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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개혁의 역사』(창35:4~5)

『신앙개혁의 역사』(창 35:4~5)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야곱, 형 '에서'와 화해, 그는 곧장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지도 않고, 벧엘로 가지도 않고, 육신의 눈에 비옥한 푸른 초장이 펼쳐진 숙곳(짐승을 기르는 '우리', 오두막집들, 작은 양의 우리, 우릿간이란 뜻)에 머물게 된다. 
마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머문 소돔과 같은 곳이다.
야곱은 자수성가하며 점점 부요해졌지만, 영적으로 파탄의 상태로 기울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안해도 보여도 당장 신앙개혁을 필요로 했다(창 33:17 a).
우리도 세상적 성공에 도취되어 있지는 않은가? 육신적으로 잘 되는 곳, 그러나 영적으로는 미끄러운 곳에 머물고 있지는 않는가?
만일 당신이 야곱처럼 영적 무기력에 빠져있다면 당장 "신앙개혁"을 필요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앙은 마치 비행기를 점검하듯 매번, 항상 철저한 점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개혁은 한자로 '고칠개, 가죽혁' 가죽을 바꾸는 고통을 감내하여야 한다. 환골탈태(換骨奪胎,  뼈를 바꾸고 태를 빼낸다)이다. 완전한 탈바꿈이다.
야곱의 신앙개혁을 통해 16세기 종교개혁과 오늘날의 교회개혁의 필요성을 생각해 보며 《개혁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한다.
창 35: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¹ 이방 신상을 버리고
²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5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³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야곱은 《세 가지 개혁》을 단행하고 벧엘로 올라간다.
그의 영적인 시선은 벧엘로 향하고 있다.

https://news.yonsei.or.kr/pc/page/print_paper.html?seq=55000

종교개혁(Reformation)

종교개혁(Reformation)은 ‘다시 회복한다’는 뜻이다. 먼저는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의 본질을 다시 회복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경에로, 사도의 신앙과 초대교회 신앙으로 다시 회복한다는 뜻이다. 칼빈의 개혁은 종교를 새롭게 변화시킨 것이라기보다 로마가톨릭으로 미신으로 변질된 교회개혁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종교개혁(宗敎改革)이라는 용어는 우리들의 용어는 일본식 용어이다. 과거 식민통치 시절 일본유학한 신학자들이 일본용어를 거의 그대로 가감 없이 사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을 '교회개혁'으로 교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개혁(Reformation)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다시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Reformed according to the Word of God)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이란 말 보다 교회개혁이란 말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 종교개혁기념일(宗敎改革紀念日, 독일어: Reformationstag, 영어: Reformation Day)은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95개 논제를 공포한 날을 기념하는 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우리가 믿는 신앙을 개신교라고 하는 이유는 "개혁교회" 혹은 "개혁된 교회"의 줄인 말이다. 신앙개혁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지만, 일본에서 먼저 “종교개혁”으로 번역하면서 굳어졌다.

https://sumbolon.blogspot.com/2017/03/500.html?m=1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고인 물이 썩는다는 말처럼 초대교회의 신앙이 중세 교황제도를 거치면서 마리아의 우상화, 미신화, 비성경적 요소 – 성자와 성물숭배, 마리아 숭배(중보자), 예수의 나무 십자가, 대못,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남은 빵 등은 순례자들을 끌어들였고, 육체적, 영적 치유의 신비가 있는 것으로 조장, 성직매매, 면죄부/천국행 티켓, 성직자들의 타락과 해이함, 세속권력까지 지배-들이 넘쳐났다. 우리는 그들을 로마가톨릭(교황청)이라 한다. 이처럼 중세 천년을 거치면서 로마가톨릭은 성경의 진리를 교회의 전통과 관습에 의존하는 신앙으로 변질시키고, 성경보다 우위를 점하였고, 온갖 인본적 세속주의적인 해석으로 왜곡, 날조, 변질, 타락시켰다. ‘종교(신앙) 개혁’은 하나님이 야곱의 가정처럼 개혁하신 역사이다.
 

