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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주의 문제점

왜곡(歪曲)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함. 말이나 글의 의미를 잘못 알아듣거나 혹은 일부러 다른 뜻으로 해석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을 목사에게 적용해 보면 복음 전달자들이 율법에 대한 몰이해나 복음에 대한 율법적 해석으로 청중에게 왜곡된 메시지로 전달하게 되면 청중은 잘못된 정보나 내용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거나 잘못된 기준으로 삶을 살게 만드는 엄청난 폐해를 가져온다.

온전한 그리스도
  
        - 싱클레어 퍼거슨 -

제4장 결론 부분

신율법주의( neonomianism )는 율법폐기론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간 행위가 반드시 요구된다》는 인간 행동을 강조하는 신학적 이론이다.
신율법주의 신학사조는 인간이《
믿음과 회개, 행위로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신학이다.
율법주의는 인간의 영혼을 뒤틀어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한다. 특히 설교와 목회를 하는 사람 속에 스며든 율법주의는 순식간에 증식하여 그가 목회하는 교회를 가득 채우고 만다.
율법주의는 결국 복음에 인본주의 덧댄 것이다.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수법이다.
율법주의는 결국 하나님과 그것을 수여하신 율법을 떼어놓는 것이다. 율법만 보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마귀(사탄)이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타락시켰던 수법이다.
율법주의는 단순히 율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시각에서 비롯된다.
율법주의에 빠지면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율법을 주신 분으로 여기게 만든다.
결국 율법주의는 참 좋으신 하나님과 그의 사랑을 경험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만든다.
율법주의는 침투하여 우리의 사고와 생각을 왜곡시킨다. 인간의 <정신, 마음, 감정, 의지>에 까지 깊은 곳에 아예 자리잡아 버린다.
그러므로
육에 속한 사람이 《복음》을 들을 때도 똑같은 왜곡이 일어난다.
토마스 보스턴(에드워드 피셔, 개혁신앙의 정수 해설)은 "이제 더 열심히 노력하겠어, 더 잘하겠어!"라고 말하는 것이 각성한 사람의 본능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얼핏 옳아 보인다.
생각해 보라.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으면 더 잘해서 실패를 만회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뱀의 논리다.
이것은 낡은 율법주의 정신을 더 배가한 것일 뿐이다. 아버지의 사랑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때 율법폐기주의자였던 탕자의 자연적인 본능이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곧 교리적인 율법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귀로 복음을 들어도 '마음의 소리'가 이겨

(지금까지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더 노력해야 해!)

경험적인 율법주의를 만들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율법주의적인 머리'와 '율법주의적인 가슴'을 가진 사람도 많지만 '복음주의적인 머리'와 '율법주의적인 가슴'을 가진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바로 이것이 매로우 맨들이 발견한 문제였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자신들 안에서도 그런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사람의 거룩함이 커질수록 그의 의가 강화된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병처럼 사람들 속에 깊이 파고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화로 의를 확인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하지만 《성화로 의를 강화》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이 말이 약간은 율법주의처럼 들리는가?
물론 그럴 수 있다.
단, '율법주의자의 귀'로 들을 때만 그렇다.
매로우 맨들의 반대자들이 개혁주의 신앙고백을 통해 정통 교리를 고백했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복잡했다.
하지만 오치터라더 신조에 대한 한 가지 고집스러운 진술과 '현대 신학의 매로우' 같은 날카로운 책 한 귄이 율법주의적인 마음을 밝히는 초에 불을 붙였다.
때로는 이럴 수 있다.

율법주의와 그 본질

오치터라더 신조와 '현대 신학의 매로우'는 그 자체로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살짝 닿기만 해도 머리와 가슴이 산성인지 알칼리성인지, 즉 그 안에 율법주의가 있는지 은혜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했다.
사실 <매로우> 형제들은 율법폐기주의자들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신자나 불신자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 안에는 율법주의적인 기질이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율법주의 뿌리

율법주의는 에덴동산만큼이나 오래되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후하신 사랑과 그분의 값없는 은혜를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가르침은 무엇이든 《율법주의》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율법에 제시된 은혜를 왜곡하고, 율법을 구속의 역사라는 올바른 배경 속에서 은혜로우신 아버지가 표현하신 것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율법주의의 본질이다.
아니, 율법주의의 본질들'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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