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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明泉] 맑은 샘물 2023. 7. 15. 18:46

하프라인을 넘으며

예수님의 사역의 절반(1년반)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특별한 곳으로 가신다.

그리고 거기서 제자들에게 중간시험을 치루신다.

바로 그곳은 이스라엘 북부지역 해발 2,800m의 일년 내내 눈으로 덮혀있는 백색산(白色山),

헤르몬(헐몬)산의 남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의 지명은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였다.

그곳 지명은 본래 “파니아스”였으나, 분봉왕 빌립이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개명한 곳이다.

 

 

살아있는 신, 신의 아들인 로마 황제

로마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 기원전 63. 9. 23~ 서기 14. 8. 19일)는 로마 초대황제가 된 인물이다.

그가 황제가 된 이후로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플리비우스 아우구스투스 

곧 아우구스투스로 불렸다.  

카이사르는독일어로 '카이저', 러시아어로 '차르'의 어원이 되었다. 

카이사르는 공화정 체재 복귀를 선언하며 초대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에게 원로원이 붙여준 칭호로, '위엄있는, 존귀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스스로 신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백성들과 식민지에서는 신으로 불렸고, 앞다투어 신전을 지어 그를 신으로 숭배하였다. 

(서로가 신전을 지으려는 경쟁이 일었는데,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을 지을 때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커다란 지원을 받아 지역경제가 살아날 만큼 큰 것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을 받았고, 팍스 로마나(Pax Romana : 로마의 평화)를 건설한 인물이다. 

예수님은 거기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다. 

주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복을 주는 신으로 섬기는 <맘몬 : 맘몬(Mammon)은 유대교 전승에 나오는 악마로, 기독교의 신약성서에서는 부(富)를 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그 앞에서 우리에게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가 대답할 차례이다. 

 

그러면 주님은 또 무엇을 물으실까?

헤롯대제(Herod the Great, B.C. 73- B.C. 4).

예수님의 탄생과 베들레헴 유아 학살 사건의 장본. 

그의 아버지는 안티파트로스(Antipater the Idumaean)는 이스라엘(야곱) 형이었던 에싸브(에서) 후손인 에돔 족속으로 이두메(혹은 에돔, 이두메니아) 출신이다.

그는 이두매 지역의 사령관이었는데, 옥타비아누스(아우그스투스)와  안토니우스가 황제의 자리를 놓고 최우의 일전을 <악티움 해전>에서 한판 벌일 때 옥타비아누스 편에 섰고,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게 된다.

그 공을 인정받아 팔레스틴지역을 통치하게 해 주었고, 그의 아들 헤롯대제가 갈릴래아 총독이 되었다.

헤롯대제는 로마로 도망하여 머무는 동안 원로원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로를 받았고,

유대로 돌아와 기원전 37년부터  기원전4년까지 34년간 통치하다가 죽었다.   

헤롯대제가 죽자마자 로마는 세 명의 아들들에게 나라 분할하여 통치하도록 했다.

큰 아들 <아켈라오>는 남부지역을-아버지처럼 잔인하고 불의함,

둘째 <헤롯 안디바>에게는 북부 갈릴리 지역과 베뢰아 지역을 -이복동생 빌립1세의 아내였던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함,

그리고 넷째 <빌립(2세)>은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 분봉왕 - 유대인이 없는 지역- 이  되었는데 선한 정치를 했다.

그는 가이사랴 빌립보를 건축하여 황제에게 인정을 받았다.

수도 파네이온을 고치고 확장하여 황제에게 헌정하며 빌립이 건축한 황제의 도시라는 뜻으로 ‘가이사랴 빌립보’라 칭했다.

간악한 헤롯 안디바는 분봉왕이라는 칭로도 받지 못하자 갈릴리 호수를 황제의 이름으로 티베리아스로 개명하고

대대적인 건축을 하였다.

하지만, 그의 간악함을 알고 있던 로마제국은 그를 끝까지 분봉왕이라는 칭호를 주지 않았고, 제후로만 인정했다. 

헤롯 빌립이 신전을 건축한 곳은 요단 강의 수원지 근처에 풍요와 다산의 신이며 삼림의 신인 판(Pan, 반인반수(半人半獸)을 섬기던 신전이 있었는데, 그곳에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신전도 함께 세웠다.

 

가이사랴 - 빌립보.

그리스의 목신(牧神) 판(Pan)에 해당하는 신

헤롯 빌립은 주전 19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이 신전을 건축하였다. 가이사랴( = 카이사르, = 케샤르)

동굴 속 제1 신전은 고대 가나안 자연의 신, 판 신전이다.

이교숭배의 중심이 된 커다란 동굴에서는 샘이 흘러나온다.

베드로 신앙고백의 현장은 신전(神殿) 앞이다.

예수님은 그곳에 제자들을 의도적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그 신전이 있는 곳에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비로소 자신이 가야할 길을 밝히다

죽음과 부활을 처음으로 이르시다(막 8:31-9:1; 눅 9:22-27)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16:24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주님은 거기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메시야가 가야 될 길>이라는 사실을 밝히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절).

 

지금까지 1년반동안 제자로 주님을 따라왔다.

그런데 청전벽력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내가 나의 십자가를 진다.

너희도 내 제자가 되려면 너희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십자가에 스스로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제자도(2) 참조 - 예수님 당시 제자가 되는 길

그렇다면 주님께서 지신 그 십자가와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신

그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할까?

십자가는 살기 위해 지는 것이 아니다.

죽기 위해 지는 것이다.

십자가는 죽음의 도구이다. 

흉악한 범죄자를 처형하는 사형틀이다.

이는 최대의 수치- 가장 부끄러운 - 가 따른다. 

스승이시며 랍비이신 예수님이 스스로 그리하신다면

제자들도 자기의 십자가(처형- 자기죽음)를 져야만 한다.

그 십자가는 자기 죽음의 길, 자기 내려놓음의 길, 자기 부인의 길이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롤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39).

이처럼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역하던 나의 본성은 죽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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