의하신 계획에 따라 인간의 역사 안에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로 택한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사 죄를 사하시고 죄인들과 화목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순종으로 이루신 구원(의)을 성령을 보내시어 택한 자들에게 전가하시어 영생을 얻는 칭의를 주셨습니다.
칭의 (稱義, Justification)는 구약의 제사에서 보여주듯,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시는 방법과 같이 우리 죄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두 담당하시었습니다.

구원 적용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 : 공로(功勞)》를 아버지께서 보내신 성령(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께서 아버지께서 택한 자들에게 믿음을 주시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공로를 전가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을 수납하는 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영접)은 그리스도와 연합입니다. 성령은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죄 사함/죄용서)을 적용해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 객관적 사건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룬 구원
• 성부의 사역 : 택한 자에게 믿음을 주심
• 주관적 적용 : 성령이 믿는 자에게 구원을 전가
이때 신자들에게 주시는 구원과정에 칭의와 성화를 이루어 가신다.
칭의 : 단번에 주시는 법정적 선언
1) 죄책(심판/멸망)을 제거, 죄인에게 영원한 유업을 포함한 하나님의 자녀로 모든 권리를 회복시킨다. 2)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신분을 변화시킴
성화 : 현세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이루어가심
1) 죄의 오염(죄성) 제거하고, 죄인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시는 과정이다.
2) 인간 내부의 변화를 통한 전인격적이며 총체적이며, 전방위적, 전생애적으로 영적으로 거룩하게 하는 과정이다.


칭의와 거룩(성화)

칼빈에 의하면, 칭의(죄인을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생존권)와 성화(그리스도와 연합)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은혜의 두 국면입니다. 마치 국경선에 A국에서 B국으로 넘어감, B국 입장에서는 A국의 건널 때 마지막 선이 B국이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https://youtu.be/Oz41oGmsmhA?si=LY6gH6v7USRGbUYe

https://youtu.be/Oz41oGmsmhA?si=LY6gH6v7USRGbUYe


이는 신자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단일하면서도 우리에게는 이중적인 은혜입니다(One grace yet two-fold grace).
칭의와 성화의 구분은 성부의 사역에서 성령의 사역으로 넘어가는 시점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칭의(단번에)와 성화(점진적으로)를 구별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경험에서는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거듭난 신자에게 '성화 없는 칭의'나 '칭의 없는 성화'도 없습니다. 칭의가 있다면 필연적으로 성화가 뒤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의롭게 하시면 또한 그를 거룩하게 해 가십니다.

이 칭의는, 그들 속에 의를 주입해 줌으로써 (카톨릭)가 아니라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더 나아가 그들의 존재를 의롭다고 간주하시어 기쁘게 받아 주심으로써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은 그들 안에 이루어진 또는 그들에 의해서 성취된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때문》이다.
믿음 자체나 믿는 행위나 기타 복음적 순종을 그들의 의로 간주하심이 아니고,  다만 그리스도의 순종과 배상(satisfaction)을 그들에게 전가시키심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영접하고 의지할 뿐이다.
이 믿음도 그들(신자)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에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사람의 자유의지로 선택의 행위가 개입되었다는 펠라기우스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가 생겨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존하는 믿음은 칭의의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칭의 된 그 사람 안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모든 구원의 은혜들과 언제나 수반하며, 그것은 죽은 믿음이 아니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순종과 죽으심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죗값을 완전히 갚아주셨고, 그들을 대신하여 성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합당하고 참되고 충분한 배상(satisfaction, 만족, 충족함)을 드리셨다.
그러나 성부께서는 값없이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주셨고, 그들을 대신하여 그의 순종과 배상이 받아들여졌으며, 또한 그들의 칭의는 그들 안에 있는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오직 거저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것은 죄인들의 칭의 가운데서 하나님의 엄정한 공의와 그의 풍성한 은혜가 영광을 받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모든 택한 자들을 의롭다 하시려고 작정하셨고, 그리스도는 때가 차매 그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들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부활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성령께서 적절한 때에 실제로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적용시키실 때에 비로소 실현된다.
하나님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의 죄들을 계속해서 용서해 주신다.
그들이 칭의의 상태에서 결코 떨어질 수 없을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부성적인 불쾌함 아래 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죄들을 자백하며, 용서를 구하고, 믿음과 회개를 새롭게 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얼굴빛은 그들을 향하여 회복되지 않는다.
우리의 칭의가 우리의 공로가 아니기에, 성화가 우리의 노력이 아니기에 우리의 구원(칭의)은 취소되거나 유보되지 않는다. 때로 죄의 유혹으로 실패하고, 낙심하고, 죄절하고, 미끄러져도 여전히 하나님의 붙드신 손은 우리를 놓디 않으신다. 단지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우리에게서 하나님이 멀게 느껴진다.
구약시대 성도들의 칭의는 이 모든 면에 있어서 신약시대 성도들의 칭의와 동일하다.
성령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인치시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전가하여 칭의를 주신 것이다.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라

참된 신자는 행위언약으로서의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거나 혹은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로 작정하는 순간 우리는 죄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지불하고, 그리스도께서 속죄하신 공로를 우리에게 적용하심으로, 율법은 더 이상 우리는 정죄할 권한이 없다. 비록 죄를 짓는다 해도, 단지 사탄이 우리를 속일 뿐이다.
"네가 이런 죄를 짓고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양심이 있어야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 놓으셨다. 바로 회개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요한1서 1:9)십니다.
걱정 마십시오.
나를 정죄하는 악한 사탄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사탄아! 네가 내가 지은 죄를 송사하여도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피로 내 죄를 이미 다 사하셨다."
선언하고 선포하십시오.


율법의 용도

그러나 율법은 불신자에게뿐만 아니라 참된 신자들에게도 크게 유용하다.
1. 삶의 규칙으로
왜냐하면 그것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신자의 의무를 알려주는 삶의 규칙》으로써 그에 따라 살도록 그들을 지도하고 구속하기 때문이다.

2. 죄를 드러나게 하는 등불
또한 율법은 그들의 본성과 마음, 그리고 생활이 죄악으로 더러워진 것을 발견케 하고, 자신을 율법에 비추어 점검함으로써 더욱 죄를 깨닫게 하고, 겸비케 하며, 또한 죄를 미워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완전한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 밝히 알게 하기 때문이다.

3. 죄를 깨닫게 함

마찬가지로 거듭난 자들에게도 그들의 부패를 제어하기 위해 율법이 유용한 것은 그것이 죄를 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의 경고들은, 그들이 비록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으나, 그들에게 그들의 죄로 인하여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한 죄 때문에 이생에서 받아야 할 고난이 무엇인지 보여 주기 때문이다.

4. 복된 길을 지시
또 율법의 약속들은 하나님이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율법을 이행하면 그들이 어떤 복을 기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복들은 행위언약으로서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마땅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하고 악을 삼가는 것은, 율법이 선을 장려하고 악을 막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사람이 율법 아래 있고 은혜 아래 있지 않다는 증거는 결코 아니다.

위의 진술한 율법(가르침, 교훈들)의 용도는 복음의 은혜와 상충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감미롭게 따른다.
왜 그렇습니까? 때로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할지라도 죄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죄의 양향력이 있다고 해도 죄의 죄의 종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인간의 의지를 굴복시키고 능력을 주어서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일을 자유롭고 기쁘게 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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