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주역, 점에 빠지는가?(2)
숫자와 신비
만일 전혀 얼토당토않은 것이라면 사람들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주역, 역》이 왜 인간사와 연관이 있을까?
왜 《숫자》가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우리의 생활에서 하루도 뗄 수 없는 것이 숫자이다. 당장 버스를 타더라도 노선번호를 보거 타야 하고, 시계를 보고 시간에 맞추어 나가야 하고, 아이들도 수업시간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늘 숫자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지구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영향력을 끼치는 달과 태양을 음양(陰陽)라 한다.
달(月)은 잠과 휴식을 취하게 한다.
태양(日)은 활동과 일을 하게 한다.
이같이 음양은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그리고 오행(五行) 나무(木성), 불(火성), 흙(土성), 쇠(金금), 물(水성)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사로 상생이 있고, 반대로 상극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개의 행성인 오행《화수목금토》성
또한 《일, 월, 화, 수, 목, 금, 토》7일과 《낮과 밤》은 우리 삶에서 떼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창조세계에 모든 자연(법칙)과 인간(삶의 법칙)이 존재한다.
창조의 자연법칙
자연법칙은 이미 창조 때에 만들어진 것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인간에게 창조의 질서를 따라 자연의 법칙 안에서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며 살도록 하셨다.
인간이 사는 지구에서도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는데,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인간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단지 기후나 자연환경이 변화하는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자연 석에 있는 법칙들과 원리를 알아내어 생활을 더 풍요롭게 하고자 출발하게 된 것이 과학이다.
이 과학원리에는 수학이 그 밑바탕에 있다.
고대의 수학들을 보면 알 수 있다.
3,500년 전의 인류는 고도의 능력을 가졌었다.
아직도 과학으로도 그들이 이룬 것들을 풀지 못한 영역이 많이 있고, 연구해 가는 과정에 있다.
이런 숫자에 대해 앞에서 언급했듯이 프로타고라스는 훗날 종교로 여겨질 정도로 까지 비밀스러웠다.


건축학이나 기하학이나 천문(별자리 연구) 등도 고도로 발전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수학을 통해 정리되었다.
왜 숫자를 궤로 만들고, 이를 삶의 적용하여 해석하려 하였을까?
이러한 과학의 원리를 우주로 넓혀 인생의 문제를 알아보고자 했다. 그래서 그 우주의 변화를 알아보려던 것이 주역인데, 이것을 점을 보는 데 사용하는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점보는 학문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태극기 안에도 이러한 원리가 숨어 있다. 아니 드러내 놓고 보여준다.
본래《역경》은 음과 양의 양상을 알아보려던 학문에서, 인간의 운명을 찾으려는 것을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보려는 점은 그것을 숫자로 보는 것이다.
역경을 구성하는 기초 단위는 ‘괘’와 ‘효’다.
효는 음효(- -)와 양효(―)로 나뉘는데, 지은이는 이 음효와 양효가 각각 남녀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본다. 이 두 효가 여섯 개 쌓여 하나의 괘를 이루고, 이 괘가 64개 모여 전체를 이룬다.
가령, 양효만 여섯 개 쌓이면 ‘건 괘’(첫 번째 괘)가 되고, 음효만 여섯 개 쌓이면 ‘곤 괘’(두 번째 괘)가 된다. 이렇게 쌓여 이룬 ‘괘’의 모양을 ‘괘상’이라 한다.
역괘(易卦)를 길흉(吉凶)으로 나누어 상(象)으로 지정하고, 그것으로 판단하려 한 것이다.
이는 『주역』의 핵심이 상(象) 그 자체이며 상을 떠나서 이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 괘상마다 괘의 이름인 ‘괘명’을 붙였다.
점을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붙여진 숫자의 의미(괘사)를 일종의 신앙화 하게 되었다.
양효와 음효를 가지고 만든 각각의 괘는 여섯 개의 효가 있다. 그것을 모두 합하여 보면 전체 64괘가 되고, 총 384 효로 이루어진다. 이 384개의 효마다 효사(의미를 설명)가 달려 있다.
점을 치기 위해서 특정한 절차를 통해 효를 뽑아낸다. 그리고는 그 효에 달린 효사(그 숫자의 의미)를 읽어(타로점처럼) 길흉을 알아보려는 것이 역으러 보는 점을 보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본래의 주역은 점을 보는 것이 아니지만, 인위적으로 괘에 이름과 뜻을 넣어 만든 것을 마치 그 사람의 운명이나 길흉화복을 예견하는 것으로 만든 것이다. 과학의 법칙을 인간의 삶에 적용하면서 본래 과학이 알려주는 지혜가 아니라 인간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찾고자 과학의 힘을 빌린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했던 사람들이 사주팔자(생년월일○○○○,○○,○○)를 가지고 사람의 운명을 다루어 보려 한 것이다. 일종의 운명학인 셈이다. 그 이름을 <사주학, 추명학, 명리학>이라 불렀는데, 모두 같은 의미다

봄의 이치를 가지고 개인적인 복을 받으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인간의 얄팍한 꾀에 넘어가거나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
인간의 탐욕을 위해 자연의 이치가 그들에게 맞추어 주지 않는다.
도리어 인간은 만물의 이치를 따라야 할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점을 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점은 맞지 않는다.
역은 끊임없이 변화되고 바뀐다. 고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만물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먼저 ‘역’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점을 치(보는 것)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왜 역이 필요한가?
우리들이 무언가를 예측하려면 과거의 오랜동안 축척된 정보와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투표를 한다고 하면, 각 당의 지지율, 지역적 특성, 투표 샘플 등을 가지고 예측을 한다.
이처럼 계속해서 변화되는 현상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계학적 접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의 조급함이 미리 알고 싶어 한다.
결국에는 누구도 모른다가 맞다.
어떤 변수가 일어나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궁금증을 풀고 싶은데, 그래서 통계적 접근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을 개인에게 적용하여 이를 점으로 알려 주려는 것인데, 이는 알 수 없는 미래와 모르는 운명을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궁금증)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성경에 발락이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뛰어난 점쟁이 발람을 불러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던 것과 같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명을 받아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찾아온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민 22:2-20)
이처럼 인간의 궁금증을 알려주는 대가를 받고 이득을 챙기려는 탐욕이 개입되었으니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역이 ‘기복의 대상’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또 역(바꿀 역, 쉬울 이)이라는 것을 알고 접근해여 한다. 역은 “인간의 운명이나 운세를 보거나 미래를 바꾸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삶은 실존의 문제이지 《점》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