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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나를 그대 마음에 새겨 주오

[明泉] 맑은 샘물 2023. 6. 19. 10:28

이사야 49:14-17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끊을 수 없는 사랑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도 않았고, 결코 잊을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한 사람에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랑을 그에게 준다.
그 사랑은 완전하기를 원하고, 독점하기를 원한다.
그 사랑은 언제 어디서든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지를 주어 당신의 내 소유라고 표현한다.
남들에게는 이 사람은 "임자있는 몸이니 넘보지 마시오."
진정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 죽음도 갈라 놓을 수 없는 것, 
그 어느 것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불로도 끌 수 없는 사랑이다.
로마서8장 39절,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 말 아가(雅歌)라로 번역된 성경은 히브리어로 (쉬르 핫쉬림) שיר השירים(Song of Songs)이다. 
아가서1장 1절, 솔로몬의 아가(雅歌) [노래들 중의 노래]라. 
 

왜 솔로몬의 노래가 최고의 노래일까?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선물은 하와였다. 
성경은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는 "그의 아내"라고 여러번 등장한다. 
그러면, 아담이 그의 아내에게 이름을 언제 붙여 주었을까?
"하와"라는 이름을 에덴에서 추방하기전 여호와께서 그들을 심판을 판결하시고, 
가죽옷을 입혀 내보내시기 바로 전이었다.
두 사람이 벌거벗음을 깨닫지 못하고 한몸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제 에덴동산을 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아담은 이름을 지어줌으로 "많은 사람들 중에 그에게만 불려질 이름"으로 지어 준다. 
창3장19절,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2장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사실 아담은 최고의 찬사를 담아 자신과 아내로 지음받은 하와에 대해 불러준 노래가 최고의 노래였다. 
하지만, 이제 다시금 불러야 할 사랑의 노래가 남아 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여인의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다. 
 

왜 성문서라 불리나?

아가서는 성문서[聖文書; 케투빔(Kethubim)]의 하나이다. 
성문서(케루빔)을 직역하면, '쓰여진 것들' 곧 '문서들'이라는 이다. 
즉, 하나님의 가르침(토라)과 말씀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 곧 믿음의 사람들이 반응한 고백들을 모아 놓은 글들을 일컫는 말이다.
'거룩한 문서'라 불리는 시가(시와 노래)서들 5개[시편,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서]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쓰이지 않은 성경이 있다고?

성경 가운데 하나님의 아름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아가서"는
어찌보면 "인문학"으로 분류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성경 66권 중에 “하나님”이란 말이 나오지 않는 책이 <에스더>도 있다.)
아8:6절, 번역본 
[개역개정] 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표준새번역] 도장 새기듯, 임의 마음에 나를 새기세요. 도장 새기듯, 임의 팔에 나를 새기세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사랑의 시샘은 저승처럼 잔혹한 것,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입니다.
[공동번역] 가슴에 달고 있는 인장처럼 팔에 매고 다니는 인장처럼 이 몸 달고 다녀다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시샘은 저승처럼 극성스러운 것, 어떤 불길이 그보다 거세리오?
[킹제임스번역 King James Version]은 “맹렬한 불길 which hath a most vehement flame”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입니다 = 어떤 불길이 그보다 거세리오?
한글 [개역](1961), [개역개정판](1998)에서만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고 “여호와”로 번역함
아가 8장 6절은 여자가 자기의 남자 애인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니 “여호와”가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왜 솔로몬이 그토록 사랑했던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던 이야기가 거룩한 성경에 포함되었을까?
더군다나 유대인들이 첫번째 절기인 유월절에 이 노래를 낭독했을까?

