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율법폐기론은 인간의 행위를 배제하기 위해 《칭의론》의 객관적인 면을 강조한다. 죄인이 의롭게 되는 데는 '오직 믿음으로'이다. 이신칭의뿐이다.
그러면 율법은 그리스도인에게 더 이상 필요없지 않은가하는 문제가 남는다.
둘째로, 신율법주의( neonomianism )는 율법폐기론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간 행위가 반드시 요구된다》는 인간 행동을 강조하는 신학적 이론이다.
신율법주의의 대표적 인물로는 저 유명한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가 주장하는 신학을 배경으로 한다.
신율법주의 신학사조는 인간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해 구원받는 것이 아닌 《믿음과 회개, 행위로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신학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완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구원의 초점을 그리스도의 공로보다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게 되면서 신율법주의(구원에 새로운 행위가 포함되어야 한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그들의 그러한 주장은 회중(불신자)의《회심》의 문제였다.
《회심의 주체》를 누구로 보느냐?이다.
신율법주의는 성부와 성자, 성령의 구원하시는 공로의 어시스트를 받아 인간이 골(구원)을 넣는 주인공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름인데, 신율법주의는 복음에 새로운 율법(인간의 행위)이 주장하는 신학사조이다. 즉, 인간의《믿음과 회개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논쟁의 배경은 1717년 스코틀랜드 한 노회의 목사고시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발단된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는 것이 정통교리가 아님을 믿습니다.
곧 《그리스도께 나아옴》과 《우리와 하나님이 언약을 맺음에 있어서 우리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I believe it is not sound and orthodox to teach that we must forsake sin in order to our coming to Christ, and instating us in Covenant to God.)"
이 질문은 2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는 《신율법주의》를 따라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율법폐기주의를 따라서 회개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본래 이 문장은 그리스도께 나아옴에 있어서 우리의 행위나 회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행위가 아무 쓸모없음》을 알기에 그리스도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익(구원과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함을 말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문장은 다분한 해석상의 오류가 존재했다. 결과적으로 한 목사 후보생이 이 문제에 답을 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된다.
이후에 이 목사 후보생은 총회에 안건을 제시하였고, 1718년 총회는 이러한 문장을 제시한 노회에게 이 답변을 올바르게 하지 못한 그 목사 후보생을 목회자로 임직시키라는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배경을 뒤로하여서 1718년에 the Marrow of Modern Divinity (현대신학의 정수?)라는 책이 재출간된다.
1645년에 에드워즈 피셔(Edwards Fisher)가 쓴 이 책은 4명의 인물 (전도자, 율법주의자, 율법폐기론자, 그리고 어린 기독교인-young Christian)이 특정한 신학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대화형식을 빌어 쓴 책이다.
이 작품은 토마스 보스턴이 한 서재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뒤로 1718년에 제임스 호그(James Hog)에 의해 재출간되었는데, 《신율법주의에 폭탄을 던져버린》 이 책에 대해서 당시 신율법주의를 지지하고 있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1720년 총회에서 the Marrow (정수)의 신학과 그 지지자들 (토마스 보스턴, 제임스 호그 등)을 율법폐기론자로 정죄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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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폐기론과 신율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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