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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니?

[明泉] 맑은 샘물 2023. 7. 7. 10:30

요한일서 2:2 저는 우리 죄(罪)를 위(爲)한 화목제물(和睦祭物)이니 우리만 위(爲)할 뿐 아니요 온 세상(世上)의 죄(罪)를 위(爲)하심이라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罪)를 위(爲)하여 화목제(和睦祭)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하나님의 사랑,
예수를 통해 보여 주신 그 사랑,
그 사랑은 우리와 화목하시려는 사랑,
십자가의 사랑은 화목입니다.
우리로 보다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그림언어인 화목제사를 가져와 설명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릴 위해 내어 주심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고, 또 나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심도 몰랐고,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신 것도 몰랐습니다.
죄 중에 있다는 것은 간헐적으로 양심으로만 느꼈습니다.
사도요한은 사랑이 여가에 있다고 단언합니다.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선언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罪)를 위(爲)하여 화목제(和睦祭)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노골적으로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위하여"(페리)라는 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위하여(G4012: περί 페리. for us : ~에 관하여, ~에 대하여, ~때문에, ~위하여',)
첫 번째는 우리 죄를 '대신(代身)하여' 화목제로 보내셨습니다. 대속하기 위한 화목제로 보내셨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 죄를 대표(代表)하여 화목제로 보내셨습니다. 첫 아담이 인류의 대표인 것처럼, 예수는 둘째 아담 곧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의 이득을 위하여 화목제로 보내셨습니다.
그가 화목제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사 그의 죽으심 안에서 우리가 함께 죽은 것으로 간주하여 주셨습니다. 그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담당(擔當)하다.
擔은 '멜 담'이라는 한자로, '메다', '짊어지다', '떠맡다'를 뜻한다. • 當은 '마땅 당'이라는 한자로, '마땅하다', '당연(當然)하다'를 뜻한다. '당국(當局), 당시(當時), 감당(堪當), 해당(該當), 담당(擔當) 당연(當然)' '당위(當爲)'·'의당(宜當)'에서처럼 '마땅하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을 당하다는 뜻으로 당국(當局)·당번(當番)·당직(當直)이 쓰인다.

그리스도 우리를 죄를 위하여 담당하셨다.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제사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를 덮는 것(expiation)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보시지 않도록 피로 덮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또 하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버림(propitiation)

예수님의 죽음 곧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피 흘림이 우리 죄에 대한 덮어 버린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우리를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 죄에 대하여 받아야 할 하나님의 저주를 대신해서 받으신 것입니다(갈 3:13 ; 신 21:23).
바로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화목제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시키시려고 속죄의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것을 보니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만 하셨는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아! 우리 죄를 위해 우리 대신 죄의 저주를 받으셨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예수님이 받으신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면 우리 죄가 얼마나 중하고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대신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은 보다 생생하게 죄용서를 설명하고자
십자가에 나타난 구원을 《제사 용어》를
인 화목제를 통해 설명하셨습니다.

참고
“ἐν τούτῳ ἐστὶν ἡ ἀγάπη, οὐχ ὅτι ἡμεῖς ⸀ἠγαπήκαμεν τὸν θεόν, ἀλλ’ ὅτι αὐτὸς ἠγάπησεν ἡμᾶς καὶ ἀπέστειλεν τὸν υἱὸν αὐτοῦ ἱλασμὸν περὶ τῶν ἁμαρτιῶν ἡμῶν.” (요일 4:10)
“In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as the atoning sacrifice ① for our sins.
▷ ①“atoning sacrifice” is from the Greek “ιλασμος”, an appeasing, propitiating, or the means of appeasement or propitiation—the sacrifice that turns away God’s wrath because of our sin.”
~위하여(G4012: περί 페리. for us : ~에 관하여, ~에 대하여, ~때문에, ~위하여')
롬 8:3에서 페리 하마르티아스는 "죄와 관련하여" in reference to sin(= "죄를 속하기 위해" to atone for sin Twentieth Century New Testament; "죄를 처리하기 위해" to deal with sin, Weymouth) "죄에 대한 희생제사로"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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