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 존재에 대한 질문 - 니, 와 여기 있노?
니, 와 여 있노.(본문 / 창세기 3:8~10)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남겨준 위대한 유산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사건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구약성경은 너무 오래된 옛날이야기인가?
오늘날 나의 이야기인가?
소설은 꾸며진 이야기이고, 역사서 역시 작가가 해석을 덧붙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담에게 물었던 질문은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위대성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담"(אָדָם)이다.이다.
그때와 지금, 그들과 나
인류의 조상들로 살았던 그들의 삶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양태만 다를 뿐 인간 실존이라는 존재로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살아가는 삶의 양태가 조금 다를 뿐,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당한 고통, 불행, 실패, 많은 죄의 후유증과 부정적인 영향력과 파괴력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고스란히 경험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더 나은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들에게서 우리는 교훈을 얻고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그날 바람이 불 때
창 3:8절.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성경은 그들이 범죄하고 난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을 묘사한다.
[개역개정]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표준 새 번역]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공동번역] "날이 저물어 선들바람이 불 때"
그들이 그 날, 날이 저물었고 서늘한 시간 선들바람이 불 때라고 말합니다.
이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기까지 두 사람의 생각은 복잡했을 것이다.
무슨 생각에 그토록 그들은 고민해야 했을까?
행복은 혼자, 처벌은 함께
사람은 행복은 독차지하려는 마음이 있고,
처벌은 함께 받으려는 심정이 있다.
이에 대해 존 밀턴은 그의 <실낙원>에서
"만일 '신성'을 얻는 것이라면 하와 혼자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저주를 받을 줄 예상했기에 함께 먹었다."
C.S. 루이스 <실낙원 서문>(홍종락 역) 220쪽.
"그 열매가 신성을 낳는다면 아담은 하나도 갖지 못하게 하리라.
그러나 그것이 죽음을 뜻한다면, 그에게 먹이리라.
그래야 그도 죽을 테니까."
분명 선악과는 금단의 열매이다.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둘 중에 하나 아담이 없는 동안에 하와가 먹고 아담에게 주었다면
하와는 이미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성경은 이에 대해 침묵하지만,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이 암시해 주고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두 사람은 부부로서 함께 모의한 것처럼
아담과 하와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하여도 하와는 "그의 아내 혹은 여자"라는 호칭으로 쓰였다.
사실 '하와'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기 직전에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창 3:20)
창 3: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비극
8절 중,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담과 하와는 동산의 나무 사이에 숨었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나서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뱃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은밀한 것까지 다 아신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깊은 생각까지도 보신다.
9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시는 질문은 아니다.
이 말은 존재론적인 질문이다. 인간의 실존에 대한 질문이다.
아담은 죄를 짓고 나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삶의 목적도 잃어버렸다.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죄를 짓고 난 인간은 가야 할 길을 잃어버렸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답을 잃어버렸다.
하나님 없는 삶은 "왜 사는지"를 삶의 이유를 모른다.
아담, "붉다" 흙,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흙(미세 먼지)에서 지음 받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서 아담(אָדָם)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첫 번째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포함한 ‘사람’을 지칭하고 -창 1:26~27의 아담(אָדָם)은 “사람”,
둘째는 특정한 ‘남자’를 가리키는 경작하는 일이 아담에게 주어짐(창 2:5, 15),
세 번째는 사람 이름으로 ‘아담’이라는 고유명사 - 창 4:25, 5장:1, 3-5, 역대기상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