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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와 자유의지의 관계에 관한 오해와 그 위험성

[明泉] 맑은 샘물 2023. 7. 2. 20:33

선악과(善惡果)와 자유의지

둘 다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 선악과는 말 그대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이다.

히브리어로 <מֵעֵץ הַדַּעַת טוֹב וָרָע 메에츠 하다아트 토브 와라아> ,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 열매' 또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동산 다른 모든 열매는 먹어도 되지만, 이 열매는 먹으면 안 된다. 먹으면 죽기 위해 죽을 것이다.” (창 2:16,17)

탱자나무와 탱자열매

 

안전선에 관하여

안전선(安全線)은 일반적으로 전철의 플랫폼 따위에 승객의 안전을 위하여 표시해 놓은 선입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표시해 둔 선으로 이 선을 함부로 넘으면 위험에 처하거나 생명을 잃게 됩니다. 찰로에도 안전선과 바(bar)가 있습니다.

안전선은 생명선

또 하나는 포탄 따위에서 신관이 우발적으로 폭발하지 아니하도록 신관에 끼워놓은 철선을 인전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차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멈추어야 할 안전선이 있습니다.

이 선은 서로의 약속입니다. 자동차라는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에게 안전선은 생명선입니다. 안전선을 넘으면 사망에 이릅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여야만 안전합니다.

목회의 길에서

종종 선악과에 대해 오해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왜 선악과를 만들고 죄를 짓게 하는가? 

그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말입니다.

왜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두셨나? 

동산 중앙은 아담과 하와의 삶의 중심인 곳이다.

 

왜 안전선인 선악과를 두셨습니까?
먹고 죄를 지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생명을 지키는 안전선으로 주셨습니다.
선악과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안전선"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가운데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의지의 자유, 자유의지는 사람에게 너무나도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면 아담과 하와는 파멸합니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제한해야만 합니다. 단 한가지에 대해서.

"자유의지를 자기 맘대로 잘못 사용하면 사망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려 주셔야만 했고,

절대 넘어서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 《자유의지》가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는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그러나 <선택하지 않는 것도 자유>입니다.
이처럼 스스로 자기의 자유를 제한하므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지 않음으로 더 많은 자유를 누리지만,

또 어떤 일에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파멸(죽음, 사망)을 부릅니다.  

선악과와 자유의지에 대해

선악과는 자유의지를 무제한 사용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선택하지 않도록 자유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자유의지를 제한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불편하다고 수시로 안전선을 자기 맘대로 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자유의지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는 일평생 트라우마를 남기는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 주어진 자유를 무제한 사용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며,

그 자유가 모두 유익한 것만은 아닙니다.

순종의 자유 vs 불순종의 자유

선악과는 에덴동산을 아담과 하와이게 맡기시고 경영하게 하신 주신 하나님과

거기서 모든 복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약속의 증표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모두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조건을 주셨습니다.

즐겨 순종하면 생명의 복을, 불순종하면 사망과 죽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선악과만 놓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는 이미 선악과를 먹지 않아도 될만큼 얼마든지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과일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지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의 자유도 허용하신 하나님은,

만일 잘못된 선택의 자유를 행할 때에 그 일로 인하여 일어날 결과도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것 곧 금지명령(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은 "사랑의 배려"였습니다.

유혹을 이길 자유

유혹은 참기 어렵습니다.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습니다.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그래서 자신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지유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간통죄라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성적 지향은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결혼을 하면서 서로가 대의(大義-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를 지키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변합니다.

간통죄가 있든 없든 서로가 지키기로 한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내로남불, 들키지 않으면....?
그 결과 모든 행복은 깨집니다.

내가 누리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인해 부모님, 자녀, 가족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배우자에게는 대못을 가슴에 박아 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파렴치하게도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배우자에게 떠넘기는 사람,

그로 인해 더 깊은 상처와 배신감을 느낍니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도리어 책임을 전가합니다.

"네 탓이다"하며 남을 탓합니다.

죽기 위하여 죽으리라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미 선악과를 먹는 순간 죽음이 찾아왔고, 죽음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파괴되고 막힌 담이 생겼습니다.

교제할 수 없고,

망가진 영혼과 병든 마음과 죄가 지배하는 육체는 자신에 대해 무지하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바를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신뢰가 깨졌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나뉠 수 없음에도 이제는 상처를 주고 갈라섭니다.

죽음, 저주인가? 축복인가?

사람들은 죽음이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죽음은 죄의 삯이며, 죄에 대한 형벌로서 죗값을 지불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죽음이 저주로 끝나고, 어떤 이에게는 또 다른 소망이며, 축복입니다.
만일 회복할 기회마저 잃어버린 사람은 저주로 끝이 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깨닫고 자신의 허물과 죄에서 돌이키면 죽음이 축복입니다.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이것도 선택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의 죽음이 죽음을 향해 가기 위해 죽어야 하는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영생으로 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에게 생명의 부활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오해에서 벗어나라

하나님이 사랑이 없는 분으로 생각하면 세상에서 가장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 전혀 죄를 모르는 것처럼 눈감아주고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범죄자를 법의 심판으로 재판하고,

그들의 죄의 경중에 따라 그들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생명을 박탈시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용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을 용서하실 수 없나?
여러분의 생각처럼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죄와 죄인을 분리하는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것이 죽음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막고 《죄를 지은 상태에서 영생한다면》 그것이 진짜 저주입니다.

죽음을 허용하심이 은혜라고?

그래서 하나님은 죽음은 허용하셨습니다.

죽음은 영생의 길(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였습니다.

죽음은 죄와 분리이며, 죗값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즉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치르신

"의로움"을 우리에게 전가해 주심으로

우리들이 그 의로 말미암아 죽음과 사망을 이기고

그와 함께 부활하여 영생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들을 의롭다 하시려고

부활하신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1-34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구도 정죄할 수 없음
이제부터는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도록 은혜의 영향력 아래에 옮기셨습니다.

로마서 8장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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