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것과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를 아십니까?
우리 신앙에 중대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신앙생활에서
1)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아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3) 이해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믿는다"는 의미
믿음은 반드시 대상이 있고, 대상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당장 아는 정보가 많지 않아도 믿게 됩니다.
믿음은 본인의 의지와 인격적 동의로 이루어집니다.
연합은 강제적이 아닙니다.
연합은 상호 존중과 인격적인 것입니다.
믿음의 궁극적 결과는 그와 인격적인 연합을 위한 것입니다.
이 연합은 아는 것(앎, 지식)으로 더 연합이 깊어집니다.
둘째, 안다(앎, 지식)는 의미
믿는다는 말은 인격적 연합인데, 대상에 대한 앎으로 시작됩니다.
안다는 말은 대상에 대한 범위와 깊이를 말합니다.
아는 것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식으로 아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은 학생들이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믿음하고 별개 일 수 있습니다.
학문으로서 앎이기 때문입니다.
신학도 학문으로 넘어오면 인문학이 됩니다.
신앙과 별개로 고대의 문서 정도로 여깁니다.
또 하나는 경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세상을 살면서 경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어떤 체험으로 무언가를 터득하게 되는데, 이를 응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식과는 사촌관계이지만, 지혜는 또 지식을 얻게 해 주고 깊이를 더해 줍니다.
창조주를 아는 것이 참된 지식입니다.
세상의 일반 지식은 우리의 이성으로 아는 것이지, 창조주를 아는 것은 영적 지식이요, 인생의 가장 고귀한 지식이기에 인생에 중대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인생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운명이 바뀝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지식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그를 경험적으로 알고 경외하는 것은 명철입니다.
이처럼 아는 것이 경험적인 앎이 될 때 신앙과 연결되고, 삶이 굳건해집니다.
세 번째, 이해(理解)
이해(理解)는 어떤 것에 대해 사리와 분별의 능력이 있어서 그것을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해라는 말은 '이치'를 아는 것이요, 아는 것, 분별하고 풀어서 해석하는 것, 그리고 이를 적용하여 문제를 처리할 능력을 이해라고 합니다.
지식이 있어도 해독하는 능력이 없다면 그 지식은 허수아비일 뿐입니다. 생명력은 그것의 이치를 이해하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지요.
우리는 어느 단계에 이르렀습니까?
그냥 믿는 것만 믿는다면 그것이 성경적 믿음이 아니라 자기 신념을 믿는 것일 수 있습니다. 또 믿음의 지식이 없다면 미신적이거나 아주 편협한 믿음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아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당장이 아니라 긴 인생을 두고 알아가는 것, 깊이 있게 알아가는 것, 더 좋은 교제와 사귐과 연합을 위하여 체험적으로 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해한다는 말은 내가 어느 것을 의존하지 않고 내가 가진 지식 곧 알고 있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한 단계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뵐러는 웨슬리에게 모라비안 영성에 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님은 하나님을 믿습니까라고 질문보다
“형제님, 형제님은 하나님을 이해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믿는다는 말은 매우 주관적이고 모호합니다.
다시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엇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무엇을 아십니까?
이해합니다는 대답을 한다면 "하나님을 체험한 사건"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 존재하심, 일하심에 대한 체험은 우리들의 생활에서 어떤 사건을 통해서입니다. 그 사건을 해석할 때 불신자나 신자나 하나님을 앎을 체험을 하고 나서 믿음에 대한 확신도 생기고, 신뢰와 의존, 그리고 풍성한 확신에로 나아가게 됩니다.