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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은혜의 순서

『온전한 그리스도』 5-7장 요약

5장 은혜의 순서

복음의 회개는 순서상 죄 사함 이전이 아니라 이후에 온다. 회개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그렇지않은 회개는 율법주의일 뿐이다. 하지만 믿은 뒤에도 회개가 없다면 그 믿음은 착각일 뿐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의 생각(나를 품꾼중 하나로 보소서)이나
첫째 아들의 생각(나에게는 염소 새끼 하나도 주어 친구와 즐기게 하신 일이 없다)에는 모두 율법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물론 첫째 아들이 더 심각하다. 형과 같은 율법주의적인 정신이 돼지우리에서보다 아버지의 집 근처에서더 발견되기 쉽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교회 안에, 믿는 자들 속에 《율법주의》가 더 판을 친다. 그리고 때로는 설교단, 곧 목회자의 마음속에서도 율법주의가 발견된다.

때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더 깊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사실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의 첫 원리를 더 깊이 파헤치는 것이다.

복음제시에 뭔가를 더하는 것은 붕괴할 수밖에 없는 조건주의이다. 언약은 '쉰데케'가 아니라 '디아데케'이다.
즉 계약이 아니라 언약이다.
하나님은 서술문을 말씀하신 후 명령문을 말씀하신다. 십계명 서술문과 명령문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을 오로지 우리의 죄를 드러내는 데만 혈안이 되신 분으로 보면 근시안이 되어 그분의 은혜를 볼 수 없다. 율법을 행위 언약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삶의규칙으로 보아야 한다.

율법과의 옛 결혼은 끝났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재혼한 상태에서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전남편의 기억에 시달린다. 치료약은 하나뿐이다. 학대하는 전 남편의 정죄보다 새 남편의 은혜가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6장 율법주의의 의심증상들 요약

율법주의의 위험은 그리스도가 허무신 것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율법주의는 복음을 왜곡하고 실제로 파괴한다. 율법주의는 자기 의의 기질을 낳는다. 이 기질은 담배나 향수 냄새처럼 숨길 수가 없다. 바리새인과 세리를 보라. 다음과 같은 우리 안에 있는 바리새인의 모습을 보라.

1. 남들을 깔보는 것
2. 하나님이 충성하는 자신을 덜 충성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받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3. 하나님이 자신을 받아주신 것을 자신의 결심이나 오랜 충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4. 예절을 벗어나 노골적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사람을 경멸하는 것

모든 형태의 질투, 하나님이 남들에게 주신 것에 대한 시기, 하나님의 선물을 아버지가 순수한 기쁨으로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보는 것 등은 율법주의에 감염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그리스도와 공로를 따지지 않고 주시는 은혜가 아닌, 성과와인정에서 찾는다는 뜻이다. 이런 모습도 역시 미묘한 형태의 율법주의다.

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여 순종할 때 역시 율법주의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이다.

율법은 자비를 모른다. 율법은 용서할 힘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는 우리를 때려눕혀 우리 영을 속박하게 할 뿐이다. 해방은 두 번째 남편인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율법주의의 치료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이다.

죄가 가득한 곳에, 율법이 정죄하는 곳에 죄인 중의 괴수에게까지 미칠 만큼 은혜가 차고 넘친다.아니, 특히 죄인 중의 괴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친다. 이것이 율법주의를 단번에 쓸어버리는 홍수다.

7장 율법폐기주의의 얼굴들 요약


율법폐기주의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율법의 역할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다.
롬 6:14을 근거로 그렇다.
하이퍼 칼빈주의는 교리적 율법폐기주의이다. 이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서술문이 하나님의 명령문을 나무 압도하여 성경적인 균형이 깨져버렸다. 그들은 은혜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율법을 조금이라도 강조하면 그 은혜에 해로운 것처럼 보게 만들었다.

성경해석상의 율법폐기주의를 주장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철저하게성경 중심적으로 율법의 의미를 찾아 밝혔다. 벤자민 워필드는 이렇게 말했다. "구약은 보화가 가득하지만 빛이 희미한 방에 비유될 수 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새신랑이신 그리스도와의 결혼에서 비롯된 열매입니다. 오늘날 율법폐기주의는 여러 형태로 우리 가운데 나타난다. 그 중 하나는 기독교를 가장한 세속적인 자기 수용의 복음이다. '하나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어. 하지만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 때문에 나를 이모습 그대로 받아주신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이 상태로 남아 있겠다.' 겉모습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는 것 같지만 뿌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폐기주의의 본질은 하나님의 율법을 그분 자신에게서 분리하고 은혜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분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폐기주의는 단순히 십계명을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망가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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