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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실래의 은혜를 잊지 않는 다윗


목자이신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푸른초장과 쉴만만 물가로 사용한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

마침내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다시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을 제일 먼저 찾아온 사람이 바르실래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나와 함께 가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었던 은혜를 갚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왕의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그리고 왜나하면 자신은 발써 80이 된 노구이고, 왕에게 짐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삼하 19:34-36)

바르실래가 어려운 처지에 놓였던 다윗을 도운 것은 그 에게 어떤 사심도 없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가 다윗을 도울 때에 그가 다시 왕권을 회복하면  자신에게 돌아올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윗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하나님께 하듯 충심을 다해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을 기쁨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은혜를 잊지 않는 다윗

바르실래는 예루살렘으로 함께 가자는 다윗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대신 아들 김함을 보냅니다. 그리고 늙은 자신을 대신해 김함을 돌보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때 다윗은 “당신이 소원하는 대로 당신의 아들에게 다 이루어 주겠다”라고 맹세를 하지요.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삼하 19:38)
다윗은 바르실래와 헤어진 후 그의 아들 김함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은 김함을 자신의 아들처럼 잘 돌보았습니다. 늘 자신의 상에서 같이 식사하고 그를 높였습니다. 다윗은 후계자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길 때도 바르실래의 아들 김함을 부탁합니다.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왕상 2:7)

여호와의 집으로 돌아온 다윗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큰 마지막 위기였습니다. 더구나 가장 사랑했던 아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수치를 남긴 아들이었기에 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인도하심이 아닐 수 없었던 순간들...
하나님은 다윗을 깨뜨리십시니다.
왕궁의 행복보다 주님과 함께하는 행복,
목동으로 성장하던 그를 왕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호와가 그의 목자이셨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연단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오직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임을 몸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이제 옇와가 주시는 안식을 얻기 위해 돌아가는 길, 다윗은 발걸음을 돌이키기전 바르실래에게 입었던 은혜는 결코 잊을 수 없었습니다.

잊을 수없는 사람, 바르실래

그래서 죽을 때까지 바르실래를 잊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잘 받들어 김함과 그의 형제들을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아버지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 있는 토지일부와 저택을 김함에게 하사했습니다. 그곳은 훗날 ‘게롯김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게롯’은 여관이라는 뜻인데, 즉, 김함의 여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가서 5장2절)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렘 41:17)
훗날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Josephus)는 이 게롯김함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다고 주장합니다. 예루살렘에서 8킬로 떨어진 곳에 있던 예루살렘은 떡집이라는 뜻으로 본래 이름은 에브라다였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실 곳, 바르실래가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와 그의 지손이 이와같은 복을 받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조건없는 희생을 각오하면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13). 주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를 위해 조건 없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도 이같이 충성하고 희생하면 주님은 우리 안에 더 큰 성탄의 기쁨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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