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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어떻게> 구원이 확신이 되는가?

제10장 어떻게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구원이 확신이 되는가?

<구원> 확신은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다. 

매로우 형제들에게는 이것이 핵심적인 문제였다.

네오피투스(새신자) : 제가 믿음 안에 있는지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을 꼭 알고 싶습니다.

에반젤리스타(복음전도자) :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확고한 기초 위에 믿음을 세웠기 때문이다.

 당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없는지 의심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이 약속을 굳게 믿으십시오.

 직접적인 행위로서의 믿음에서 나오는 확신입니다.

 믿음을 통해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 확신을 얻게 됩니다.

네오피투스 : 제가 그렇게 했는지 확신할 방법은 없을까요?

에반젤리스타 : 음, 무슨 말씀인지 이제 알겠군요.

 믿음의 근거가 아니라 당신이 믿었다고 밀을 수 있는 근거를 원하는 것 같군요.

네오피투스 : 맞습니다. 바로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개혁신학은 직접적인 믿음(= 그리스도를 믿음)의 행위와 반사행위(= 내가 얻은 확신)로 구분한다.

네오피투스는 “직접적인 믿음의 행위”를 믿었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믿었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다.

보스턴은 우리가 확신을 얻는 것이 성령의 3차원 사역 덕분이라고 보았다.

① 성령의 조명하심 :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 특히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약속을 우리 영혼에 비추어 주신다.

② 성령의 인치심과 성화 :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분의 역사를 밝혀 우리의 삶 속에서 칭의와 성화가

믿음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해 주신다.

③ 성령이 증언하시고 보증하심 : 때로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우리 영혼과 함께 증언하신다.

 

그리스도와 믿음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열매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믿음을 통해 그분께로 오는 모든 이를 구원하실 수 있고 또한 구원해 주신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에 확신이 내재해 있다. 

따라서 믿음의 행위는 그 안에 확신을 품고 있다. 

믿음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다.

‘신자가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에는 분명 확신의 씨앗이 내포되어 있다.’

믿음의 내용 안에는 구원의 확신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이미 구원의 확신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확신을 얻지 못하는가?

예를들어, 자녀들이 자신이 아빠 엄마를 믿는다.

               그런데 내가 아빠 엄마가 낳은 자식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확신할 수 있는가? 와 같은 문제이다.

 

네오피투스는 스스로 신자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왜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하지 못할까? 

그 이유는 스스로 <자기 믿음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신자>인지를 알 수 있는가?

이는 자기 인식의 문제 곧 반사행위 문제이다.

  올바른 자기 인식이란 "내가 거짓신자가 아니라 참된 신자이다."라는 확신을 말한다.

 

진정한 믿음에 대한 이런 올바른 자기 인식, 세 가지 차원

믿음은 이해를 추구하며, 이해를 통해 자란다. 

믿음은 분명, 믿음의 대상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견고한 믿음은 믿음의 대상에 대한 <인식, 이해, 관계>에 대한 견고함으로부터 출발한다.  

요일1장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요한은 자신의 체험을 통한 경험을 진술한다. 그러므로 그는 확신있게 증언한다.

그리고 우리를 그 자리로 초대한다. 

이러한 《확신》은 "1)은혜, 2)그리스도와 연합, 그리고 3)그분 안에서 거저 주어지는 칭의, 입양, 중생"에 대한 분명한 이해 위에서 자라난다.

그런데, 왜 확신을 얻지 못하는가?

 여러분이 누군가에 어떤 정보를 들었을 때 믿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확신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대적) : 3가지

첫째,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의 결과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우리의 타고난 성향 때문

둘째, 사랑 때문에 아들을 보내신 성부께 값없이 의(義)를 얻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함

셋째, 칭의가 최종적이고도 완전하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것

 

《확신》의 문제에서 그리스도는 핵심이요, 전부(全部)가 되신다.

“믿어 순종”(롬1:5,16:26) = 믿음의 확신만큼 순종의 삶이 따른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하려 함이라(요일5:13)

 

요한은 신자의 삶에서 《확신을 강화》하는 네 가지 도덕적 특징을 설명

1)하나님의 계명에 순종 : 요일5:1~2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2)의로운 삶 : 진정한 믿음은 의로운 삶으로 증명 요일2: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3)죄를 짓지 않는 삶 : 요일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4)사랑하는 삶 : 요일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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