 
하나님이 주신 선물

아담에게 하와는 동반자요, 없어서는 안될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또 그를 위해 하와를 지어 남여의 사랑을 주셨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술람미여인은 솔로몬에게 자신을 인같이 품어 달라고 요청한다. 
8:6 너는 나를 인같이…품고. 고대 히브리 민족은 생각이 만들어지는 자리를 심장, 즉 마음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심장에서 사랑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가슴은 신비한 곳이다. 숨, 호흡이 드나드는 곳이다. 또 온 몸에 피를 보내는 샘이다. 
숨과 피는 목숨이다. 뇌도 중요하지만, 심장이 멈추고 죽어야 죽은 것이다. 
나를 당신의 목숨같이 지켜 주고 사랑해 달라는 것이다.  

신부(술람미 여인)는 히브리어에서 분명한 것처럼, “너”를 남성형으로 말하고 있다.
“인印(도장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탐(h.otam)은 인장반지를 뜻한다(참조 출 28:11, 21; 욥 38:14; 41:15; 렘 22:24).
고대사회에서 히브리인들은 때때로 인장반지를 끈으로 매어서 가슴에 달고 다녔다.
술람미여인은 자기를 사랑하는 왕 곧 신랑에게 자신을 인장반지와 같이 귀중하게 여겨주기를 바란다.
8:6 불.  히브리어 르샤핌(res∨apim), “불꽃”, “불빛.” 시 78:48은 뜨거운 “번갯불”로 번역했다.
8:6 여호와의 불.  「제임스왕역」에 “a most vehement flame”[가장 맹렬한 불]로 번역

   세상에 끌 수 없는 불이 있을까? 누가 하나님의 불을 끌 수 있겠는가?

 
유월절과 아가서

아가서는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출애굽의 구원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유월절에 낭독 되었다.
왜 이처럼 중요한 절기에 아가서를 낭독했을까?
아가서는 비록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지만,  이것을 승화시켜 보면 단순히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의 영적인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을 그의 신부로 묘사한다.
54장 5절에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나는 너희의 남편이라 렘 3:6-15 
결혼으로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묘사한다.
부부는 촌수가 없는 가장 가까운 사이요, 함께 하는 사이를 말한다. 
부자간은 1촌이요, 형제간은 2촌이다.
촌수가 생긴다.
하지만 부부는 한 몸이므로 무촌이다. 
 
고대광실 높은 집도 천사같은 옷도....
신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 옥답, 산해진미, 비단옷도 아니다.
신랑 그 자체, 이기에 6절에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특별히 '새기라'는 말은 의미심장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정의

사랑, 그 힘(위력)은 어떠한 것인가?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스올같이 잔인하다.
질투는 불길같이 타오르나니,
그것의 기세가 가장 강력한 불길과 같다.
많은 물일지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할 것이며,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랑은 자기의 모든 재물을 다 주고 사랑을 얻으려고 할지라도
그는 정녕 멸시를 받을 것이다(아8:6b~7)."
그렇다. 이보다 더 사랑을 잘 묘사하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렇다.
첫째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은 죽음이다. 그러나 그 죽음을 이기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다. 
둘째는 음부같이 잔인하다(잔혹하다)고 말했다.
죽음과 음부는 봐 주질 않는다.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힘을 가졌다.
이 세상 사람치고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사랑, 얼나나 위대한가

 진정한 사랑은 "질투"가 있다. 사랑은 타오르는 불과 같다.
결코 내 사랑을 그 누구에게도 내어 줄 수 없고, 빼앗길 수 없다.
솔로몬에게는 수많은 왕비들과 비빈들(후궁들)과 시녀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그러나 솔로몬을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맹렬한 불길"과도 같다.
 "여호와의 불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르헤베트야[흐]'
 '야[흐]'를 떼어서 읽으면 '여호와'의 축약형이다.
그러나 붙여서 읽으면 최상급의 표현이 된다.
 
하늘을 두루마리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 할 수 없겠네
사랑을 값으로 매긴다면.....
그렇다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던 사랑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가? 
 "사랑은 자기의 모든 재물을 다 주고 사랑을 얻으려고 할지라도 그는 정녕 멸시를 받을 것이 때문이다"
그렇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요일3:1a)"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이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님은 사랑하셨다.
결코 사랑은 값으로 매길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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