1. 로마 카톨릭의 타락과 개혁된 교회의 탄생

당시 모든 권한은 로마교황은 교회의 권력을 독차지하고 자칭 하나님의 대리자,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까지 도전하며  ‘교황무오설 (inerrancy)’을 주장했다.
이에 독일 어거스틴 수도원의 수도사이며 대학에서 신학을 강의하던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읽고 가르치며 깨달았다.
그는 로마 카톨릭의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하여 비텐베르크대학의 교회 정문에 붙이고 공개토론을 요구했다. ‘새로운 종교’란 뜻의 ‘프로테스탄트(신교)’는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회의에서 정식 종교로 인정받게 되고, 프랑스 출신의 칼빈도 박차를 가하여 –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외치며 종교개혁을 완성하게 된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정신 ‘Three Solas’ .
‘Sola Fide (Faith Alone 오직 믿음으로)’
‘Sola Gratia (Grace Alone, 오직 은혜로)’
'Sola Scriptura (Scripture Alone, 오직 성경으로)',


2.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다

성경은 절대적인 진리이다.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거나 고칠 수 없다. 그러나 카톨릭은 이를 제거하였다. 어떤 변명도 해명도 불가하다.

그러나 성경은 두 돌판 이편 저편 즉 4쪽짜리(출 32:15) 십계명을 모세에게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석가들은 십계명을 두 돌판에 어떻게 나누어 썼을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첫번째 돌에 다섯 가지, 두번째 돌에 다섯 가지를 기록. 이것을 5:5설이라고 한다. 《어거스틴과 가톨릭》은 3:7, 《칼빈》은 4:6으로, 재미있는 것은《 Kline》이 주장한 10:10설이다. 십계명은 워낙 중요하므로 첫번째 돌에 10계명을 모두 썼고, 두번째 돌에도 똑같이 중복하여 썼다는 것이다.

존 위클리프가 라틴어 벌게이트역을 영어 번역, 루터가 독일어 번역, 보헤미아 출신 프라하대학 총장 얀 후스가 진리를 외치다 이단으로 파문되어 화형을 당하면서도 “당신들은 지금 거위를 불태우지만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백조가 나타나 유럽을 뒤흔들 것이며, 그때는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하였다. 이어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과 ‘그리스도 병사의 지침서’를 통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위선을 풍자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성경 연구와 경건생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3.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점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없을까? 몇 가지 개혁과 회복이 필요하다. 첫째는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율법주의적 예배 이해(예배는 인간적인 행동이 중심이 됨)가 문제이다. 예물(봉헌)이 현세적 은혜나 복을 얻기 위한 수단(기복신앙)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선행이 천국 갈 수 있는 수단, 인간의 노력으로 얻으려는 교만이다. 온 삶이 예배이다. 교회의 지옥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또 안수로 목사, 장로, 안수집사는 높은 지위에 오르는 특권처럼 여기면 안 된다. 성직매매(총회장선거 금품살포), 교회 재정의 투명성, 담임목사 세습문제, 목회자의 도덕성 문제, 목회자의 신학적 수준 문제, 성전 건축이라는 명목으로 화려하게 건축하는 등의 폐해를 고쳐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토하여 내칠 것이다(계3:15~16).
이 말씀이 "우리 심장에 섬뜩한 경고"로 울려 퍼지고 우리의 삶을 개혁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 말씀 나눔
1. 야곱이 이방 신상들을 제거하고, 단장품을 버리고, 상수리나무에 묻음과 같이 나는 무엇을 버려야 하나?
2. 왜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하는가? 바람직한 개혁은 무엇인가? 나누어 보자.
3. 야곱가정에서의 신앙개혁, 중세 로마카톨릭에서 종교개혁과 현대교회의 개혁에 대해 나누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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