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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와 레마

[明泉] 맑은 샘물 2023. 6. 16. 17:59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편 119편 1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말씀을 영으로 받으라

요한복음 6장 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로고스와 레마를 구분하는데, 이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의 지식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무의미하고 헛된 주장에서 벗어나라

결론부터 말하면 ‘레마’는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주장이 무의미하고 허황된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경건주의에서 벗어나 자기 지식으로 왜곡하는 것뿐이다.
영혼이 주의 말씀을 "받는 것"= "깨닫는 것"="심겨지는 것"같은 표현이다.
또 내가 깨닫지만, 엄밀히 말하면 "계시(로고스=레마)로 주어진 말씀을 성령이 우리로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그 깨달음의 깊이

소명을 구분하여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로 구분한다. 외적 소명 즉, 자연인도 다 복음을 귀로 듣는다. 그러나 반응하지 못한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깨닫지만, 돌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말라죽는다. 정상적으로 심겨지지 않은 것이다. 성령이 그에게 영적 각성과 깨닫는 은혜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설득은 당하여 반응한 것뿐이다.
그러나 내적 소명은 성령이 그를 각성시켜 잠자던 영혼이 깨어나고 반응을 한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주는 말씀"을 영혼이 즐거워하여 수용한 것이다.
1) 택함을 받았기에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으로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요, 레마)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는 동일한 것을 다르게 표현했다.
거듭나게 하는 씨 곧 하나님의 말씀=복음=말씀=주의 말씀(씨=복음=하나님 말씀, 주의 말씀)
씨(말씀)가 옥토(마음)에 심겨 자는 삼십 배, 육심배, 백배로 결실한다고 하셨다. 이것이 진정한 부르심이요, 거듭남(중생)이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는 양을 수준에 따라 말씀을 먹여야 한다.

요 21: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어린양은 먹여야 한다.
그러나 좀 더 성장한 양은 돌봄으로 양육시켜 주어야 한다. 더 성장한 양이라 할지라도 말씀의 꼴은 먹여야 한다. 양은 양이기 때문이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라

히브리서 5:12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히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목사가 되어도, 신학자가 되어도 끊임없이 말씀을 먹여야 한다.

바울도 계속해서 말씀을 먹었다.

딤후 4: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어린아이 일 때 젖으로 먹이라.

벧전 2: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청년으로 성장하면 의의 말씀을 먹이라

요한 1서 2장 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이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아비가 되어도 더 깊이 있는 진리들을 사모하라
엡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자, 먼저 생각할 것은 예수님이 사역하고 계실 때 하신 <말씀>은 아직 성경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셨던 제자들로 생각나게 하신 그 말씀들은 "로고스인가? 레마인가?"
그들은 또 주장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로고스이고, 베드로가 닭이 울자 생각났던 말씀은 레마라고 한다.
동일한 말씀인데 왜 로고스와 레마를 구분하는가?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깨달았으니 레마인가?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아버지께로 이끌리기를 더 사모하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영적인 사람들은 깨닫고 생명을 얻지만,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성 : 헬라인들, 기적 : 유대인 >을 책망하신 것이다.
그들은 도무지 예수의 말씀이 이성으로만 판단하고 이해하려 하니 깨달음도 없고, 믿어지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권능과 영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말씀을  깨닫고 이해하고 믿는다. 영의 말씀은 영으로 분별하기 때문이다.
고전 2장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이것이 바울 사도의 해석이다.
그의 해석은 매우 간결하고 간단하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으로 받고,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세상의 영에 이끌리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
그러므로 본문의 흐름이나 그 의미를 모르면 억지로 푼다.
벧후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우리는 아는 것과 믿는 것에서 자라 가라는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자라 가기를 힘쓰라.

자칫 그리스도인 가운데에도 자기들이 매우 영적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예수 자신, 곧 그의"말씀(로고스)이다.
사도행전 11:1, “하나님의 ‘로고스’를 받았다”
(ἐδέξαντο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그들을 증거 되는 ‘로고스’를 통해 예수 이름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다. 성령은 ‘로고스’를 통해 구원을 베푸신다. 전하는 자가 얼마나 중차대한 사명이 있는지 모른다.
행 17:11은 11:1에서 둘 다 ‘레마’가 아니라 “‘로고스’를 받아들였다”
(ἐδέξαντο τὸν λόγον)
로고스와  레마를 굳이 나눌 필요가 없다.
‘레마’로 표현되었던지 ‘로고스’ 기록되었던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한 것뿐이다.
기록된 말씀과 내 마음에 받아들여진 말씀이라고 나눌 필요가 전혀 없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나 내가 읽고 깨닫고 내 안에 은혜받은 말씀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성령이 듣게 하신 것, 받아서 먹게 하신 것이다.
<하늘의 양식>이요, <생명의 만나>
이처럼 같은 것을 다른 단어로 표현한 것뿐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도 하늘의 양식은 예수님이고, 생명의 만나는 내가 먹은 말씀이라고 우길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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