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구원 확신》이 되는가?
많은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을
자신의 체험 곧 감정에서 찾으려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확신은 오직 믿음(= 복음 이해)을 통해서 갖게 된다.
믿음은 복음이신《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추구(追求)》하며, 이해를 통해 자라난다.
물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지식이 미미하다 해도 진정으로 확신할 수 있기는 하다. 《4 영리》와 같은 단순한 복음이지만, 그 복음의 내용이 명징(明澄, 형용사 - 깨끗하고 맑다)하다면 말이다. 풍성함에 이르지 못해도 구원이 주는 충만한 기쁨을 맛본다.
로마서 10장 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같이 십자가에 대한 지식 곧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우리를 향한 사랑과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우리의 구주가 되게 하신 이 놀라운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믿음》은 이미 가진 지식 위에서도 스스로 자라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식이 많아도 그 지식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으면 확신이 별로 없을 수 있다.
더 풍성한 기쁨과 확신에 거하려면 다음 다섯 가지는 필수이다.
《확신》은 다음의 다섯 가지 위에서 자라난다.
1) 은혜,
2)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고 그분 안에서 거저 주어지는
3) 칭의,
4) 입양,
5) 중생에 대한 《분명한 이해》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열매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믿음을 통해 그분께로 오는 모든 이를 구원하실 수 있고 또한 구원해 주신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에 《확신》이 내재해 있다.
따라서 믿음의 행위는 그 안에 확신의 씨앗을 품고 있다.
사실, 믿음의 출발은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다. 따라서 《믿음의 확신》에 이 차원이 내포되어 있다.
존 머리 교수도 이 점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신자가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에는 분명 확신의 씨앗이 내포되어 있다.
그의 상태에 대해 이루어진 변화에 이 확신이 내
포되어 있다."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참된 자의 믿음이 아무리 약해도 그가 받는 시험이 아무리 극심해도 자기 상태 때문에 마음이 아무리 동요되어 양심에 관해 그는 믿기 전의 상태에 있지 않다.
신자의 양심은 불신자의 양심과 완전히 다르다. 믿음과 소망, 사랑이 바닥을 칠 때도 신사의 양심은 불신자의 확산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의 수준만큼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가? 어쩐지 복음 핵심처럼 들리지 않는가? 어쨌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일은 믿음과 별개로 이루어지지 않고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구주라는 고백은 믿음과 별개로 이루어질 수 없다.
《내재적인 확신》이든 《표현된 확신》이든, 확신은 믿음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이는 "일단 제 믿음을 논외로 하고서, 제가 어떻게 하면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
은 의미 있는 목회적 대화로 이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네오피투스(새신자)는 스스로 신자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도 초신자들이 구원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 자기 믿음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믿는 자들을 구원해 주실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다만 '내 믿음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을 뿐이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가 어떻게 신자가 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신자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인식의 문제다.
또 믿음의 직접적 행위가 아니라 반사 행위의 문제다. 따라서 이 주제에 관한 어떤 논의도 믿음과 별개가 아니라 믿음의 배경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구원으로 가는 다른 길은 없다.
'첫 번째 루트(믿음)가 아닌 믿음과 상관없는 두 번째 루트로 갈 수는 없는가?'라는 질문
은 있을 수 없다.
진정한 믿음에 대한 이런 올바른 자기 인식(내가 거짓 신자가 아니라 참된 신자)은 《세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